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심미안과 통찰력으로 본 <핵심 미술 이야기>
현재의 중동
'세상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은 철칙이다.
스페인 유대인의 자본 이동으로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가 생기면서
식민지 개척이 시작되었다.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당시 세계에서 가장 부유했던 인도에
200년 간 빨대를 꽂고 선두로 나선다.
프랑스는 덩달아 식민지를 개척한다.
이렇듯 해상무역의 시대가 되면서
육상 무역의 거점 지역이었던
투르크 제국은
제1차 세계 대전 폐전국이 되면서
한순간 망한다.
중동의 현 상황이 참으로 갑갑하기 그지없다.
중동에는 왜 복잡한 전쟁이 많은가?
그 시작은 불과 100년 전부터이다.
그 전에는 전쟁은 주로 유럽에서 있었다.
1차 대전이 끝나는 시점부터
유럽의 여파로 중동의 전쟁은 시작되었다.
중동은 거대한 이슬람 제국이어서
국경 지역에서는 전쟁이 있었으나
그 내부는 평안했다.
이슬람은 초기에 거대한 사산조 페르시아를
정복하고 칼리파의 지도 하에 신앙생활을
해왔다.
그 당시 이슬람 지도자의 첫째 덕목은
무슬림들이 안심하고 안전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보호할 것이었다.
그러려면 외적과 이교도로부터 지켜줘야 했다.
이슬람주의는 그걸 한 것이었다.
종교와 국가가 분리되지 않은 그런 전통 하에서.
하지만, 20세기의 중동 지도는
지금처럼 복잡하고 산만하게
약 23개의 나라로 분할되었다.
이것은 정체성의 혼란을 의미한다.
이렇게 나뉘게 된 배경은
스스로 민족끼리 모여서 결정한 것이 아니다.
오스만 튀르크가 약화되어 가자
2차 산업 혁명으로 세력이 커져서
세계를 식민 통치하기 시작한
영국이 주도해서 프랑스와 나눠 버린 것이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인
1916년도에 영국과 프랑스가
비밀리에 사이크스 피코 협의를 맺는다.
영국과 프랑스는 지도를 놓고
자를 대고 그어서 나라들을 만들던 시절이었다.
아프리카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프랑스는 독일에게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고
영국은 해외 영향력을 더 넓히고 있었다.
오스만 튀르크는 독일과 편을 먹고
1차 대전에 참전을 한다.
영국은 아랍 하심 가문에게
오스만을 대항에서 반란을 일으키면
전쟁 후 오스만 땅을 빼앗아서
나라를 세워주겠다고 전략적으로 꼬드긴다.
하심 가문은 이에 넘어가 반란을 일으킨다.
그런데 그 와중에
영국은 프랑스와 비밀 협약을 따로 맺는다.
중동을 우리가 나눠 갖자고.
그리고 유대인들에게는
영국을 도와주면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건설해준다고도 한다.
영국은 아랍과 프랑스와 유대인을 상대로
3중 플레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가 아랍 식민 통치를 위해
나라를 나눌 때 민족이나 종교를 구분해서
나라를 만들었으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무시하고
그들이 지배하기 편한 대로 국경선을 그었다.
심지어 레바논은 프랑스가 위임 통치 개념으로
식민지로 삼았는데 기독교 나라로 만들려 했다.
아랍 부족들은 부족 종교가 정체성인 것을
무시한 처사였다.
영국은 육로로 통해 인도로 이어지는
통로를 확보하려 했다.
여기서 우리는 민족의 정체성 개념을
집고 넘어가야 한다.
민족이란 무엇인가?
민족은 핏줄과 언어가 크게 좌우할 것이다.
한 나라의 국경 안에 여러 민족이
엉켜서 살다 보면 정체성이 없어지고
국가가 약하게 된다.
한마디로 국가 소속감이 없어지는 것이다.
대신 다른 정체성이 드러난다.
부족이라든지 종파에 대한 정체성에
뜻을 두게 된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상항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 중동의 민족들은 어떤 민족들이 있는가?
크게 아랍 민족인 셈족과 튀르크족과 페르시아인과
쿠르드족이 있다.
셈족은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나라들을,
튀르크족은 터키라는 나라를,
페르시아인은 이란이라는 나라를 가지고 있다.
하나의 민족이라는 정체성이 확립되어
국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민족이라는 정체성이 있기에
내분이 있을 수 없다.
쿠르드족은 인구는 3,500만이나 되는데
나라가 없어서
터키나 시리아 등에 얹혀살고 있다.
