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지, 한국 돌아가면 이 풍경이 너무 그리워질 것같아.'
8월, 쨍한 햇빛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별안간 눈물을 흘렸다. 2018년부터의 꿈이었던 '혼자 프라하 여행 가기'를 실행했다. '동화 마을'이라고도 불리는 체스키 크룸로프의 망토 다리 위에서 빨간 지붕과, 맑은 파란 하늘과, 경쾌한 검정 강물을 바라보며 들었던 생각이었다.
강박이 많았다. '해야만 해, 하지 않으면 안 돼.'라는 생각에 휩싸여 계속해서 앞으로, 위로 나아가기 위해 무진 애를 써왔다. 몸은 바쁘지 않더라도 항상 마음이 바빴다.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던 마음의 지옥 속에 스스로를 밀어넣어왔었다. 그래서 그런가, '어떤 때로 돌아가고싶어~'라는 말은 나에게는 전혀 와닿지 않았다. 대학생 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싫어, 학점 높이 받겠다고 전전긍긍하면서 공부하고, 과제했던 게 너무 끔찍해. 20대 중후반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진짜 싫어, 임용 고시 붙겠다고 우울증 걸려가며 공부했던 그 막막함과 불안을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아.
그랬던 내가 '다시 이 때로 돌아가고 싶어질 것 같아.' 따위의 생각을 하게 되었다. 기어코 그놈의 임용 고시를 넘겨버리고 국어 교사가 나 하나뿐인 작은 학교에서 일하게 된 지 3년차. 나는 2018년도에 막막함과 답답함에 눈물 흘리던 내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 되어 나와의 약속을 지켜주려 체코에 왔다. 여름인데도 습하지 않고, 오히려 가을 바람과도 같은 찬 바람을 맞으면서 걷는다. 주위엔 온통 영어를 쓰는 사람들 밖에 없다. 그런 말이 있었다. 해외에 가면, 내가 살고싶은 내 성격대로 살 수 있다고. 어차피 나를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한국에서 가져야 했던 근면하고, 경계하고, 눈치를 봐야하는 성격이 필요 없으니까!
교무실에서 굳은 표정에 이따금 경련을 일으키며 모니터를 바라보다가 탁 트인 풍경을 하염없이 보고있자니 '강박 없는 여유'라는 것이 느껴졌다. 뭘까, 임용에 붙어서? 일이 없어서? 처음 오는 유럽이라서? 처음 보는 풍경들이라서? 그동안 막연하게 품고 있던 로망이 드디어 이뤄져서? 나 스스로가 너무 기특해서? 뭐든 좋았다. 마음 속에 걸리는 것 없이 눈 앞의 풍경을 보는 게 즐거웠다. 나는 어쩌면, 편안한 마음으로 온전한 즐거움을 느끼는 지금이 그리워질 것이라는 거였을까. 괜히 눈물을 훔치며 체스키의 풍경을 열심히 핸드폰으로 담았다.
한국에 돌아왔다. 일터로 돌아갔다. 할 일은 여전히 많았다. 하지만 조금 달라진 느낌이 있었다. 바로 내가 첫 발령받은 이 학교를, 이제 내년이면 떠날 것이라는 생각에 기인한 것이리라. 뭐든 흔하면 귀하지 않은 것일까. 시골에, 그 흔한 프랜차이즈 카페가 하나도 없고, 도시로 나가려면 차로 한 시간 동안 나가야 하고, 학교 근처에 문화를 즐길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첫 발령 받은 2022학년도에는 금요일마다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4시간이 걸려 본가로 도망가듯 나갔다. 2023학년도에는 운전을 할 수 있게 되어 언제든 슝 떠났다.
그렇게 '결국 돌아오기 위해서 도망치는 곳'이라는 생각으로 현재 일하는 학교를 바라봤다. 한국마저 떠났다가 돌아오니, 유럽에서 항상 마음속에 끼고 다녔던 낭만이 아직도 남아있었는지 학교가 애틋해지고 있었다. 순하고 밝은 아이들, 내가 하고싶었던 활동들을 모두 해볼 수 있었던 교육과정. 올해는 최재천의 <통섭의 식탁>에 나오는 "알면 사랑한다!"라는 것을 기조로 삼아 1년을 관통하는 국어 프로젝트 수업을 기획했다. 자서전 쓰기, 지역민 인터뷰해서 학교 근처 지도 만들기, 시집 쓰기. 학생들이 알아오는 지역과, 학생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엿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내가 사랑하게 되어버렸다. 학생들을, 학교를.
2024년의 활동들을 모아 당초 계획했던 책 3권 중 1권의 인쇄를 마치고 나니 이 학교에서 '떠날'것이 점점 실감난다. 이제 또 새로운 지역으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야하겠지. 모르면 두려워하게 된다. 인류의 생존을 책임졌던 불안과 대비라는 본능이 나에게도 있는 탓에. 그러면서도 많은 것을 알게된 이 학교에 어쩌자고 애틋함이 생겨버린다. 그리고 또 생각한다. '어쩌지, 다른 지역으로 가면 이 학교에서 했던 것들이 그리워질 것같아.'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