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09. 22.
대학교 3학년 때, 불쑥 고 3 담임 선생님을 찾아뵌 적이 있었다. 이런저런 피상적인 한담을 주고받다가 선생님께서 나에게 질문 하나를 던지셨다. 교사한테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 것 같냐고. 무언가의 강박에 사로잡혀있던 나는 ‘학생에게 모범이 되는 것’이라고 조심스레 답했다. 그야말로 모범답안 같은 답을 했더니 선생님께서는 아니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어 교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기다려주는 것이라고 하셨다.
뭘 기다려주나요, 라고 여쭤보니 학생이 성장할 거라고 믿고 기다려주는 것이라고 답하셨다. 나의 고 3때, 반에 남을 불편하게 하는 성격을 가진 학생이 한 명 있었다. 충동적이고, 산만하며, 공격적인. 그 탓에 수업 시간에 매일 지적을 받고, 반 친구들에게 무언의 압박을 받고, 졸업식날 마저 모두의 앞에서 선생님께 예의가 어긋나는 행동을 하여 결국 선생님을 폭발하게 만들었던.
나에게는 상당히 골치아픈 유형의 사람이라 그 학생과 다른 환경에서 살게된 것에 만족하며 잊어버렸는데, 선생님께선 그 학생의 이야기를 꺼내셨다. 알고보니 선생님과 꽤나 많은 상담을 해왔었고, 어떤 사정이 있었으며(그렇다고 해서 어긋나는 행동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졸업 이후에는 그때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살펴주셔서 감사했다며 가장 자주 찾아오는 학생이 되었다고 했다. 덕분에 자신의 성격을 많이 고칠 수 있게되었다고 하면서.
그 이야기를 들을 당시에는 오 그렇군, 나도 선생님이 되면 그렇게 해야겠군. 뭐 할 수 있겠지. 라는 정말 속편한 생각을 하며 피상적인 사명을 다짐하고 옛 선생님과의 만남을 마무리했었다.
막상 내가 교사가 되었을 때는, 그놈의 ‘기다림’이 정말 쉽지 않았다. 선택적 함구증이 있어 나를 비롯한 모든 선생님 앞에서 입을 꾹 다물어버리는, 펜을 드는 척만 하며 모든 것을 백지로 만들어버리는, 예 아니오라는 답 조차 쉽게 하지 못하는 학생이 있었다. 처음엔 당황, 그 다음엔 섣부른 자신감, 그 다음에는 좌절감, 말미에는 나도 사람인지라 그 학생에게 애석한 감정만이 남아있었다.
그래도 한 줄기 실낱같은 기다림으로, 언젠간 뭐라도 하겠지. 몇 장째 백지로 돌아올지 모르는 학습지를, 독서 기록장을, 수행평가지를 그 학생에게 디밀었다.
오늘 아침 독서 시간, 간만에 학생들의 아침 독서 기록을 확인했다. 한 칸의 공간에 두 줄 세 줄 적어오는 학생, 큼지막한 글씨로 겨우겨우 칸을 채워온 학생(그래도 채우려는 노력이 가상했다.), 매일 성실하게 써온 자신의 기록을 보이며 당당하게 칭찬을 요구하는 학생(엄지를 척 날려줬다.), 그러다가 항상 백지를 내던 학생.
어차피 백지겠거니, 순간의 마음 쓰라림을 다잡으려고 무심하게 종이를 쓱 봤는데,
어.
세상에,
3일치나 빼곡하게 쓴 것이었다.
애들이 나한테 가끔 해주는 말로 정말 ‘눈이 튀어나올 듯’ 그 학생을 바라봤더니, 항상 내 앞에서는 죄를 지은 듯 난감하고 불안해보였던 그 학생이 오늘은 쑥스러운듯 베시시 웃고있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저 책을 읽고 간단한 내용 요약과 자신의 생각을 쓴 거라 별 거 아닐 수도 있겠으나, 오늘의 그 기록은 정말 어마어마한 별 거 였다. 독서 기록 확인용 도장을 쾅 찍어주면서 정말 잘했다고, 할 수 있지 않느냐고, 고맙다고, 너무 상기된 어조로 반응을 해버렸다. 그 학생은 그 반응의 폭풍에 드디어 다른 아이들처럼, 그 나이대에서 볼 수 있는 뿌듯한 웃음을 보이고 유유히 사라졌다.
거의 2년이다. 그 학생의 관점에서 보면 거의 평생이다. 그 기다림의 사이에 학생은 표현을 했다. 자신의 생각을. 그리고 오늘 수업 중 수행 평가를 하는데, 그 수행평가도 했다. 정말 별 거 아니라는 듯이. 정말 별 거로.
어쩌면 오늘만이 특별한 날일 수도 있고 다음엔 다시 내내 백지를 내보일 수도 있는 일이다. 그래도 그 기다림 끝에 나왔던 잠시간의 가능성과 표현이 나는 인상깊었다. 기다리다가, 기다리는 것도 포기했다 생각했을만큼 당연하게 기다리다가 오늘의 그 장면을 보게 되었으니.
기다림, 다른 말로는 기대. 어쨌든 학생을 교육하겠다고 학생 앞에 선 교사로서의 나는, 오늘의 그 장면들을 실낱같은 증거로 삼아 앞으로 무수히 있을 좌절과 답답함을 흘리고 견디며 학생들의 변화와 성장을 기다려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