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6. 12 / 국립중앙박물관
바로크 시대의 알기 위해서는
대표되는 작가를 알면 된다.
대표작가로는
카라바조(1571 ~ 1610)
루벤스(1577 ~1640)
벨라스케스(1599년 ~ 1660년)
렘브란트(1606 ~ 1669)이다.
년대를 알면 미술사와 그림을 이해하기에 좋다.
대부분 일찍 태어난 사람이 일찍 죽는다.
이번 전시에는 루벤스가 빠져 있다.
바로크 시대에 루벤스가 빠져서야 말이 되나!
이 관람 후기 포스팅에선
렘브란트 소개에 루벤스를 넣기로 한다.
그림 주제에 밝은 색을 주고
나머지는 어둡게 처리하는 기법은
이탈리아의 문제아 카라바조가 창안한
새로운 스타일의 그림이다.
그 영향력은 유럽 전역을 강타했다.
그중 가장 영향을 받아
더 심화시킨 작가가 있었으니
그가 렘브란트이다.
이번 전시에 렘브란트 그림 한 점이 왔다.
렘브란트는 말년에 자화상을 지속적으로
그렸는데,
생활이 어려워 모델비가 없어서라고 한다.
이번 전시된 자화상은 최후의 자화상이라
표정과 컬러가 밝지 않았다.
같은 시기의 자화상치고 아래 그림과는
차이를 보인다.
아래의 자화상은 표정에 의욕이 남아 있다.
1492년의 스페인 유대인 추방령인
레콩키스타(Reconquista)는
향후 세계 강대국의 변천과 부의 이동이
유대인의 이동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세계사에서 주요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이때 쫓겨난 유대인들의 주류는
포르투갈을 거쳐 네덜란드에 자리 잡아
16~17세기 ‘네덜란드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그 전성기인
17세기의 네덜란드 한복판에 렘브란트가 있다.
렘브란트는 바로크 시대 빛의 화가이다.
그는 일반적으로 유럽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하는데
나는 그중에 탑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완성도 면에서는
루브르의 모나리자를 따를 그림이 없지만,
옆방에 있던 렘브란트의 작품이 자꾸 생각났다.
홍대 미학 교수님이셨던
미술평론가 이일 선생님의
렘브란트 평은 다음과 같다.
계속 상상으로
렘브란트보다 한 세대 먼저 태어난
루벤스(1577 ~1640)와 비교해 보며
알게 된 사실은,
루벤스의 그림이 천사가 인간 세상에
화려하게 내려오는 이미지를 준다면
렘브란트의 그림은 이미 인간화되어
굴속에서 모닥불을
막 지피고 있는 느낌이랄까?
살 자체가 천사가 아닌 인간의 것이지만
신성함 대신 따뜻함이 묻어 있다.
그 훈훈함은 인간 고유의 아름다움이다.
터치도 많이 안 했지만 깊이도 있다.
렘브란트와 루벤스가
성경의 다윗 왕과 밧세바를
같은 소재로 해서 그린 그림이 마침 있으니
비교하기에 좋다.
유부녀인 밧세바가 다윗 왕으로부터 온
숙청을 들어야 하는 편지를
받았을 때의 장면이다.
렘브란트의 밧세바는 편지를 읽은 후의
심란한 표정이 잘 묘사되어 있다.
루벤스는 밝은 성격의 소유자라
편지를 받아 읽기 직전의 순간을
택해 그렸다.
그래서 밧세바의 심리 묘사는 되지 않았고
루벤스의 밝은 성격이
모델에 들어가 있을 뿐이다.
렘브란트, 목욕하는 밧세바, 루브르 박물관
루벤스, 목욕하는 밧세바
스페인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년 ~ 1660년)는
바로크 시대 펠리페 4세 궁정을 주도하던 화가였으며
초상화에 유능한 화가이기도 했다.
19세기의 초반까지 벨라스케스의 작품은
다른 모든 인상주의 화가들과
사실주의 화가들의 귀감이 되었으며
마네 또한 그들 중 한 명이다.
풍요로운 주방과 넘치는 생선 시장 그림은
이번 전시에서 가장 충격적인 그림일 것이다.
이 점잖거나 고상하지 않은 그림의 정체성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졸부의 특성으로 정리한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톨릭 왕국들이
이슬람 세력을 축출하기 위해 벌인
레콩키스타(Reconquista)로 인해
스페인에서 퇴출된 유태인들과 자본은
북쪽으로는 네덜란드로 이동한다.
민족과 자본의 대이동이었다.
그 후 네덜란드는 최초의 동인도회사가 창립되어
세계적인 무역으로 재력의 중심이 된다.
갑자기 부국이 된 네덜란드의 풍요는
미술에도 지대한 결과를 가져오고
네덜란드는
역사적인 작가들을 배출하는 나라가 된다.
그 작가들의 면모를 보자.
렘브란트와 베르메르 그리고 할스, 얀 스텐
... 반 고흐, 반 동겐.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에
많은 화가들이
인물화, 풍경화, 실내화, 정물화까지
각 분야에서 활동하였는데
경제 부국이 되며
미술품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부유층뿐만 아니라
소상공인들의 가게 벽에도 그림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