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데 소변에 뭔가 붉은 것이 섞여 나왔다. 꽤 진한 자줏빛. 수채물감을 물에 풀어놓은 듯하다. 피인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귀찮게 됐군. 소변에 섞인 피는 건강에 적신호라던데. 그냥 뭉개고 지나갔다가는 더 큰일이 생길지 모른다. 모로 씨는 아무것도 모른 채 컴퓨터 앞에 앉아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슬쩍 방으로 들어가 검색해본다. 어쩐지 목이 마르다. 검색 결과, 방광염, 요석, 신장 종양 등이 있을 수 있으며 반드시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고 한다. 곧바로 병원에 예약을 한다.
만일 심각한 병이라면? 혹시라도 내가 죽는다면?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자전거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작가가 쓴 문장이 떠오른다. “삶과 죽음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일급살인>이라는 영화에는 밥 먹다 숟가락에 찔려 죽는 사람도 나온다. 포크도 아니고 숟가락에 찔려서.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것이다.
이런 생각만으로 죽음에 조금 다가간 기분.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모로 씨 걱정부터 든다. 먹는 것에는 일절 관심 없는 모로 씨는 라면을 끓일 때나 가스불을 켤 테고, 나중에는 그마저도 귀찮아져서 젤리와 과자로 끼니를 떼우며 살겠지.
나는 혼자 조용히 병원에 다녀오려던 계획을 바꿔 모로 씨에게 얘기했다.
“소변에서 피가 섞여 나왔어요.”
모로 씨는 놀라서 바로 인터넷을 검색한다. 모로 씨는 검색 결과를 차근차근 말한다. 내가 알고 있는 그대로다. 하지만 모로 씨가 내가 찾지 못한 정보 하나를 찾아냈다.
“비트를 먹어도 소변이 붉은색일 수 있다는데요?”
비트! 모로 씨랑 나는 저녁에 비트샐러드를 먹었다. 그래, 그 선명한 자줏빛은 비트일 것이다.
나는 바로 병원 예약을 취소하기로 한다. 그러다 멈칫한다. 만에 하나 비트 때문이 아니라면? 그럼 병을 키우기 전에 검사를 받는 게 낫지 않을까?
그때, 화장실에 다녀온 모로 씨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도 자줏빛이었습니다”
휴,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