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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누 Feb 20. 2024

9. 2. 징글징글하지만 확실한 유대

22. 12. 20.

  12월의 중간, 눈이 많이 왔다. 말 그대로 ‘펑펑’ 왔다. 과장 조금 보태 흩날리는 눈발이 마치 단풍 나뭇잎처럼 커보였다. 세상은 온통 하얘지고, 도로까지 얼어 기어코 학교로 가는 길이 막혀버렸다. 시에서 학교가 있는 군지역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대교가 있는데 그곳으로는 버스가 진입하지 않는 것이다.


  면허도 차도 없는 나로서는 학교에 출근하기 위해서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버스뿐인데, 월요일 아침이 되도록 학교로 가는 모든 버스가 운행하지 않아 발을 동동거리게 되었다. 군청의 해당 과에 전화하기를 대여섯번, 점심 즈음이 되어서야 버스가 운행되어 학교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시골 학교에 근무한다는 건 이런거구나, 생각하며 사회의 쓴 맛에 찌든 몸을 이끌고 학교 운동장에 들어섰다. 온통 눈으로 뒤덮인 곳에서 눈사람을 만들던 반 아이들이 어미 오리를 발견한 새끼 오리마냥 “선생님!!!”하면서 나에게 뛰어온다. 자식을 키우면 이런 느낌인가, 나를 반겨주는 아이들을 보며 ‘내가 있어야할 곳에 돌아온‘ 느낌으로 마음 한 켠이 가득찼다.


  근데 목이 좀 이상하다. 목이 너무 따끔거려서 교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코로나 검사 키트를 열었다. 그냥 감기인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서 검사 도구로 코를 후볐더니 이내 키트에 두 줄이 조심스레 떴다.


  두 줄?


  “저 코로나 걸렸나봐요. 아무도 저한테 다가오지 마세요.”


  ...나를 바라보던 모든 선생님의 황망한 눈빛과 영문모를 교무실의 공기,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이내 내 옆자리의 발령 동기가 터진 듯한 웃음 소리를 내며 상황 파악이 되었음을 알렸다. 눈 때문에 점심 시간이 다 되어서야 출근하더니, 도착하자마자 코로나 걸렸다고 접근 금지를 선언하는 교사가 있다?


  다행히 고사가 끝난 후 교육과정 마비 시기여서 바쁜 일은 없었다. 마스크로 가려진 얼굴 사이 당황에 절은 눈만 끔뻑이며 얼른 병조퇴를 신청하고 보건소에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너 양성. 빨리 일주일간 칩거를 명함.’의 내용이 담긴 문자가 오고, 나는 그렇게 교무실에서 도보 2분 거리의 관사에서 자가격리를 시작했다.


  종례 시간 이후 학생들에게 하나 둘 톡이 온다. 보고싶다는 말, 빨리 나아서 같이 공부하자는 말, 괜찮으시냐는 말, 언제 오냐는 말. 아침 8시 10분,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쉴틈없이 쏟아지는 녀석들의 말처럼 톡이 밀려들어온다.


  다음 날, 평화로운 햇빛에 깨어보니 학생들의 떠드는 소리도 멀겋게 내리쬔다. 학교의 시간이 한창 흘러갈 때 외부인처럼 학교의 소리를 가만 들어보는 게 처음이라 약간 생경했다. 종이 치고, 선생님들의 소리가 들리고, 저들끼리 또 뭐라 하는 소리가 들리고. 그러면서 문득, 약간 소외된 것같다는 감정이 나타났다.


  ‘혼자, 편한 공간에서, 일주일 동안 실컷 쉬기.’ 내향 72%인 나는 저 세 단어가 합쳐진 상황이 마냥 좋을 줄만 알았다. 그런데 자가격리 일주일 내내 자꾸 지루하고, 뭔가 놓치고 있는 것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시간을 죽이려고 동x의 숲을 켜서 디지털 데이터들과 소통을 하는데, 활발하고 시끄러운 동물 주민들을 보니 담임반 녀석들이 생각이 났다.


  “담임반 어때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항상 질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귀엽긴 한데...징글징글하죠. 항상 자기들끼리 투닥거리며 싸우고, 싸우다 못해 분에 못이겨 날 쫓아오고. 가끔은 왜 자꾸 날 찾느냐며 혼자 투덜거렸지만, 안다. 담임이라서, 학교에서는 자기들과 가장 관계가 깊은 사람이라서.

  물론 담임 반 학생들이 나쁠 때만 나와 마주했던 건 아니다. 수업할 때 병아리들마냥 각기 자신의 답을 외치고, 주말동안, 학교에서 만나지 않았던 동안 생겼던 일과 감정을 나누고, 칭찬을 주고받든 혼을 내든 항상 당연하게도, 깊게 얽혀있었다.


  겨울잠을 자듯 일주일간 관사에서 잠겨있다가, 다시 월요일이 되어 누구보다 먼저 학교에 나갔다. 교실을 점검하고, 도서관을 잠깐 돌아보는데 도서관 칠판에 낙서가 있다. 누가 봐도 담임반 녀석의 글씨. 나보고 돌아오란다. 외따로 떨어져있었던 내가 돌아갈 곳이 있었구나. 그게 너희들이구나.


  ‘내가 있어야 할 곳에 돌아온 느낌’. 정말 확실한 유대다. 가끔은 너무 확실해서 징글징글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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