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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누 Feb 27. 2024

13. 1. 나는 나비: S

2023년의 기록

  2022년 봄, 첫 발령을 받고난 뒤 마주한 2학년의 S는 말수가 적은 학생이었다. 같은 성별의 학급 친구 J와 H가 있었지만, 그 친구들은 그들끼리만 마음이 맞았고, S와는 도무지 어울리기 어려웠다. 3학년은 모두 다른 성별, 1학년도 대부분이 다른 성별이어서 S와 스스럼없이 어울릴만한 학생이 없었다. 전교생이 삼삼오오 모여 배드민턴을 치는 스포츠 시간에도 어쩌다 바닥에 떨어진 부스러기마냥 홀로 앉아 다른 친구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기 일쑤였다. 수업 시간에는 내내 아무말 없이 학습지의 빈칸에 뜻없는 낙서를 하고, 자신에게 질문이 주어져도 잠시 침묵하다가 "모르겠다~"라고 답할 뿐이었다.


  "같은 반끼리 서로 친하게 좀 지내" 라는 말은 사춘기 아이들에게 있어 폭력과도 같다. 이미 자신만의 자아가 생겨버린 시기에, 또래의 시선을 의식하며 지어진 자기들'끼리'의 무리가 어른의 한마디로 융합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심지어 저 말을 하는 순간 친하게 지내'주어야 할' 아이들에게는 불합리한 명령이 생기는 것이고, 친하게 지내'지는' 아이는 공식적으로 섞이지 못한다는 낙인이 찍히기 때문이다. 그 미묘하면서도 날카로운 관계를 품고 있는 학생들을 조심조심 그러모으는 것이 필요했다.


  첫 해, 교과 교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여러 가지 시도해 보았다. 짝 학습을 할 때 매번 짝의 구성을 바꾸었다. 각자의 역할을 명확하여 자신의 몫을 하는 것이 친구들에게 보일 수 있는 모둠 학습을 운영해보았다. S의 장점인 그림 그리기, 만들기를 활동의 일부로 넣어 '저 친구가 괜찮은 면도 있네'라는 것을 친구들에게 은연중에 어필할 수 있게 하였다. 아이들은 시큰둥해하면서도 나름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2022년 늦여름, S의 담임에게서 들은 내용은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학급 상담 차, 서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종이에 써서 담임에게만 털어놓을 기회를 마련했다고 한다. S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지만 너무 어렵다고 했다. J의 기에 눌려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두렵다고 했다. J는 S가 자신들과 친해지려고 오는 것은 알겠지만 성향이 너무도 달라 어떻게 친해질지를 모르겠다고 했다. H는 J를 동경하는데, S가 자꾸 자기들의 사이에 끼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했다.


  사실 S와 학급 친구들 모두 개별로 놓고 보면 다들 개성이 뚜렷하고 괜찮은 아이들이다. 자신이 사는 곳에 만족하면서도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하는 S, 자신이 사는 시골을 너무도 갑갑해하며 도시의 '힙한 것'을 동경하는 J와 H. 학급 구성원 수가 대도시의 학교처럼 많았더라면, 각자 자신과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무리를 이루어 상대를 그다지 의식하지 않으며 평화롭게 지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저 서로 맞지 않는 녀석들이 한 무리로 묶여야 하니 자꾸 이질감이 들었고, 사춘기의 예민한 감수성으로는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어 밀어내는 것을 택한 것이다. 그러던 중 2022년의 초겨울, 부모님의 사정으로 J가 그토록 동경하던 도시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남은 H와 S는 싫든 좋든 '서로밖에' 없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S의 변화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S는 항상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보던 J의 압박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게다가 H가 (그때엔 마지못해서였지만) 자신과 어울리려고 다가와주니 더없이 즐거운 나날을 맞이하게 되었다. 수업 시간에 발문을 던졌을 때 S의 목소리가 가장 먼저 터져나왔다. 처음에는 이게 S의 목소리가 맞나 싶어서 나의 귀를 의심했던 적도 있었다. 스포츠 시간에는 H와 S가 한 몸처럼 함께 어울려 다니기 시작했다. 항상 힘없이 바닥을 향하던 S의 눈길이 힘차게 상대에 가 닿기 시작했다. 선생님들도 S의 변화에 대해 많은 안도를 표하였다.


  2023년 봄, 나는 3학년이 된 그들의 담임을 맡게 되었다. 새학기의 연례행사로 학급 구성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여 제출하도록 했다. 작년 가을과는 사뭇 다른 서술을 받게 되었다. H는 S가 자신을 많이 배려해주고 자신의 말에 반응을 잘해주어 괜찮은 친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했다. S는 H가 자신과 잘 어울려주어서 고마운 친구라고 했다.


  2023년이 되면서 2학년에는 S의 동성 후배가 한 명 늘었고, 1학년에도 동성 후배가 여럿 입학하였다. 아기자기하고 감성적인 것을 좋아하는 녀석들인지, S는 후배들이 잘 따르는 선배가 되었다. 게다가 같은 학년에는 S의 절친인 H가 있었고, 언제였을지, 2학년에는 남자친구까지 생겨 전교생의 관심을 받았다. 외따로 있던 S는 이젠 관계의 중심에서 안온한 친밀감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의 부재'라는 특수한 방법으로밖에 이룰 수 없는 평화인걸까, 나는 그 특수함이 안타까우면서도 지금-여기의 현실이 다행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어느날의 쉬는 시간, 우리 반의 재간둥이 K가 춤을 출 것을 기대하며 릴스의 음악을 재생하였다. K가 형식적으로 부끄러움을 타는 사이, S가 어디선가 튀어나와 춤을 추었다. 당황스러움과 놀라움에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 찼다. 그냥 춤을 추는 것이 아니었다. 릴스에 나오는 인플루언서들만큼이나 정확한 동작으로 자신만의 특색을 담아 잘 추었다. 춤을 추는 S의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즐거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2023년의 겨울, 소소한 학교 축제가 열렸다. 장기자랑 시간, 작은 학생 수 덕에 조금 큰 코인 노래방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것마냥 모여 노래를 부른다. 전교생의 절반이 노래를 부른 후 유일한 춤 공연이 이어졌다. 그 춤 또한 SNS의 릴스에 나온 춤이었다. 여러 명이 모여 짧고 현란한 칼군무를 보이는 춤. 그 군무의 중심에는 S가 있었다. 부끄러운듯 고개를 푹 숙였지만 춤 동작은 가장 컸고, 누구보다 잘 췄으며,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춤이 끝난 후 자기가 센터여서 부끄럽다며 나에게 다가오는데 슬쩍 진심을 짚어봤다. "그래도 센터여서 가장 주목받으니까 좋았던 거 아냐~?!"


  S는 말했다.

  사실 너무 행복했다고. 모두가 나에게 관심을 주는 것이 너무 좋다고.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고 해서 남들과 잘 어울리기 싫을리가 없다. 모든 것이 서툰 사춘기 시기에 겪은 상처와 기쁨 모두가 S를 조금은 더 단단하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나만의 특성이 있고, 이 특성이 잘 맞지 않는 사람도 있어서 힘들 수도 있지만 나와 잘 맞는 사람들을 만나 즐거울 수도 있다고 느꼈으면 좋겠다. 커나가면서는 자신과 잘 맞지 않는 사람들과도 어쩌면 잘 지내볼 방법을 만들 수 있게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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