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 스터디 6
고대사를 다룬 역사서들
그리고 환국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기원전 8세기경에 구전으로 성립되고,
기원전 6세기경에 문자로 기록되었다고 추정된다.
고대 그리스 문학에서 가장 오래된 서사시로,
트로이 전쟁을 다룬 작품이다.
서양의 역사서는
기원전 6세기부터 다룬
헤로도토스의 '역사'라는 책이 최초이다.
구약성경(유대교에서는 "타나크")은
중립적인 용어로 '히브리 성경'으로 불린다.
기원전 1500년~200년 사이에
유대 민족의 구전 전승이
문자로 기록된 이스라엘 민족 역사서로
역사 이래로 가장 많이 출판된 책이다.
메소포타미아 길가메시의 서사시는
기원전 2,100부터의 책이다.
인도 힌두교에는 베다는 경전이 있다.
베다(Veda)는
3,500년 전에 아리안 족이 인도에 이주 후
산스크리트어로 만든 방대한 양의 작품이다.
베다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구전문화 전통 중 하나이다.
동양에는
중국 전한의 사마천이 쓴 '사기'가 있고
상고 시대의 황제부터
한무제 태초 연간(기원전 104~101년)을
다루고 있다.
한국에는 환단고기가 있다.
고대부터 전해지던 역사서 4권
삼성기 上, 下, 단군세기, 태백일사, 북부여기를
계연수가 엮고
이후 제자인 이유립이 1979년에 출간한다.
시대로 보아 세계에서 가장 앞서고
내용도 올바르고 놀라운 환단고기이다.
그러나
신민사관에 찌들은 한국 역사학계에서는
위서라며 취급하지 않는 현실이다.
또 하나의 위서가 있다.
신라 눌지왕 때 박제상이 저술한 것으로 전하는
징심록 중 일부를 박제상의 55 세손인
박금(박재익)이 1953년에 출간한 '부도지'이다.
1986년 번역본이 나와 시중에 알려지기 시작한
부도지는 최초의 역사를
파미르고원의 마고 시대부터 시작한다.
가장 태초의 역사서에 해당되는데
한국전쟁 때 원본이 손실되어 아쉬움이 많다.
환국의 강역
동이족의 환국과 배달국이나 고조선은
제국이었지만 지금으로 치면 연방체제였다.
환인 환국 시대(BC 7197 ~ BC 3898 )는
총 12개국으로 되어 있었으며
그중 한 나라가 월지국이다.
월지국은 옥 무역을 담당했던 나라이다.
환국은 환하다는 우리말에서 기원한다.
환한 것은 밝은 것이다.
그래서 동이족이 있는 곳에
밝산>박산, 백산(백두산), 태산(태백산)이
중심산이기도 하다.
해도 동이족의 상징이었지만
달 월도 밝다.
월이 들어가는 국가명은
동이족의 일파라고 보면 된다.
월지가 대표적이다.
호(胡) 자에도 월(月)이 들어간다.
한 때 화하족들이 동이족들을 퉁쳐서
다 호로 불렀던 시기가 있다.
업신여기며 오랑캐 호로 비하하기도 했지만.
그래서
동호라는 나라도
동이족의 나라였음을 알 수 있다.
환국의 옥 문화
환국 시대 흥륭와 지역 출토 옥 귀걸이와
강원도 고성 출토 옥 귀걸이
2023년 1월,
동이족의 문화를 알리는
동이월드 제작진이
타이베이 국립고궁박물원 옥 전시에서
'상고시대 옥기 특별전'을 취재했다.
그 취재에서
동이족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발전된
문화를 가졌다는 것을 입증하는
유물을 목격한다.
그 유물은 8,000년 전 옥 귀걸이였다.
지금으로부터 8,000년 전이면
기원전 6,000년 전 유물이다.
환국의 시기가 기원전 7169년부터이니
환국의 유물이다.
