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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1

미술사 스터디 13

by 이승희

미술사 스터디 13




환인 시대로부터의

홀수 선호와 삼수(三數) 전통


'홍익인간'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뜻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환인은 이 뜻을 펼칠만한 시기에

천부인 세 개를 상징으로 제작하여

대를 이어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한다.

홍익인간이라는 신조는

환인 시대 때부터의 건국이념이었던 것이다.


역사서 '제왕운기'에는

배달국 시대에 환웅이 신시를 건설하고,

풍백, 운사, 우사를 거느리고

주곡, 주명, 주병, 주형, 주선악 5부서로

세상을 관장한 것으로 나온다.


환인 시대 제작하기 시작한 천부인은

3개,

황웅 시대 거느린 신하도 풍백, 운사, 우사로

3명으로

그리고 5부서로 행정을 펼친다.


천문에서는

북극성(1수)을 중심으로

북두칠성(7수)을 섬긴다.


이로써 1,3,5,7 홀수를

선호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전통은 삼국시대의 3국은 물론이고

강성했던 흉노제국 시대에도

따라 썼다.


이렇듯,

홀수 선호의 전통은 역사가 깊다 하겠고

단군 시대에는 3수를 숭배의 수로 여겼다.




삼랑 사상


우리 '이족(동이족)'에는 고래로부터

삼수를 신봉하는 삼랑 사상이 있었다.


어원으로 치자면, 삼랑(三郞)은

우리말 세시랑을 한문으로 쓴 것이다.

세시는

깊은 진리에서 세 가지의 에너지가

생성 확장된다는,

그리고 랑은

확장되어 나온 동그란 결과물을 뜻한다.

랑을 기호로 표시하면 원이다.

즉, 세시랑을 기호화한 것이 삼태극이고

삼태극의 우리말이 세시랑인 것이다.


아리랑과도 같은 의미로 보면 되겠는데,

아리랑은

한 점 'ㆍ'(아)에서

두 가지의 음양의 기운(ㄹ)이

확장(ㅣ)되어 동그란 랑(원)이 되었다는 의미이고

아리랑을 도안화 한 것이 태극이다.

태극의 우리말이 아리랑인 것이다.


ㆍ> ㄹ ㅣ > ㅇ


세시랑을 설명하며

아리랑에 대한 어원 도형적 이치를 말한 김에

스리랑도 더불어 얘기하고 넘어가 보자.

우리말을 기호학(심볼리즘) 입장에서 풀이하면,

'ㅣ'는 확장이나 팽창을

'ㅡ'는 축소나 수축을 표현한다.


아리랑이 '아'에서 에너지(ㄹ)가 확장(ㅣ)되는 것이라면,

스리랑은 한 점 '아'에서 축소된 에너지(ㅅ< x)가

다시 확장(리)되는 되는 것을 의미한다.


아리랑이 한 점에서의 창조라면,

스리랑은 한 점 이전인

진리 상태로부터의 창조라 하겠다.




삼랑 정신은

환국의 삼신사상으로부터 시작하여

배달국의 천황랑과

단군조선의 국자랑에서 시작되어

고구려의 조의선인,

백제의 무절,

신라의 화랑으로 이어졌다.

고려 시대의 제가화상과

조선의 선비문화에 이르기까지,

삼랑 정신은

한민족의 역사 속에서 이어져 온

중심 사상이다.


신라의 최치원(崔致遠, 857~?)이

난랑비(鸞郞碑)의 서문에서 말하기를,

“나라에 현묘(玄妙)한 도(道)가 있으니,

이것을 일러 풍류(風流)라고 한다."


난랑비란,

신라 화랑인 난랑이라는 인물을

기리는 비문이다.

전문은 전해지지 않고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인용되어 있다.


최치원은 화랑이었던 난랑을 추모하며

화랑(삼랑)을

우리의 고유한 현묘한 도이며

풍류라고도 표현한다.


최근 학자들은 그 현묘의 도를

환인 때부터 있어 온 '신교'로 얘기하고 있다.


일본 사료에 의하면,

신라에서는 화랑을 삼랑으로도

부른 것으로 확인된다.




고조선(기원전 2333 ~ 기원전 238년)


환단고기 4권 중,

행촌 이암의 단군세기에는

고조선은

기원전 2333부터 기원전 238년까지

2096년간의 나라이고

단군들 47대의 명칭과 재위한 시기가

기록되어 있다.


