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이라는 착각
"내가 죽으면 애들이 불쌍하니까 사는 거야"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나보다 두 해 늦게 결혼해 딸과 아들을 낳고 사는 친구였다.
맞벌이에 육아까지, 하루가 늘 모자랐다.
아들은 유난히 활달했다.
그런데 아이를 봐주시던 친정엄마가 불치병에 걸리면서
이젠 모든 걸 혼자 감당해야 했다.
그런 친구에게 동생은 너무 잔인한 말을 던졌다.
"누나 애 보느라 엄마가 아픈 거잖아"
친구는 그 말조차 담담히 받아들이며 말했다.
"이젠 아이들밖에 사는 이유가 없어"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생각했다.
'많이 힘들구나, 우울증일까?'
심리상담을 받아보라고 해야 하나 고민도 했다.
그런데 얼마 전, 나 역시 비슷한 순간을 맞았다.
건강검진 결과에서 암일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결과적으로는 아니었지만,
추가 검사를 받고 며칠을 기다리는 동안
내 마음은 가장 깊은 어둠 속을 떠다녔다.
겁이 났지만 울지 않았다.
머릿속에 남은 건 단 하나였다.
'내가 죽으면, 우리 애는 어떡하지?'
아이가 다 클 때까지만, 내 건강이 무사하길 간절히 빌었다.
"아이 때문에 건강검진 받는 거지. 나 좋자고 받는 건가"
예전에 들었던 지인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나 우울증인가?'
'내 꿈은 어디 갔지? 아이 밖에는 사는 이유가 없을까?'
내 인생을 되돌아봤다.
작가가 되고 싶었던 내 학창 시절과
좋은 기사를 쓰고 싶었던 20대,
육아와 일에 치여 먹고살기 바빴던 30대가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사는 동안 나도 모르게
내 꿈이 희미해졌던 걸까.
대한민국의 엄마들은
모두 아이 말고는
사는 이유가 없는 여자들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우울증이 아니었다.
나는 밥도 잘 먹고, 아이의 웃음에 웃음이 난다.
단지 너무 바쁘고 지쳐,
다른 감정이나 꿈을 떠올릴 여유가 없었던 것뿐이었다.
아이를 키우며 더 절실히 깨닫는다.
시간 부자가 진짜 부자라는 걸.
대한민국의 워킹맘은
마음도, 시간도 늘 모자라서
아이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것 아닐까.
감정도, 삶도 여유가 있어야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
우리는 삶과 꿈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아이가 커서 내 손길이 필요하지 않게 되는 날,
그때 나는 어떤 꿈을 꾸면 좋을까.
그날이 오면,
나는 다시 내 이름으로 무언가를 시작하고 싶다.
만약 육아와 일에 지쳐
사는 이유를 잊은 엄마가 있다면,
아이가 내 품을 떠난 뒤의 삶을
한 번쯤 떠올려보면 어떨까.
우리는 우울증이 아니라,
너무 바빠서 꿈을 잠시 잊어버린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