쿠르드족은 용맹한 민족이다.
최초로 예루살렘을 정벌한 이슬람의
살라딘 장군이 쿠르드족 출신이다.
최근에 시리아 내전으로 쿠르드족이
미국의 지원으로 시리아의 30%의 땅을
점유하고 자치를 하는 상태에서 휴전에
들어간 상태이다.
미국을 대신해 잘 싸워준 쿠르드족에게
미국은 나라를 세워주려 했지만
쿠르드족이 많이 살고 있는 터키의 반대로
그러지를 못한다.
터키에는 이스라엘을 보호할 수 있는
나토 공군 기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쿠르드족은 결과적으로
미국에게 이용만 당한 꼴이 되었다.
쿠르드족이 나라를 가질 수 있는 기회는
이번 만은 아니었다.
1차 세계 대전 직후
영국이 중동을 분할할 때 영국이 쿠르드족에게
'커디스탄'이란 나라를 만들어 주려했다.
그때 쿠르드족이 사는 이라크 북부의
키르쿠크 땅에서 대규모 유전이 발견된다.
해군 장관을 역임했던 영국의 처칠은
석탄 증류선을 석유 증류선으로 바꾼 인물이다.
쿠르드족은 전투력이 탁월한 민족이다.
당시 식민 장관이었던 처칠은
컨트롤하기 힘든 쿠르드족과 상대하기를 피한다.
나라를 가질 뻔한 쿠르드족은
터키, 이란, 시리아, 이라크
4개의 국가의 소수 민족으로 전락한다.
자국 이득만을 위한 냉엄한 것이
국제 사회이다.
아랍의 정체성은 좀 다르다.
언어와 이슬람을 믿는 것이 그들의 정체성이다.
예를 들어 이집트는 아랍인이 아니었고
이집트어가 따로 있고 역사와 혈통도 있었다.
그러나 이슬람이 전파되면서
이슬람을 통해 아랍어에 흡수되었다.
이슬람 문화가 그들의 정체성이 된 것이다.
그래서 이집트는 나세르 대통령 시절에
아랍주의를 주창했고 그것이 먹혔던 것이다.
아랍어는 역사 이래 최고의 강력한
제국주의 언어이다.
쿠란은 아랍어로만 전달받아야 하는
이슬람의 원칙 때문이다.
이건 무슨 집착인지 모르겠지만.
정체성이 너무 강해서 문제를 끊임없이
유발하는 민족도 있다. 바로 유대인이다.
영국이 골치 아픈 유대인들을 내쫓으려는
명목으로 시온주의자들을 부추겨
예루살렘에 나라를 만들어 주고
유엔의 승인을 받아주는 바람에
끊이지 않을 불씨를 중동에 심었다.
그리고
정체성이 약한 나라들인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가 가장 시끄러운 핵심 지역이 되었다.
크게 문제를 야기시키지 않았으나
이집트도 시끄럽고
미국 CIA의 작업으로 카다피가 제거된 후
리비아는 현재 내전 중이다.
이라크의 후세인도 독재자란 명목으로
그들의 작업에 의해 끝났다.
참고로 미국 CIA는 골수 딥 스테이트
세력 중 하나이다.
2020년 미 대선 이후 미 펜타곤에서
CIA의 딥 스테이트 세력을 정리한 것으로 안다.
최근에는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사이에서도 큰 전쟁이 있었다.
민족 간의 사소한 감정적인 것이 도화선이
된 경우이다.
중동의 혼돈은
크게 5가지 이유로 정리할 수 있다.
1. 숙명적인 유대교와 이슬람,
2. 해결 안 될 이슬람의 두 분파 수니파와 시아파,
3. 강대국들인 외세의 개입,
4. 외세의 개입에서 비롯된
입헌 군주제의 출현으로 인한
왕정과 공화정의 패권 싸움,
5. 마르크스주의 저항 세력으로 생긴 이슬람 형제단에서
파생된 과격 저항 단체들.
그리고
5가지 요소 각각은 또 각기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1. 유대교, 이슬람 = 2
2. 수니파와 시아파 = 2,
3. 외세인 영국, 프랑스, 미국, 러시아, 중공 = 5,
4. 관계된 왕정과 입헌 군주제의 중동 나라들 = 23
5. 중동 대표적 저항 단체들 = 8
이 분류된 숫자들을 다 곱하면
사태의 경우수가 생길 것이다.