다음은 동이월드가 취재한 내용이다.
대만 국립고궁박물원
상고시대 옥기 특별전
세계 4대 박물관으로는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영국 대영 박물관,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을 꼽는다.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은
총 70만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1948년, 중국의 국민당 장개석이
공산당에게 패하기 전
마오쩌뚱과 대만으로 이주 합의 후,
중국 역사 상
최고의 진귀한 보물들을
대만으로 가져가서이다.
이 전시에서 가장 오래된 옥기들은
8,000년 전 흥륭와와
6,000년 전 홍산,
즉, 요서(요하 서쪽) 지역에서
출토된 것들이다.
강원도 고성 문암리에서도
동일한 옥 귀걸이가 출토되었는데
그것은 과거 동이족이
한반도에도 거주하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옥 귀걸이, 기원전 6,000년, 요서 흥륭와
옥 귀걸이, 기원전 6,000년, 강원도 고성
박물원 설명 지도에 보면,
옥기들이 출토된
흥륭와와 홍산 지역은
이족의 지역이라 되어 있다.
이족은 동이족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들 입장에서
동쪽에 있는 이(夷)나라라 하여
동이가 된 것이니,
이족이 동이족보다 이전 명칭이라 하겠다.)
가장 권위 있는 한자 자전인
설문해자에는
동이는
동쪽에 사는 큰 사람, 어진 사람이라고
나와 있다.
한나라 이전 시대에는
동이족이 숭배와 동경의 대상이었는데
한나라부터 동이가 동쪽 오랑캐라
폄하하여 부르기 시작했다
왜 그런고 하니,
상고 시대 광대한 영토를 지배한
동이족의 시조 격인
팔괘를 만든 태호 복희,
문자를 처음 만든 창힐,
농사를 처음 시작했다는 염재 신농,
전쟁의 신 치우천왕
이들이 모두 동양 문화를 처음 만든
주역들 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동이족이라는 것은
과거와 현재 중국 학자들도
모두 인정하는 바이다.
중국 역사서의 시작인 사기를 쓴
사마천도 이들을 동이족이라 하였고
대만대학의 실항진 교수와
북경대학의 예논민 교수도
중국은 동이 문화에서
출발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자기들을 세상의 중심,
즉, 화하족이라고 밝히는 중국인들은
동이족을 오랑캐라고 비하해 왔지만
한편으로는 동이족이
중국 문명의 기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현재에 와서
중국 공산당이 집요하게 추진해 온
역사 공작이 있다.
바로 동이족은 중국 민족이라는 것.
중국 민족이 수천 년간
동이를 오랑캐라고 비하하던 동이족을
지금에 와서는 그들의 조상이었다는
말도 안 되는 억지 논리이다.
그런데 그들은 이 모순을
기적의 논리로 돌파하고 있다.
고대 동이족을 지금 중국 화하족으로
흡수했다.
고대 동이족의 영토는 지금 그들의 영토이고
동이족의 후예인 조선족과 만주족, 묘족이
지금의 소수 민족이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고구리도 백제도 한복도 김치도
같은 이유로 전부 중국 것이라는
그들의 생떼는 정말 진지하고
공격적이고 세계적이다.
그 단적인 예로
치우 천왕에 대한
중국의 태도 돌변을 들 수 있다.
치우는 최초로 금속재 무기를 사용한
동이족으로 최대 영토를 개척했던 인물이다.
과거에 중국인들은
치우를 요괴나 괴물로 취급했다.
그들이 화하족의 시조로 모시는
황제 헌원의 원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산당이 1997년에 완성한
중화 3조당을 보면,
치우가 갑자기 중국인들의 조상이고
영웅이 된 것으로 바뀌어 있다.
