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모>를 처음 읽었을 때 M이 생각났다. 처음에는 자신의 맡은 바 책임을 다하려는 건실한 친구처럼 보였다. 학기 초, 학급의 갈등을 중재하기 위해 친구들과 상의하고, 자신은 반장으로서 어떤 일을 하면 좋겠냐며 나에게 조언을 구했다. 학습 능력도 나쁘지 않아 수업을 곧잘 따라왔다. 바르고 성실해보이는 모습에 나는 '저 녀석은 정말 괜찮다.' 하며 내심 기뻐했다.
하지만 봄이 가고, 여름의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릴 무렵부터 담임 학급에서 성격이 유순한 친구들이 괴로움을 호소했다. M이 자기를 놀린다는 것이었다. 나는 M의 바른 모습을 봐왔기에 '너는 무심코 장난으로 한 행동들이겠지만 상대도 즐겁지 않을 때가 있다. 네가 남을 괴롭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다정하게 타일렀다. M은 자신의 행동이 친구에게 그런 영향을 미칠 줄 몰랐다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고 그렇게 하나의 해프닝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시작이었다. 매일 투닥거리는 학급 학생들 사이에서 갈등의 원인으로 M의 이름이 가장 많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M이 나를 놀렸다, M이 끊임없이 놀린다, M이 다른 친구를 놀리는 것을 말렸지만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다, M이 괜히 나를 건드린다. M 때문에 전학가고싶다. 쉬는 시간마다 담임 학급의 학생들이 분노로 얼룩진 얼굴을 한 채 번갈아가며 교무실 문을 열고 나를 찾았다.
그 때마다 나는 경위서를 출력하여 학급 학생들에게 한 장, M에게 한 장 내밀었다. 결국 처음에는 M이 놀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학급 학생들은 하지 말라며 짜증을 내지만 M은 그 반응에 재미를 느껴 집요하게 강도를 높여가며 놀려댄다. 학급 학생들은 분노를 느끼며 화를 내고, M은 왜 화를 내냐며 자신이 더 크게 화를 낸다. 학급 학생과 M의 팽팽함 고성이 오갈 즈음, M의 행동을 제어할 수 없다고 판단한 학생들이 나에게 찾아온 것이었다.
경위서가 한 장 한 장 쌓여갈 수록 나는 타이르고, 달래는 조로 설명하고, 너의 행동이 어떻게 보이며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올 것이라고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언젠가는 화를 내고, 언젠가는 체념을 하듯 말을 했다. 그 때마다 녀석은 순한 양이 된 것마냥, 철이 든 것만 같은 표정으로 '제가 참았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죄송하다.'며 진중한 표정으로 물러갔다.
어느날은 선택적 함구증이 있어 내 앞에서는 좀체 입을 열지 않던 학생마저 나에게 힘들다고 토로했다. 안 되겠다. 나는 M의 부모님께 연락을 드렸다. 이러이러한 일이 있다고. 나쁜 녀석이 아닌 것은 아니라고. 본인도 반성은 하고 있지만 자꾸 충동적으로 친구들을 불편하게 한다고.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녀석이라고. 이 친구가 더 좋은 어른이 되었으면 한다고. 그러니 가정에서도 조금만 더 신경 써 주시면 좋을 것 같다고. 그러나 부모님의 첫 마디는 달랐다.
"아, 그렇군요. 근데 M이 친구들을 일방적으로 건물 뒤로 끌고가서 때린 적은 있나요?"
첫 담임을 맡은 나는 "예? 아, 어, 그건, 아니에요. 그렇게까진, 하지, 않죠." 라고 어절 단위로 숨을 끊어대며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자신의 자녀가 좋은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학부모가 보일 수 있는 당연한 방어기제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약간 숨이 막힌 채로, 그래도 지속적으로 친구들을 불편하게 한다. 그래도 이걸 가정에서도 알고는 있어야 할 것같으니 말씀드리는 거라고 말하고, 그제서야 알겠다고, 주의 시키겠다는 답을 받으며 통화가 끝이 났다.
경위서가 L자파일에 넘치게 쌓일 즈음, 녀석은 상대를 계속 놀리고, 상대가 발끈하면 상대에게 욕을 하고, 상대를 더욱 화나게 하기 위해 상대의 부모님을 대상으로도 욕을 하고, 상대의 신체적 특징을 대상으로도 욕을 했다. 학급 학생 중 한 명의 부모님께서 화가 난 채로 나에게 ‘M이 내 아이에게 부모님 욕을 했다더라. 이거 학교에서 지금 시기에 안 잡으면 안 된다.’며 전화를 했을 때, 학생 부장 선생님에게 진지하게 찾아가기로 마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