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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누 Mar 27. 2024

16. 가끔, 어쩌면 자주 비겁해지기 (2)

  지금까지 모아온 두툼한 경위서들을 보여드리며 말했다. 자기들끼리의 가벼운 장난을 넘어서 심한 비방, 욕설, 심지어 상대방의 부모님에 대한 욕을 주고받는 것도 정도를 넘어섰다고. 학교 전체 차원에서 학생들에게 주의를 주어야 한다고. 선도위원회라도 여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학생들이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이 심각한 것인 줄 알 거라고. 제가 수 차례 상담하고 타이르고 꾸짖고 부모님께도 연락드려봤으나 어렵다고.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듣던 담당 선생님은 답변했다.


  "나쁜 담임이네."


  학급 안에서 일어난 일을 학급 안에서 적당히 처리해야지, 왜 그걸 학교 전체의 문제로 가지고 오냐는 것이다. 학교도 작은데 그런 걸 열어서야 되겠냐고. 그냥 적당히 자기들끼리 조심하도록 주의 주면 되는 일이라고. 적당히 자기들끼리 조심하는 게 안 된다니까? 몇 차례 설명을 더 드려봤으나 계속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 학생들에게 너덜너덜해졌던 마음이 쾅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아, 학교는 내가 알아서 살아남는 곳인건가. 담임이 그 반의 모든 아이들을 완벽하게 통제해야만 좋은 담임이구나. 나는 나쁜 담임이구나.


  11월, 낙엽도 하나 둘 떨어져가는 무채색의 계절에, 멍해진 표정으로 담당 선생님 앞을 떠났다. 앞으로 내가 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 갈등이 생기면 그냥 경찰에 신고해야하나? 나는 도저히 이런 것들을 혼자 견디지 못할 것 같은데 의원면직을 해야하나? 반 아이들이 M이 괴롭혔다고, 또 갈등이 일어났다고 말하러 올까봐 매 시간 쉬는 시간이 두려웠다.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M이 미웠다. M의 부모님도 미웠다. 담당 선생님도 미웠다. 사실은 학급의 갈등을 이상적으로 해결해서 모두가 평화롭게 지내는 반으로 만들지 못하는 내가 가장 미웠다.


  학생들을 어떻게 지도해도 또 다시 비슷한 갈등이 일어나는 것에 지쳐서 나타난 소진, 2, 3학년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별 일 없이 조용히 잘 지내던데 내가 담당한 1학년에서만 매번 사건 사고가 일어나는 것에 대한 억울함, 그 모든 것을 이렇다 하게 바꿔내지 못하는 나에 대한 혐오감이 쌓여 차츰 마음이 스러져갔다.


  그 스러짐이 느껴졌는지 반 학생들도 약간 긴장한 게 분위기로 느껴졌다. 서로 투닥거리려다가도 내가 보이면 "적당히 하라고~!" 라며 수습하는 게 보였다. 정말 최악이었다. 내가 힘들다는 걸 그대로 드러내는 게. 내가 힘들다는 걸 무기로 학생들이 눈치를 보는 게. 정말 비겁하게도, 이대로 아무 일 없이 종업식이 오길 바랐다. 종업식을 하고 나면 내 책임이 아니게 되니까. 매일 매일 바랐다. 매일 매일 비겁한 마음으로 버텼다.


  다음 해가 되어 그 친구들에게서 벗어났다. 벗어났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가끔 비겁한 마음이 쌓여 자주 비겁해지게 되었으니까. 차라리 어설픈 나보다 능숙하고 무서운 선생님께서 그 친구들의 담임을 맡게 되시길 바랐다. 바라던 대로 가장 능숙하신 선생님께서 2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알고보니 모두가 알고 있었다. 업무분장 때 그 말을 듣자마자 배신감을 느꼈다. 다들 모르는 척을 했던 거구나. ) 가장 힘들고 머리 아픈 반을 맡았다던 공을 인정받아(?) 순하고 의젓한 3학년의 담임을 맡게 되었다.


  3학년의 담임을 하는 것은 정말 다른 세상을 사는 것과 같았다. 자기들끼리 크게 갈등이 없고, 서로 적당한 거리에서 적당히 장난을 치고, 서로가 곤란할 땐 도움 요청 없이도 스스럼 없이 서로 돕는 아이들이었다. 작년 같았으면 가벼운 장난이 시작되었을 때 서로 지기 싫어서 끝까지 갔을텐데, 장난을 슬쩍 치다가 상대의 기분이 살짝 상하는 것을 보자마자 멈추는 것을 보고 감동마저 느끼게 되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학기 초라서 그럴거야. 3월을 긴장하며 보내고, 4월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5월, 6월, 7월의 끝을 달려도 3학년들은 싸우는 법이 없었다. 숨겨진 갈등이 있을법도 하건만, "걔는 뭐 원래 그렇죠~"하면서 쿨하게(진짜 쿨하게) 넘기는 것을 보며 스러졌던 마음이 다시 채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2학년들은 역시나 전쟁이었다. 3월 둘째주까지는 잠잠하던 녀석들이 셋째주부터 본색을 드러냈다. M을 필두로 더 자존심이 세지고, 더 영악해진 녀석들이 서로 하루가 머다하고 싸워댔다. 그 때마다 2학년 담임 선생님이 녀석들을 호되게 혼내시고, 혼내는 것의 빈도가 늘어나면서 이렇게 머리아픈 녀석들일 줄 몰랐다고 고개를 저으시는 것을 보았다. 기어코 이대로는 안 되겠다며 선도위를 열어야겠다는 말이 학교에서 돌았다.