또 2007년에 만들어진
염제신농과 황제 헌원의 거대한 석상을 보면
동이족의 염재신농을
중국 조상이었던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
중화3조당, 1997년 완성
염제 신농과 황제 헌원의 거대한 석상, 2007년 완성
이것들이 모두 중국 공산당이
동이족을 중국 민족으로 굳히기 위한
대대적인 역사 공정이다.
동이족이 중국인이어야
동양 최초의 문명을 중국인이 만든 것이고
한국은 중국 문명의 아류가 되기 때문이다.
또 차후에는 북한도 중국이니
중국에 포함되는 것이 마땅하다는
그들의 외교 논리를 뒷받침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동이족의 적자인
우리 한국인의 역사관은 어떤가?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스 기사에 의하면
2001년까지는 국사 교과서에 실려 있던
동이족 분포 지도를 보면
고조선도 동이족이고
그 영토가 중국 대륙의 동부를 포함한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그런데 이 지도가 2010년 교육 과정부터
한국고대사학회의 주도로 제거되었다고 한다.
2016년 서울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열린
시민 강좌에서 한국고대사학회 소속
박대제 교수는 '동이족은 우리 조상인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는데
'동이족이 우리 조상이 아니라는 것'으로
결론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중국 대륙에서부터 한반도까지 그려진
이 동이족 분포 지도를
2010년부터 교과서에서 빼버렸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고 한다.
결국 2010년부터 현재까지
한국고대사학회의 이런 역사관에 따라
우리 단군이 세운 고조선이
동이족이라는 사실과
우리가 중국 대륙을 지배한 사실이
교과서에서 제거되었다.
지금 한국 학생들은
우리 역사는 반도를 중심으로
만주 밖으로는 나가지 않았다는
조선총독부 신민지 반도사관을 강조하는
지도로 공부해야만 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최근 나온 EBS 한국사 교재에도
동이족 분포 지도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중국 공산당과 일본 우익이
예뻐하고 손뼉 칠 만한 역사 교과서만
받들고 있는 현재의 주류 한국사학계이다.
국가 세금으로 운영되는 EBS에 출연한
한국고대사학회 소속 송호정 교수는
우리 고조선 문명이
중국 역사 기록에 근거해
최대 3천 년 전부터 시작했다고 장담하며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사학자들은
유사 역사학자라고 비판하고 있다.
옥 귀걸이가 출토된 것이 8천 년 전이고
그때 동이족 문명이 있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최초 5천 년의 한민족 역사가
삭제당한 셈이다.
신라의 안함로와 고려의 원동중이
한국의 상고사를 기록했다는 '삼성기'에는
기원전 7197년 안파견이라는 환인이
환국을 건국한 이래로
동이족 영웅들인
복희, 창힐, 신농, 치우가
바로 우리 한민족의 조상이고
그 족보가 어떻게 되는지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이들 동이족의 계보가 이어져
단군의 고조선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삼성기는 8천 년 전 출토된
옥 귀걸이와 그 이후 정교하게
발전해 온 옥기 문명이
어느 민족, 어느 나라의 것인지
상호 검증할 수 있는
상고 시대의 유익한 역사서이다.
이 삼성기가 실제 존재한 역사서라는 것은
조선왕조실록에도 나와 있다.
세조가 팔도관찰사에게 '삼성기' 등의 사서를
간직하지 말라고 하는 내용이다.
명나라에 사대주의를 했던 조선은
동이족이 중국을 지배한 내용이 나오는
삼성기를 없애버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삼성기는
조선시대 이후 자취를 감췄다가
1979년 이유립에 의해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된다.
이유립(1907~1986), 사학자, 민족운동가
그런데도 현재 한국의 주류 사학계에서는
이 삼성기를 위서라고 단정하고
유사 역사학이라고 비난할 뿐이다.
중국 공산당은 없는 사실을 꾸며내서라도
중국의 국익에 유리한 방향으로 역사를 가르친다.
그런데 왜 우리 정부와 사학계는
이미 출토된 유물도, 이미 출간된 역사서도
모조리 외면하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