2 X 2 X 5 X 23 X 8 = 3680
3680 가지 경우수에서 벌어지는 판세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니 누군들 답답하지 않겠는가!
다만, 각각의 요소들을 알고 있어서
새로운 판이 벌어질 때
상황 파악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 최선이리라.
유대인들은 죽지 않는다는
선민의식을 갖은 민족이다.
하지만 고난의 형극은
이스라엘에서의 추방(디아스포라)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 어려운 일이 발생할 때마다
탄압을 받던 유대인들은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된다.
이것은 '알리아'라 한다.
1896년에 스위스의 기자 출신
헤르젤이라는 유대인이
<유대 국가론>이란 책을 쓴다.
그다음 해 시온주의자 회의를 가지고
시온주의가 일어난다.
시오니스트 운동으로
이스라엘이란 나라가 만들어진다.
처음에는 유대 독립국가 설립을 위해
시프러스 섬, 우간다, 아르헨티나를 고려했다.
시오니즘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정체성이 필요했다.
결론은 시온산으로 가야 했다.
영국은 이스라엘의 건국을 위해
발포어 선언을 해준다.
1948년 5월 14일에 이스라엘이 건국된다.
팔레스타인들에게는 재앙의 날이 시작된다.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은 당연히 난리가 난다.
이때부터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분쟁은 물론
아랍국가들과의 끝없는 전쟁이 시작된다.
수니파와 시아파 분포도
무하마드가 후계자 지명 없이 사망했다.
예언자의 후계자를 칼리파 라 부른다.
칼리파가 준비가 안 된 것이다.
혈통파(시아파)와 선출파(수니파)
두 파로 나뉜다.
칼리파 뽑을 때 선출파가 당선이 되다가
4번째에 혈통파가 된다.
그런데 그가 다른 극진 세력인 선출파에게
암살을 당하고
혈통파는 칼리파 자리를 찬탈당한다.
그리고 선출파는 우마이야 왕조가 만들어지며
세습제로 가고
혈통파는 지하로 숨어 예배를 보게 된다.
이때부터 시아파와 수니파의 골이 깊어진다.
혈통파인 시아파 대를 잇는 사람을
'이맘'이라 한다. 굉장히 높은 리더의 지위이다.
12번째 마지막 이맘 마흐디가 어느 날 사라진다.
심판의 날에 다시 나타날 거라 한다.
이슬람의 보조 경전인 하디스에도
기록이 있는데,
그 재림은 현 시리아 땅에서라고 한다.
16세기에는 오스만 술탄이 수니파의 지도자였다.
페르시아 사파비 왕조를 창건한 이스마알 1세는
수니파인 오스만 술탄 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페르시아 국민들을 수니파에서 시아파로
강제 개종시킨다.
그 과정을 거쳐서
지금의 이란이 시아파의 맹주로
강건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은 페르시아의 자존심이
이란을 시아파가 되게 한 이유라 본다.
수니파의 대부는 사우디아라비아이다.
제1차 세계 대전 때,
영국이
무하마드의 증조부를 시조로 하는
아랍의 명문가인 '하심가'에게
오스만 튀르크와 싸워주면
뒤에 나라를 세워주겠다고 부추긴다.
오스만 튀르크는 제1차 세계 대전 패전국으로
제국이 붕괴된다.
영국과 프랑스에 의해 여러 나라들이 생겨난다.
하심가는
영국에게 나라를 달라고 요청한다.
영국은 그 약속 없던 거로 하고
프랑스를 끌어들여 프랑스와 나눠 먹기로 한다.
본격적인 아랍 땅따먹기를 벌인 것이다.
이에 하심가는 컴플레인을 한다.
영국은 이라크와 요르단 지역을 내준다.
현재는 요르단만 소유하게 된다.
시리아 내전을 종결지은 것은 러시아이고
리비아 내전에도 개입한다.
러시아는 미국처럼 발을 뺄 수 없다.
러시아 체첸의 이슬람주의자들이
터키의 이슬람주의자와 연결되어 있고
다게스탄 같은 경우에는 이란하고 연계되어 있다.
중동이 관리가 되지 않으면
러시아는 불안하다.
그래서 아프간에서 손을 뗀 이후
한동안 잠잠했는데
다시 중동에 개입하지 않을 수가 없다.
외세의 개입 순서는
영국을 필두로 프랑스> 러시아> 미국>
최근에는 아프간에서 미군이 철수한 이래로
제국의 무덤에 중공이 말려들 것 같다.
