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승희 Nov 25. 2022

파키스탄 2

화가의 심미안과 통찰력으로 본  <핵심 미술 이야기>

화가의 심미안과 통찰력으로 본

<핵심 미술 이야기>




근대부터의 중동 상황


전쟁에 휩싸인

중동의 나라들 12

파키스탄 2



인더스강은 옛 인도에 흘렀다.

지금은 파키스탄에 흐른다.


인더스강이 파키스탄에 흐르니 

인도의 고대 유적은 파키스탄에 

많이 남아 있다.


인더스강과 함께 시간은 흘러

러시아와의 그레이트 게임에서

영국이 인도에서 철수하며

아프가니스탄 국경선을 긋는다.

러시아가 못 내려오게 하려고

아프간 동부 파슈튠족 땅을 

반으로 선을 긋는다.


인도 땅은 넓어지고 아프간 땅은 좁아지며

사이에 있던 파슈툰족은

인도와 아프간으로 양분된다.

후에 그 파슈툰족이 살던 인도 땅은 

파키스탄이 독립되며 파키스탄에 포함된다.

파키스탄은 그로 인해 굴러들어 온 파슈툰족을

외세에 써먹으려고 특수 교육시킨다.

그 교육생들을 탈레반이라 한다. 


현재 중동의 모든 문제의 시발점은

영국의 이러한 국경선 긋기에서 비롯되었다.




파키스탄 핵폭탄의 아버지

압둘 카디르 칸


압둘 카디르 칸




칸 박사는 

파키스탄을 이슬람 최초의 핵무장 국가로 만들어 

국가적 영웅으로 칭송받았던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2004년에 이란, 리비아, 북한에 

불법적으로 핵 기술을 공유한 혐의로 체포된다.

칸 박사가 핵 기밀을 다른 나라에 전수했다는 폭로는 

파키스탄을 충격에 빠뜨렸다.

당시 그는 TV 연설에서 깊은 유감과 사과의 뜻을 표명했다.


칸 박사는 당시 파키스탄 대통령이었던 

페르베즈 무샤라프에 의해 사면됐지만 

2009년까지 가택 연금됐다.

그의 행동은 서방의 많은 서방국들을 화나게 했고, 

서방은 그를 "역대 최악의 핵 확산자"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는 파키스탄에서 

국가 안보 강화의 역할을 한 

자부심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칸은 핵무기 기술의 확산을 도운 큰 책임이 있다. 

그가 자국의 핵프로그램 노하우를 

타국에 전파한 그 동기가 돈이나 이념, 

또는 파키스탄 지도부의 명령에 의한 것인지는 

항상 모호하다.


파키스탄이 핵보유국이 된 것을

미국은 용인한다.

왜냐하면, 파키스탄은 인도와 싸우고 있고

중국하고는 붙어있는 나라이고

미국이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 국가였기 때문이다.

그런 파키스탄이 그 주변 다른 나라에

넘어가는 것보다는

아무도 못 건드리게 하는 것이

미국에게 유리한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서방 국가의 경우 

핵무기 확산을 막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고,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영국 해외정보국(MI6)은 

칸의 네트워크를 와해시키는 일을 했다.




칸은 서구의 정보원들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 중 한 명으로 

묘사될 수 있지만, 

고국에서는 영웅으로 칭송받는다. 

이러한 사실은 칸뿐만 아니라 

세계가 핵무기를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한다.


핵무기를 보유한 서방 국가들은  

왜 다른 국가들의 핵 보유는 거부하는지? 

의문이다.




핵 개발


파키스탄은

1972년에는 외국의 침입을 막는다는 구실로 

대대적인 핵 개발에 나섰으며, 

그 해에 첫 핵시설이 완공되었다.

최대 주적인 인도가 1974년에 

첫 핵실험을 실시하는 것으로 이에 맞서자, 

파키스탄도 핵 개발에 박차를 가했고 

1979년에는 파키스탄도 

드디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1977년에 파키스탄 인민당의 좌파 정권에 

반발한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다. 

