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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관람 후기 3

2023. 6. 12 / 국립중앙박물관

by 이승희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관람 후기 3




초상화와 풍경화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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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 반 다이크(1599 ~ 1641)

플랑드르의 화가이다.
'플랑드르 그림'의 대표적 초상화가로 유명하다.
루벤스에게 배우고 루벤스의 공방에
그의 조수로도 있었으나
루벤스와 같은 천재성은 볼 수 없다.

이탈리아에 유학하여
티치아노 · 베로네세 등
베네치아 대가의 감화를 받았으며,
부드러운 구도와 선미한 색채로써
재능을 보였다.

17세기 유럽 1632년부터
찰스 1세의 궁정 화가로서
죽을 때까지 200점이 넘는 초상화를 남기며
영국의 회화는 초상화가 발달하는데
그에 영향을 끼쳤다
화가라기보다는
초상화 장인이라 하는 것이 정확하겠다.





고야(1746 ~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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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야의 여인 초상화는

고야의 작품들 중에서도 수작에 속한다.


고야가 19세이던 1765년, 마드리드에서

벨라스케스와 렘브란트의 작품에 감동을 받았다.

렘브란트의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

이 작품에서도 알 수 있는데,

배경은 어둡게 하고

주제인 여인만 밝게 처리했다는 것이다.




고야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낭만주의 화가이다.

고야는 궁정화가이자 기록화가였다.

18세기에 고전적인 경향에서 떠나

인상파의 시초를 보인

스페인 근세의 천재 화가이다.


파괴적이고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과

대담한 붓터치 등은

후세의 화가들, 특히 에두아르 마네와

파블로 피카소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옷 벗은 마하 1800년, 스페인 프라도 박물관






옷 입은 마하 1803년, 스페인 프라도 박물관




1800년에 《옷 벗은 마하》를 그렸고

1803년에는 《옷 입은 마하》를 그렸다.


이 두 그림은

어떠한 비유나 신화적 연관성이 없는

현실의 여인을 대상으로 한 그림으로,

"서양 예술 최초의 등신대 여성 누드"로

평가받는다.


《옷 벗은 마하》는 신성 모독 논란을 일으켰고

고야는 그림에 옷을 입히라는 압력을 받았다.

이에 고야는 그림에 옷을 입히는 것을 거절하고

《옷 입은 마하》를 새로 그렸다.


1813년 스페인 종교재판은

마하 연작을 외설스럽다고 압수하였으나

1836년 반환하였다.

고야는 간신히 이단 심판을 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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