고조선은 후대에

다른 조선국과 달리해 부르기 위해

고 자를 붙였지만, 본래 이름은 조선이다.

조는 우리말로는 새벽이다.

선은 작은 산이란 뜻도 가지고 있다.

일본말에 조는 아사로 발음한다.

우리말 땅의 옛말이 달이니

고조선 때는 조선을 아사달로 발음했다고

갑골문을 연구하는 강준식 교수는 주장한다.

일리 있는 학설이라 생각한다.


또한 그는

산동성에서 발굴된 여러 고조선 술독에는

해와 초승달을 동시에 그려진 문양이 보이는데

이를 새벽을 표현한 문양으로 보고

고조선 국가 문양이자 아사달을 표기한 것이라

단정 짓고 있다.

이도 그렇듯하다.







전통적으로 고조선의 영역은

청동 칼, 미송리식 토기, 탁자식 고인돌 등을

특징으로 하는 문화권을 일컫는다.


청동 칼은 청동 거울과 청동 방울과 같이

세트를 이룬다.

이는 거울을 목에 걸고

한 손에 칼과 다른 한 손에 방울을 들고

접신을 하는 주요 도구였다.

접신을 통한 신탁 통치의 전통은

지배자의 권위 상징이기도 하였다.

















비파형동검(琵琶形銅劍)


주로 중국 요동 지방과

한반도 전역(특히 서부 지방)에서 출토된다.

요하의 랴오닝(요녕) 지방에서는

기원전 10세기경,

한반도에서는 기원전 7세기 전후 것이

발견된다.


비파형동검의 고유한 특징은

검신과 손잡이가 따로 제작되어 조립하는

발달된 형태라는 점이다.

이 동검은

고조선과 예맥 문화권을 상징하는 유물로,

지배계층 출현의 표시로 보이며

주로 고인돌이나

돌널무덤의 부장품으로 발견된다.








다뉴세문경(多紐細文鏡)


청동 거울 중 가장 빼어난 유물인

다뉴세문경이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출토되었으며,

국보 제141호로 지정되었다.


다뉴세문경의 뉴 자는 '고리 뉴(鈕)' 자이다.

고리(鈕)와 세밀한 문양(細紋)이 많은

청동 거울을 뜻한다.

우리나라 초기 철기시대의

대표적인 청동 유물 중 하나이다.




거울 정면은

주석 함량이 높여 반사율을 높게 제작했다.

거울을 목에 걸고 사람들 앞에 서면

빛을 받아 눈부셨을 것이다.


거울 뒷면에는

고리가 2개 있어 끈에 걸어 사용했을 것이다.

이 거울 뒷면의 세공은

내구(內區), 중구(中區), 외구(外區)로 구분되어

각각 진리를 상징하는 X형 형태의 집선문과

에너지가 확장되는 동심원 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그 장식의 미스터리는

지름 약 21.2cm의 거울 뒷면에

매우 정교한 기하학적 무늬와

1만 3천여 개의 세밀한 선이

0.3mm 간격으로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이 복잡하고 정교한 문양 제작은

밀랍주조법을 사용했을 터이다.


다뉴세문경은

과학적으로

고조선 시대의 뛰어난 청동 주조 기술과

합금 기술을 보여주는

문명 상징물로 평가받는다.

또한 예술적인 가치 또한 매우 높아서

청동 문화유산 중 으뜸이 아닐 수 없다.








청동 방울


청동 방울은 청동기시대 말기에서

초기 철기시대에 걸쳐

지배자들이 제사 의식에 사용했던

청동으로 만든 방울이다.


충청남도 논산과 예산 덕산 등에서 출토된

청동 방울은 여러 형태로 발견된다.

팔주령은 8 각형 별 모양에

각 모서리에 작은 방울이 달려 있으며

태양을 상징하는 무늬가 새겨져 있다.

방울 내부에는 구슬이 들어 있어

흔들면 소리가 난다.


지배자이기도 했던 샤먼이 접신을 시도할 때,

칼이 에너지가 솟아오르는 길을 의미했고

거울이 솟아 오른 에너지가

빛을 발함을 나타냈다면,

방울은 소리가 증폭되어 그 증폭된 파장으로

영혼을 몰입시켜 다른 차원으로 진입케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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