무하마드 지아 울 하크 장군이 

1978년에 새 대통령으로 취임하였으며, 

군부 정권은 1977년부터 1988년까지 

기업화와 경제화 정책을 펼치며 

파키스탄을 남아시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권으로 올려놓는 데에 성공하였다. 


이 파키스탄의 성장 기간은

아프간 전쟁(1978년~1989년) 중이었다.

한국 전쟁 때, 일본이 전쟁 특수를 보았듯이

파키스탄도 군부 정권과 경제화 정책과

옆 나라 전쟁 특수가 맞아떨어져

경제가 성장했다.


소련이 침입하자,

아프가니스탄과의 국경지대였던 

파슈툰족의 파키스탄 북서부 지역은 

반공산 세력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파키스탄의 이슬람 세력들은 

아프간 공산정부가 이슬람을 

탄압하는 것을 비난하며 파키스탄 정부에게 

‘지하드’에 나서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을 파키스탄 정부는

그동안 키워온 파슈툰족의 탈레반들을 잘 이용했다.

파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 지역에서 

미국이 무자헤딘에게 지원을 해주는 것을 도와 

소련 지배하의 아프가니스탄 공산정권을 

몰아내는 데에 일조한 것이다.



1997년 인도가 2차 핵실험을 하자 

파키스탄도 이에 맞서 핵실험을 진행하였다.

세계적으로도 최대 규모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해외에서는 세계 안보를 이유로 

점차 파키스탄에게 핵무기를 감축하라고 

요구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감축의 움직임은 없다.



인도와의 갈등이 날로 심각해져 가던 와중에, 

카길 지역에서 군사적 대치 상태가 고조되었으며 

1999년에는 카길 전쟁이 터졌고, 

국가가 혼란스러운 틈을 타 

군부의 페르베즈 무샤라프 장군이 

무혈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였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1999년부터 2008년까지 

대통령으로 재임하며 독재 정치를 폈고, 

이 시기에 대대적인 계몽 정책을 펼쳤으며 

사회자유주의, 경제 자유화 정책을 펴 나갔다.

그러나 의회에서 밀린 무샤라프 대통령은 

탄핵의 위협을 느끼고 결국 2008년에 사임하였고, 

파키스탄 인민당이 다시금 여당이 되었다. 

그러나 지나친 부패 행각, 그리고 사법권 침해 등 

행정권 남용으로 인하여 정계가 혼란스러워졌다.


2013년에 건국 66년 만에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한편 2018년 7월 25일에 진행된 총선에서, 

현 파키스탄 총리인 임란 칸이 이끄는 

파키스탄 정의운동당이 예상을 뛰어넘는 

압승을 거두면서 새로운 여당이 되었다.

이로 인하여 파키스탄 인민당, 파키스탄 무슬림 연맹, 

군부가 돌아가면서 정권을 차지하던 순환고리를 깨고 

마침내 임란 칸이 새로운 총리로 취임하였다.



파키스탄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이슬람교’ 자체를

국가의 주 설립 목적으로 삼고 건국된 국가이다.

파키스탄은 인도의 무슬림들이 모여 만든 나라이기에, 

이슬람교가 국가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타 국가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지대하며 

이슬람 율법과 샤리아가 

헌법이나 민법보다 더 큰 권위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 


파키스탄은 이집트, 인도네시아, 요르단 등 

타 이슬람 국가들에 비해서 종교색이 강하여 

심지어 국적보다도 종교를 우선시한다.


1인당 GDP는 약 1,388달러 정도이고

세계은행에 의하면

파키스탄은 굉장히 발전 가능성이 높은 국가 축에 끼며,

특히 유난히 젊은 층들의 비율이 높은 덕에

향후 경제에 선순환이 예상된다고 전한다.




지정학적 위치


파키스탄의 지정학적 위치는 

남아시아, 중동, 중앙아시아를 잇는 요충지이다.

세계 석유 공급의 핵심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중앙아시아를 통한 원유 수송로의 

중간에 자리하고 있다.