중국의 숙원 사업인 일대일로와
연관되어 있는 데다가
중공이 무역 항로로 파키스탄으로부터
장기 임대한 과다르 항구까지
공사할 파이프 라인이 볼모로 잡혀 있기 때문이다.
탈레반은 파키스탄이 배출한 세력들이다.
게다가 파키스탄은 핵 보유국이라
중국이 함부로 할 수도 없다.
역사적으로 중동은
칼리파나 술탄이 지배를 해와서
오스만이 망한 후에도 모든 나라들이 왕정이었다.
서구의 영향으로 근대화주의자들이 나오면서
이슬람의 정치 개입을 차단하는
공화정을 들여오자고 한다.
군부가 왕정을 하나하나 무너뜨린다.
이집트에서 그랬고 이라크에서 그랬고
시리아도 그런 세력이 장악을 하게 된다.
이집트에서는 나세르가 '아랍 민족주의'를
주창해서 아랍인들의 호응을 얻는다.
이에, 사우디와 그 밖의 나라들의
왕정의 불안은 커져만 간다.
그리고 사우디는 '아랍 민족주의'와 반대인
'이슬람주의'로 간다.
그런데,
중동의 국가들에서는 석유가 나기 시작한다.
공화정이 된 나라에선 계속 쿠데타가 일어나고
내전에 휩싸이고 전쟁이 일어나 불안해진다.
민족주의 성향이 있는 공화정파들은
초기에는 멋있어 보였으나
석유가 나오는데도 안정이 되지 못한다.
이래서,
중동은 가난한 공화정과
부자인 왕정으로 나뉘게 된다.
물론, 왕정이나 재벌이나 나라만 틀리지
행태는 거의 흡사하고 결과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결과는 안정된 나라인가 아닌가 가 좌우한다.
그래서 국제 정세에서도
줄을 잘 서야 된다는 얘기가 나온다.
사우디는
세계의 큰 형님 미국이 뒤에 있었던 것이다.
사우디는 안보와 재력을 얻고
미국의 달러는 기축통화가 되었다.
사우디, 쿠웨이트, 바레인, 아랍에미리트,
카타르와 같은 왕정국들과
이집트, 이란, 레바논, 이라크, 시리아,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공화정 내지는
이슬람 원리주의 국가들을 비교하면
답은 즉시 나올 것이다.
아랍의 왕정은
2011년의 아랍의 봄이 북아프리카에서 시작해
홍해를 지나 시리아까지 왔던 것을
불안하게 생각했다.
'재스민 혁명' 이후, 왕정이 무너진 나라가 생기면서
공화정으로 인한 권력 위기로 불안한 정국은
지속되고 있다.
중동에서 공화정을 추진하는 이유는
유럽이 수많은 전쟁 후에
민족주의로 안정이 되고부터
19세기부터 강한 나라들이 된
유럽의 사례를 봤던 것이다.
중동에서 제일 먼저 그 생각을 한 것은
튀르크인들이었다.
유럽도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자리 잡는데
몇 백 년간 전쟁을 치렀다.
지금 아랍도 그 도상에 놓여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도 마찬가지다.
단, 동아시아 한, 중, 일은 예외이다.
왕권이 무너지고 민족주의가 형성되기 쉬웠다.
이동을 안 하고 같은 말을 가지고
같은 땅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비교해 보면
단합이 잘 된다.
민족적인 정체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드문 예에 속한다 하겠다.
나라별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물론이고
예멘까지 전쟁 중에 있고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전쟁은
일단 아르메니아의 패배로 종식되었다.
시리아 내전은 10년 간 사태가 증폭되어
주변 이란, 사우디, 터키 등의 나라들과
러시아와 미국이 전쟁에 가담한 상태로 치달아
잠정 휴전 상태에 놓여있다.
시리아 내전은
모든 단초를 제공해 놓은
영국과 프랑스는 빠져 있고
러시아와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겉으로는 자유, 인권을 얘기하더라도
자국의 이권을 위해 포석을 두고 있으며
무기를 시험하고 팔아먹는 시험장으로도
쓰고 있는 실정이다.
이 복잡한 상황은 오래갈 판세이다.
종파적으로는,
시아파가 수니파보다는 수는 적으나
호메이니의 때부터 생긴
'이슬람 혁명대'의 활동으로
이란의 시아파가
수니파의 사우디아라비아를
포위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제적으로는,
미국 본토에서 쉘 에너지 개발로
산유국이 되면서 중동에 발을 빼고
그 자리에 러시아가 들어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