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 스터디 12
아시리아의 멸망(기원전 609년) > 신바빌로니아
신바빌로니아를 독립시킨 나보폴라사르는
아시리아의 침입을 막아내고
메디아와 동맹을 맺고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를 합동 공격한다.
연대기에는 주변 나라들인
엘람, 페르시아, 킴메르, 스키타이가
협공에 참가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모두 아시리아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국가들이다.
동맹국들은 일 년 동안 도시를 포위하고
기원전 612년 공성전을 벌여
성안에 진입해 도시를 폐허로 만든다.
아시리아의 마지막 왕 사르다나팔루스가
궁전에 불을 질러 자살을 했다는 이야기가
그리스로 흘러 들어가면서
유럽에서는 비극적이면서 낭만적으로 다가왔는지
사르다나팔루스의 최후를 다룬 작품이 많이 나온다.
대표적인 작품이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화가
들라크루아가 그린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이다
들라크루아,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 루브르 박물관
이 그림은 적들이 난입하기 전,
후궁과 애마 그리고 보물들을 한데 모아
모든 것을 불태워버리는 것을 모티브로 그린 작품이다.
동양의 이국적 배경 그리고 에로틱한 분위기를
파격적인 구도와 강렬한 색채로 그려낸 작품이다.
신고전주의 엄숙함을 깨부수고
어떠한 도덕적 교훈도 발견할 수 없게 표현되었다.
들라크루아의 고전적이고 이상주의적인 것만
가르치는 아카데미에 대한 반항이었다.
신바빌로니아의 정복왕이자 건축왕
네부카드네자르 2세
신바빌로니아의 모든 역량은
바빌론을 재건해 과거의 영광과 명성을
되찾는 것에 집중된다.
그리고 그 미션은 바빌로니아 역사 상
함무라비와 함께 가장 뛰어난 왕이라 칭송받는
나보폴라사르의 아들
네부카드네자르 2세에 의해 달성된다.
노쇄한 나보폴라사르는
아들인 네부카드네자르 2세에게
기원전 607년,
시리아에 주둔해 있는 이집트 세력을 추출하라는
임무를 내린다.
무역의 중심지이자 지중해로 나아가는 통로
레반트 지역을 이집트에게 빼앗길 수는 없었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이집트를 몰아내고
나보폴라사르를 이어 왕에 즉위한다.
1차 바빌론 유수(기원전 597년)
유다왕국이 쇄락한 이집트의 뒷배를 믿고
신바빌로니아에 조공을 거부하자
기원전 597년, 네브카드네자르 2세는
유다왕 여호와 킴을 사살했고
그의 뒤를 이은 여호와 긴을 사로잡아
3000 명의 유대인과 함께 바빌론으로 끌고 간다.
이를 1차 바빌론 유수라 한다.
2차 바빌론 유수(기원전 587)
유다왕국을 떠나면서
여호와 긴 왕의 삼촌 시드키아를
허수아비 왕으로 앉힌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그가 반란을 일으킨다.
이에 기원전 587년,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십 년 만에
다시 유다왕국을 포위 점령하고
도망친 시드키아를 사로잡는다.
성경에 의하면,
시드키아가 보는 앞에서
그의 두 아들을 처형하고
그의 두 눈을 파내고 쇠사슬에 묶어
바빌론으로 끌고 갔다고 한다.
더불어 농부와 목축업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유대인이 바빌론으로 끌려간다.
이를 2차 바빌론 유수라 한다.
이처럼 북이스라엘 멸망 후 135년,
남쪽 유다왕국까지 멸망에 이르게 된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마지막으로 페니키아까지 멸망시키면서
레반트 지역을 평정하게 된다.
신바빌로니아가 레반트 지역을 차지했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경제적 부를 획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건축과 선박에 이용되는
레바논 삼나무를 독점하게 되었다
레반트 지역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엄청난 양의 레바논 삼나무를 벌목해
바빌론으로 가져왔고
바빌론을 개발하는 데만 집중한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바빌론을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최고의 도시로 만들고자 했다.
거대한 도시가 자신을 상징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시리아가 점령지 사람을 잔혹하 다룬 것과는 달리
포로들을 대규모 건설 노동력으로 활용한다.
각지에서 끌어 모은 자본력과 노동력으로
도시를 확장하고 화려한 건축물을 건축하게 된다.
대표적인 건축물들은
이슈타르의 문, 공중정원 그리고 에테메난키이다.
헤로도토스에 의하면,
바빌론 성벽 높이가 12미터를 넘었고
성문의 폭은 말 네 마리 끄는 전차 4대가
나란히 달릴 정도로 넓었다고 한다.
또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오래된 성벽 밖에 또 성벽을 쌓아 도시를 요새화했다.
최첨단 세라믹 기술
이슈타르의 문
바빌론은 독일의 고고학자 `로베르트 콜데바인`에 의해
이라크에서 발굴되었다.
1899년부터 무려 18년간 작업을 진행해
건물터와 수십만 점의 점토판을 발굴했다.
그때 발굴된 유적 중, 가장 보존 상태가 좋았던 것이
바로 이슈타르의 문이다.
콜데바인은 드러난 문의 벽돌을 모두 분해해
500개 상자에 담아 베를린으로 보냈다.
그리고 수년 뒤 복원한 이슈타르의 문이
지금 독일 베를린 페르가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것은 앞문의 일부이고
뒷문은 크기가 커서 창고에 보관 중이다.
그러니까 실제 이슈타르의 문은
박물관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크다고 하겠다.
이슈타르의 문은
전쟁신 이슈타르에게 바치는 성문으로
기원전 575년 네부카드네자르의 명령으로
성의 북쪽에 건설되었다.