파키스탄 남부 인도양에 위치한 카라치 항구를

통해서 아프간을 통과하면

중앙아시아와 무역로가 열리는 것이다.











독립 이래 파키스탄은

해외 국가들과 활발히 관계를 맺어왔다. 

특히 인근의 중국과 관계가 굉장히 친밀한 편이다.

NATO가 아닌 국가들 가운데 

미국의 동맹국이기도 하다. 

테러와의 전쟁에도 미국의 편에서 참전한 바 있다. 

파키스탄의 주요 외교 정책은 

주로 영토 분쟁, 

이슬람 세계 통합, 

국가 정체성 확립 등에 집중되어 있으며, 

특히 타 이슬람 국가들과 관계를 다지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쉽게 얘기해 정신적으로 철저한 이슬람이면 된 거고

속세는 이득이 되면 뭐든 할 수 있다 이다.



파키스탄은 남쪽으로 바다를 끼고 있어서

지리적으로 인도양에서

중앙아시아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지점에 위치해 있다.


미국이 9.11 테러를 당하고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9.11의 주범인 알 카에다를 소탕하고자

아프간으로 치고 들어가려 했다.

아프간으로 가려면 파키스탄을 거쳐가야 했기에

미국은 파키스탄의 요구 조건을 모두 들어줬어야 했다.

파키스탄은 금융과 무기 지원을 받는 대가로 

미국의 편에 서서 핵심적 동맹국 코스프레를 한다.

미국이 아프간을 점령하고

파키스탄은 미국을 통행시키며

미국이 아프간 주둔 내내

이리저리 많이도 삥을 뜯어먹고살았다.


파키스탄 남쪽에는 카라치 항구 외에

큰 배가 접안 가능한 또 다른 항구가 있다.

과르다항이다.

러시아가 노리던 항구였다.

그 항구는 오만 소유였다.

파키스탄은 미국 CIA 자금으로 

오만으로부터 사서

해상 일대일로도 추진하고 있는

중공한테 팔아먹었다.


이렇듯,

대국들을 상대로 딜을 해서 이익을 취하는

재주가 많은 나라가 파키스탄이다.







인도와의 관계


파키스탄과 인도는 

건국 이래부터 현재까지 관계가 굉장히 안 좋다.

현재에도 카슈미르 분쟁 등 영토 문제가 

갈등의 씨앗으로 남아있다. 

이 지역에서는 무려 4번이나 

인도와 파키스탄 간에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파키스탄은 

바로 남쪽에 붙어있는 인도를 견제하기 위하여 

이란과 터키 등 인근 이슬람 국가들과 관계를 

가까이 유지하고 있으며, 

이 덕분에 파키스탄 외교에서 

가장 핵심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들 중에 

이란과 터키가 최우선 순위에 들어간다. 

그 외에도 사우디아라비아와도 가깝다.




앞으로의 파키스탄


신장과 접한 나라는 중국을 제외하고

모두 이슬람이다.

신장도 이슬람이다.

지도상으로만 봐도

중국 공산당과 이슬람의 충돌이 예상된다.

아프간에 미군이 철수하고

카불이 탈레반에 장악된 후

중공은 긴장 안 할 수가 없다.

위구르 독립운동이 전개될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중공이 당황해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나?

탈레반에게는 당황을 넘어 회유책을 쓰고 있다.

탈레반은 파키스탄에서 키운 애들이다.

탈레반 뒤에는 파키스탄이 있다.

파키스탄과 중국과의 대결 양상이 된 것이다.


미국이 철수하고 이번에는 중공 차례다.

중공은 탈레반에게 지원을 약속했다.

파키스탄의 앞잡이 탈레반은

중공의 지원받을 것은 다 받고

엉뚱하게도 신장 독립군을 뒤에서 도울 것이다.

아프간의 미국 지원금이 뒤로 탈레반에게 넘어가

탈레반 육성 자금으로 사용되었던 전례가 있다.


아프간은 제국의 늪이요,

파키스탄은 제국을 수탈 대상으로 아는 나라이다.


작가의 이전글 파키스탄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