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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Nov 09. 2021

인도 역사 요약

화가의 심미안과 통찰력으로 본 <핵심 미술 이야기>

화가의 심미안과 통찰력으로 본

<핵심 미술 이야기>





모헨조다로 유적지의 공중목욕탕










인도 역사 요약



인더스 문명  >  베다 문명

> 마우리아 제국 > 쿠샨 제국 > 굽타 제국

> 델리 술탄 왕조 > 무굴 제국

> 영국 식민 통치 > 인도 연립 정부




인더스 문명(BC 3,300 ~ BC 1,900)


기원전 3,000년 경 인더스 문명이 있었다.

질서 정연한 도시 계획이 되어 있었다. 

하라파, '모헨조다로'에는 상하수도와

집집마다 목욕탕이 있을 정도로 

발달된 문명이었다.






베다 시대(BC 1,500 ~ BC 1,200)


인도는 북동쪽으로 히말라야 산맥이고

동쪽은 울창한 밀림 지역으로 막혀 있다.

남쪽은 바다이고 서쪽은 사막이다.

통로는 서북쪽과 북쪽뿐이다.

북쪽 통로로

기원전 약 1.800년 경부터,

흰 피부에 큰 체격을 가진 아리아인이

인도로 내려온다.


이미 발달된 문명을 지닌

인더스 문명의 드라비다인들도 

점진적으로 이동해 오는 아리안인들에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아리아인은 인더스 문명의 토대 위에서

베다 문명을 꽃피운다.

전복에 성공한 아리아인들은 

인도 원주민을 노예로 삼는데

그것이 '카스트 제도'의 시작이다.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불가촉천민인 수드라는 지금까지도

죽이거나 팔아도 죄가 되지 않는다.


이 시기 아리아인들 특유의

브라만 전통 세계관이 담긴 

'베다 경전'이 만들어진다.

베다는 인도의 문화와 종교의 근간이 된다.

베다를 토대로 하여

우주의 근본적 최고 원리로써의

브라만(범 · 梵)에 대한 신앙을

브라만교라 한다. 

오늘날 힌두교의 전신이다.

'브라만교'는 외적으로 '범신론'이다.

내적인 신성은 '아트만'이라 한다.

범신론과 아트만이 하나라는 

'범아 일체'가 브라만교의 내용이다.







마우리아 제국 최대 영역





쿠샨 제국의 최대 영역



  



굽타 제국의 최대 영역








마우리아 제국(BC 322 ~ BC 185)


기원전 6 세기, 

베다와 '카스트 제도'에 반대되는

평등 주의 사상이 나타난다.

그것이 불교와 자이나교 같은 신생 종교이다.


기원전 322년, 

마우리아 왕조의 시대가 시작된다.

불교는 3대 아소카 왕 때 절정기를 맞이한다.

그리고 그는 불교를 꽃피우고

자비로 나라를 다스렸다.






쿠샨 제국(30~375) > 굽타 제국(240~550)


이후 쿠샨 왕조에 이어

굽타 왕조가 들어선다.

굽타 제국 시대에는 인도의 전통 신앙인

브라만교가 힌두교로 진화하기 시작한다.

굽타 제국은 왕권을 신격화할 수 있는 

힌두교를 채택한 것이다.


굽타 왕조 시대는

인도 역사상 황금시대라고 볼 수가 있다.

산스크리트어가 국가 언어로 쓰이면서

인도 2대 서사시인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가

오늘날의 형태로 정리된 것도 이때였다.

또한 사무드라굽타가 시를 읊는 왕으로

문학 부분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었다. 

그를 찬미한 하리세나가 지은

<알라하바드 석비> 내용은

산스크리트 문학의 걸작이다.

그리고 예로부터 시성으로 숭배해 온

칼리다사가 4∼5세기에 활약하여,

인도 고전 문학의 걸작,

<샤쿤탈라>가 탄생하였고 

또 시, 희곡, 설화문학 등의

뛰어난 작품이 출현하였다.


과학과 천문학도 눈부시게 발전한다.

바빌로니아 천문학의 영향을 받다가

그리스 천문학 지식을 수입하면서

인도의 위대한 과학자이며 수학자,

천문학자인 '아리아바타'의 업적이

빛을 발한다.

아리아바타는 대수학과 기하학에 관한 

여러 문제를 해결하고

특히 원주율 파이의 값을

3.146으로 계산해서

지구의 둘레를 정확하게 계산한다.

천문학을 기초로 한 인도의 수학으로 인하여

인도인의 수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다.

특히 인도인들은 무한한 상상력으로 

십진법을 사용해

최초로 0의 개념을 발견한다.






델리 술탄 왕조(1206 ~ 1526)


이슬람 세력의 침입으로

'델리 술탄 왕조'가 생기고

13세기부터 16세기 무굴 제국 전까지 

북인도 역사를 주도한다.

이 시기에 이슬람에서 배척되던 

신비주의 수피즘이

튀르크 족의 인도 진출과 함께

인도에 유입된다.

인도에 들어온 수피즘은

고행, 단식, 호흡법과 같은

요가와 불교의 수행법을 흡수한다.






무굴 제국(1526 ~ 1857)


다음은 바부르가 세운 무굴 제국이다.