너비 30미터 높이 23미터의 이슈타르의 문은
거대한 성벽과 연결되어 있으며
이 성벽은 중간중간 높은 탑들이 있어
감시와 방어에 용이했다.
이슈타르의 문은 방어 기능뿐만 아니라
예술적으로도 가치가 있는데
일단 성문 자체가 수호의 의미가 있는
푸른색 벽돌로 지어졌다.
이 벽돌은 진흙을 나무틀에 넣어 햇빛에 말린 후
코발트를 첨가해 높은 온도로 구어 만든 것이다.
한갖 진흙 벽돌이 아닌
영롱한 청금석으로 보이게 한 것이다.
이슈타르의 문을 통과하는 길에는
용과 황소와 사자가 부조로 장식되어 있는데
용은 마르두크 신, 황소는 아다드 신,
사자는 이슈타르 신을 상징한다.
이는 바빌론 주민들이 이곳을 통과할 때는
신들의 가호가
반대로 적들이 통과할 때는
공포감을 주는 용도로 제작된 것이다.
이러한 장식용 벽돌은 다양한 색깔을 내기 위해
유약의 재료로 재, 사암, 자갈들이 첨가되었으며
특히 높은 온도를 얻기 위해
지면에 노출된 원유를 사용했다고 한다.
당시로서는 최첨단 세라믹 기술이었던 것이다.
전쟁신 이슈타르
전쟁의 신 이슈타르의 모습이 올 누드이다.
이는 그리스의 여신들만이 누드이고
누드인 여신이 그리스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알게 해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오히려 문화 전파면에서 그리스가
바빌론의 영향력에 있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리스 조각은 미의 척도를 비례에 두어
팔등신을 만들어 냈지만
바빌론의 여신의 부조는
그러한 가미를 하지 않고
인간의 모습 그대로를 통통하게 묘사하므로
더 친숙히 다가온다.
포즈에서도 멋을 부린 자세를 연구하지 않고
단순히 균형을 잘 잡고 있을 뿐이다.
사랑의 결실
공중 정원
왕궁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건축 단지인데
단지 내에서 콜데바인은 아미티스 왕비의
공중 정원으로 추정되는 터를 찾아낸다.
그리스 시인 안티파트로스가 뽑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공중 정원이다.
메디아 왕국의 공주와 정략 결혼한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향수병에 걸린 아내를 위해
공중 정원을 건설해 준다.
공중 정원은 정원이 공중에 떠 있다는 뜻이 아니라.
정원이 높이 떠 있다는 뜻이다.
가로, 세로 123 미터에 높이는 100 미터 정도이며
계단식으로 건물이 올려져 있었다고 한다.
위로 갈수록 폭이 좁아지다 보니
자연히 테라스가 생기고
테라스를 화단으로 만든 것이다.
테라스에는 왕비의 고향인 메디아에서 가져온
온갖 종류의 나무와 꽃향기가 가득했다고 한다.
또 인공폭포가 끊임없이 쏟아져 내렸는데
이에 대해 로마 작가 비트비우스는
물을 끌어오기 위한 아르키메데스의 나선 양수기가
공중 정원에서 사용했던 것을 개량한 것이라 기록했다.
유프라테스 강이 가로지르는 바빌론
바벨탑 = 바빌론의 지구라트
에테메난키
바빌론의 지구라트는
하늘과 땅의 기초가 되는 집이라 뜻의
에테메난키라 부른다.
에테메난키는 가로, 세로, 높이가 모두 90 미터로
꼭대기에는 마르두크 신전이
사뿐히 올려져 있었다 한다.
약 30층 크기의 에테메난키는
바빌론 어디서나 볼 수 있었다.
성경 속의 바벨탑의 원형으로 알려져 있다.
바벨탑 이야기는 창세기 11장에 등장한다.
인간이 하늘에 닿기 위해 바벨탑을 쌓았고
야훼가 그 오만함에 분노해
하나였던 인간의 언어를 제각각으로 만들어
공사가 중단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성경에는 바벨탑을 진흙으로 구운 벽돌을 쓰고
천연 아스팔트인 역청을 사용했다는 내용이 있는데
바빌론의 지구라트가 그렇게 지어졌다.
로베르토 콜데바인은 바빌론을 발굴하던 중,
마루두크 신전 에사겔라 근처에서 사람들이
벽돌을 캐어 가는 것을 목격하고
땅을 파내려 가 7,500만 개의 벽돌로 지어진
에테메난키의 흔적을 발견한다.
이어서 비문을 하나 발견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주 오랜 옛날, 사람들은 각자의 말에 빠져
이탑의 건축을 멈추었다.
그 후로 지진과 천둥으로 탑이 파괴되었고
위대한 마르두크께서 이탑을 수리하라고
나에게 명령하셨다.
나는 탑이 놓인 자리를 변경하지 않았고
기단부를 제거하지도 않았다.
에테메난키에서 석비가 발굴도 되었다.
이 석비에는 계단식 탑인 에테메난키와
나부카드네자르 2세가 새겨져 있었고
에테메난키, 지구라트, 바벨탑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로써
나부카드네자르 2세가 복구했고
에케메난키가 바벨탑임이 증명되었다.
에테메난키 유적에서는 원통석도 발견되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있다.
내가 지구라트 에테메난키를 만들었다.
내가 그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입구로 향하는 문을 만들고
역청으로 만든 벽돌로 덮었다.
성경에서는 신전을 높이 짓는 것이
신에 대한 불손이고 오만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에게는
신에 대한 최고의 숭배 행위였다.
바벨이란 말이 히브리어로는 혼돈이지만
바빌론의 아키드어로는 바빌림 즉, 신의 문을 의미한다.
당시 바빌론은 서양과 중동의 중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