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괜찮은 척하며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나는 매일 괜찮은 척하며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2011년부터 일을 시작해 2025년까지 직장인으로 살았다. 두 아이 출산으로 인한 육아휴직을 제외해도 꼬박 11년 3개월을 일한 12년 차 직장인이다. 대학 졸업 후 자연스레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일을 시작했다. 광고홍보 전공에 맞춰 홍보팀에서 신입시절을 보냈다. 배운 게 홍보라서 이걸로 벌어먹고 살아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홍보 업무는 나와 맞는 부분도 있고 영 아닌 부분도 있었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글로 정리해 보도자료나 기획자료를 작성하는 일은 재밌었다. 그러나 언론사를 상대로 한 미팅이나 늦은 시간까지의 회식은 별로였다. INFP 인간이라 그런가. 그래도 내 본성을 꾹꾹 눌러가며 사회의 일원으로서 살았다. 내향적인 성격도 점점 외향적으로 바뀌어 가며 홍보 업무에 대한 애정과 경험을 쌓아갔다.
현재 일하고 있는 회사의 홍보 업무는 달랐다. 정기적인 1년 사이클에 맞춰 시기적으로 바쁠 때가 있을 뿐, 평소 업무량은 적었다. 덕분에 9 to 6가 가능해 사람답게 살 수 있었다. 이전 회사와 달리 주말에는 푹 쉴 수 있어 연애도 열심히 했다. 그래서 결혼하고 아이도 둘 낳을 수 있었다. 큰 열정 없이 다녀도 월급이 다달이 나와 오랫동안 안주했다.
하지만 전문성은 없었다. 이 회사에서 했던 일을 발전시켜 다른 회사로 이직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면 대답은 늘 ‘아니’였다. 그래도 편해서 그냥 다녔더니 시간만 흘렀다.
누군가는 배가 불렀다고 할지 모른다. 그게 꿀직장이라고 할 수도 있다. 홍보 업무를 배울 사수는 없고 챙겨야 할 팀원도 없는 구조. 그냥 어떤 섬에서 혼자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는 느낌이었다. 아이가 없을 때는 몰랐지만, 육아가 시작되며 이 마저도 버거웠다.
나는 매일 괜찮은 척하며 사실은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좋은 엄마도 아닌데, 좋은 커리어를 쌓고 있는 것도 아닌, 이도 저도 아니게 시간만 흘려보내는 중임을 자각했다. 회사 눈치, 가족 눈치 보면서 전전긍긍하는 내 모습은 더 이상 그만하고 싶었다.
“복직하실 거죠?” 수화기로 들려오는 인사담당자의 말에 정신을 차리니 문득 30대를 다 보낸 39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