  그제야 M도, 다른 녀석들도 깨닫기 시작했다. 계속 이러다간 정말 선도위가 열리고, 큰 일이 일어나겠구나, 하고. 언젠가의 감사 편지 쓰기 행사에서 M은 나에게 감사편지를 썼다.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지도해줘서 감사하다며. 자신을 선도위에 회부하지 않아줘서 감사하다며.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보겠다며. 그 편지를 읽는데 약간 채워졌던 마음이 다시금 스러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 편지와 이 메시지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까. 그래도 자기의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는 것을 기특하게 여겨야 할까, 자신의 잘못을 알았음에도 알음알음 이전과 같은 행동을 하는 것에 좌절을 느껴야 할까, 어쩌면 내가 그 녀석의 담임이 되지 않은 것에 안도를 해야 할까.


  선생님이라면 지도하기 힘든 학생이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녀석이 나아질 때까지 열정적으로 지도해야 한다는 강박이 나에게 있었다. 나는 그 강박에 사로잡힌 채로, 정말 솔직하게, 정말 비겁하게도, 녀석의 담임이 되지 않고 조금 멀찍이 거리를 두고 있을 수 있는 관계임에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안도감을 느끼는 내가 너무도 끔찍했다.


  어느날의 국어과 수업 연수에서 비경쟁 토론을 하기 위해 <창모>를 읽었다. 분노조절을 하지 못하는 듯한 창모는 도무지 갱생의 실마리 조차 보이지 않는 녀석이었다. 서술자인 ‘나’는 학창 시절 자신의 공부 시간과 감정, 정성 등 모든 것을 쏟아가며 창모를 보살핀다. 부모도 아닌데. 그저 같은 반 친구였을 뿐인데. 창모는 ‘나’의 옆에 있을 때는 그래도 조금은 괜찮아졌지만 타인인 두 사람이 평생, 항상 함께 지낼 수는 없는 법이다. ‘나’와 멀어진 창모는 다시금 문제 행동을 크게 일으킨다. 나는 창모를 보면서 M을 떠올렸다. 그나마 차이가 있다면 창모는 자신의 부정적 행동에 일말의 죄책감 조차 느끼지 않았지만 M은 자신의 행동이 문제 행동이라는 것을 안다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문제 행동이 나타난다는 것은 동일했다.


  <창모>의 결말은 어떠한 행동 방침을 알려주는, 교훈적인 결말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저 다시금 문제 행동을 일으켜 질질 끌려가는 창모를 ‘나’는 창모와 안전한 거리를 둔 채 멀찍이 지켜보는 것으로 끝날 뿐이었다. <창모>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나는 다시금 1학년 담임을 맡았을 때로 돌아가는 것만 같았다. 나였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았을까. 어떻게 할 수는 있었을까.


  비경쟁 토론에서는 ‘창모와 같은 학생을 어떻게 지도하는 것이 옳은가?’라는 질문이 나왔다. 나는 그래도 어쨌든, 교사로서 학교에 있는 이상 그 학생이 언젠가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가진 채로 인내를 가지고 지도해주어야하지 않을까. 선을 만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하고 정말 진공 상태의 교과서에나 나올법한 답변을 만들어두었다. 나의 발언 차례가 되었는데 갑자기 M의 이야기가 절로 나왔다.


“...그래도 저는 M이 조금은 친구들을 배려하고 자기 자신의 충동을 절제했으면 했어요. 항상 그렇게 기대하고 바랐는데 매번 문제가 생기더라구요. 매번 그러니까 너무,“


  속상하고 힘들더라구요. 라는 말을 하려는데 갑자기 눈물이 터져나왔다. 1년 동안 꾹꾹 담아두었던 속상함이었을까. 그래, 나는 M이 조금은 나아진 모습을 보이기를 항상 기대했었구나.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아서 너무 속상했구나. 갑자기 눈물을 보이는 나의 모습을 보며 당황한 선생님들은 원래 힘든 법이죠. 그럴 수 있어요. 열정이 너무 많았어서 그래요. 라고 수습을 하셨다. 그리고 나는 헛기침 후 무어라 말을 하고 나의 발언을 마무리했다.


  1학년 때 나와 처음 만난 M은 벌써 3학년이 되었다. 이전처럼 마냥 무모하진 않고, 이전처럼 막무가내는 아니다. 과거의 모습이 보일 것만 같다고 느낄 때 즈음 M이 먼저 말한다. “아, 선생님~ 이제 그정도까진 아니라구요.” 와 같은 말을. 하지만 나는 모르겠다. 창모를 어떻게 지도해야하는지. 창모를 어떤 마음을 가지고 지도해야 하는지. 아직도 나는 가끔 M이 밉고, 나아진 모습이 보일 때면 잘 됐다고 느껴지고, 녀석의 담임을 맡지 않아서 가끔 안도감을 느낀다. 어쩌면 자주. 비겁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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