무굴 제국 시대의 건축과 문학 등은

힌두 문화와 튀르크와 페르시아계 문화가

융합해서 오늘날까지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강력한 통치 하에 장려된

건축과 예술의 발전으로

굽타 시대 이래 다시 문화의 황금기를 맞는다.

이때 세워진 수많은 성과 모스크와 영묘는

무굴 제국의 번영을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무굴 제국은 1526년부터

1857년 9월 영국에 멸망할 때까지

인도를 총 332년 동안 지배하였다.

무굴 제국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였다.






영국 식민 통치(1757 ~ 1947)


무굴 제국 말미에 혼란이 생긴 틈을 타고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와 프랑스와 영국이

인도 상권을 손에 넣기 위해 달려든다.

1600년 건립한 동인도 회사를 앞세운 영국이

1757년 플라시 전투로 프랑스를 몰아내고 

인도 전역을 차지한다.

인도는 영국의 식민 통치를 받기 시작한다.


서구식 교육과 사상은 인도인들에게

전통 종교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 대신

합리적인 비판 정신을 불어넣는다.

특히 아이러니하게도 영어 교육은 

인도인들을 하나로 묶는데 큰 역할을 한다.

수백 종류에 달하는 인도의 언어가

인도를 하나로 묶는데

큰 장애물이었기 때문이다.


1883년 인도인과 유럽인의

인종 차별 형사소송법이 제정된다.

이 법안으로 인도인의 정치의식이 고양되면서

1885년 인도 국민회의가 개최되고

조직적 투쟁의 장으로 발전한다.

그러다 1919년

잘리안왈라 공원 학살 사건을 계기로

전 인도인의 분노가 폭발하고 만다.

간디처럼 영국식 교육을 받은 신교육 세대는

반영 민족주의 운동의 중심으로 성장한다.

여기에 간디의 비폭력 무저항 운동이 

기세를 더한다.

비폭력 무저항 운동은

역사이래 최초의 참신한 대응이었다.

막무가내, 인간 말종인 상대와 대항하는 방법으로

이보다 더 현명한 방법은 없다.

폭력적으로 대응하면 똑같은 처지가 된다.

그러나 저항하지 않으므로

격을 달리해 상대의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것이다.

간디는 불가촉천민을 하리잔(신의 아들)이라는

이름으로 따뜻하게 감싸 안기도 했고

이 마을 저 마을로 몸소 걸어 다니며

민중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준다.


제1차 세계대전에 

대략 1백만 명의 인도인들이 

영국의 편에 참전하였다. 

이후 영국은 인도에 여러 개혁 조치들을 

개시하였으나, 

억압적인 정책들도 피기 시작하였으며 

점점 많은 인도인들이 자치와 

독립을 요구하였다. 

이후 10여 년 간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며 

독립 요구는 일단 일단락되었다. 

인도는 2차 세계대전에도 

영국의 편으로 참전하였다. 

전후 인도 국민회의는 끊임없이 

독립을 요구하였고, 

북부 지방에서는 무슬림들이 들고일어나 

영국의 지배를 거부하였다. 

결국 1947년 인도는 독립을 이룬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두 가지 사건을 겪는다.

하나는,

종교로 인해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갈라진 것이고

또 하나는, 이슬람과 융합을 반대하던

급진적 힌두교도의 총탄에

간디가 숨을 거둔 것이다.








네루와 간디






인도 연립 정부(1950 ~ )


오늘날엔 인도 인민당을 중심으로 한 

연립 정부가 구성된다.

현대에 이르러 인도는 숙명의 앙숙인

파키스탄과 카시미르 땅을 두고

해결을 못 보고 있다.

공산 국가들이 몰락하는 것을 보고 자극받아

인도는 1991년 신 경제 정책을 추진한다.

그 결과 인도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특히 정부의 주도로

IT 산업이 급속 성장하게 된다.

현재 인도는 카스트 제도와

여성 차별을 야기시키는 뿌리 깊은

가부장적 관습 등이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지만

신흥 경제 대국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동남아의 '힌두 불교'



보로부두르 사원(8세기)


힌두교 체제인 굽타 제국 시대부터 

불교 유적은 인도보다 불교가 전파된

다른 나라에서 찾아야 한다.

인상적인 불교 유적은 8세기

인도네시아 자바 섬의 '보로부두르 사원'이다.




앙코르 와트 브라만교 사원(12세기)


캄보디아 사람들은 골격 자체가 굵어

다른 동남아 인들과는 다르다.

인도계 유입이 있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브라만교 사원은 인도보다 12세기에

캄보디아에서 거대하게 조성된다.

규모로 세계에서 제일 크다는

앙코르 와트 사원이 그것이다.

밀림에 묻혀 있던 것을

프랑스가 동남아 신민 통치 시대에

발굴한다.

앙드레 말로는 젊어서

앙코르 와트의 도굴범이었으나

프랑스에서는 인정받아

문화부 장관까지 된다.






한 국가에 있어서 불교의 특징은

불교가 전파된 나라들이 

대부분 못 사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이다.

살생을 하지 말라는 교리는

전쟁을 회피하게 되고

국력이 약해지는 것이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지만,

안으로는 강성하고 

밖으로는 풍요로운 

두 가지를 다 얻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보로부두르 대승 불교 사원(8세기), 자바 섬의 사이렌드 왕조, 인도네시아











앙코르 와트(12세기), 소승 불교의 사원이 된 브라만교 사원, 캄보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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