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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누 Jan 23. 2024

10. 첫 담임 마무리

23. 01. 02.

  2022년, 처음 해 보는 것이 많았다. 그 중의 하나는 한 반의 담임을 한 것이었다. 으레 처음 하는 것이 그렇듯 시작 전에는 기대와 이상을, 진행 중에는 좌절과 분노를, 마무리에는 나름의 뿌듯함과 아쉬움이 가득했다.

  종업식 겸 방학식을 하는 날 조회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익히고 노력해주기를 바랐던 규칙은 다음의 세 가지였다.

  첫 번째, 먼저 괜히 선을 넘으며 놀리지 않기. 두 번째, 상대가 싫어하면 그 즉시 놀리는 것을 멈추기. 세 번째, 옆에서 선을 넘는 장난을 치는 것을 본다면 말리기.


  너희들이 이 세 가지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도 보았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지키지 못하고 선을 넘는 모습도 보았다. 너희들에게는 어떻게 다가갔을지 모르겠다. 사람은 쉽사리 변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 당장 변하기를 바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언젠가는, 긴 시간이 지난 후에는 조금이라도 변했기를 바랄 뿐이다.


  이제 나는 담임으로서는 끝이다. 다음 학년으로 올라가면 좀 더 성숙해지길 바란다. 1년 동안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갈등이 생긴다면 너희들이 뭘 해보려고 생각도 하지 않고 나에게 모든 것을 해결하고 상대를 처벌해달라는 식으로 찾아왔던 것처럼 다음 학년의 담임 선생님에게는 하지 마라. 너희는 남들과 잘 지내는 법을 배우기 위해 학교에 왔다. 상대가 마음에 안 든다고 무조건 다른 사람을 찾아간다면 너희는 스스로 남들과의 갈등을 관리하고 해결할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다음 학년에는 더, 조금이라도 더 성장하기를 바란다. 방학 중에는 나에게 연락하지 마라. 쉬고싶다.”


  평소 내 말 한 마디마다 열 마디를 하던 녀석들이 유독 조용했다. 텅 빈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듣는 녀석도,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 녀석도, 연락하지 말라는 말에 서운함을 보이는 녀석도, 찔렸는지 표정이 굳어가는 녀석도 있었다. 저 말에 담겨있는 나의 기대가, 아쉬움이, 홀가분함이, 일말의 애정이 녀석들에게 다가갔을지는 모를 일이다. 똑같은 말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개개인의 선택이니.


  일 년 동안 담임 반 녀석들이 나를 찾는 전화, 카톡은 30회가 훌쩍 넘는다. 처음에는 허둥대면서, 그러다 속상해하면서, 가끔은 익숙한 듯이, 어쩌면 지쳐하면서 사건 개요서를 뽑아 녀석들에게 갔다. 사건 개요서를 쓰게 하면서 본인이 한 행동과 말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기를 바랐다. 이후 상담을 하면서 결국 상대를 좀 더 이해해보고, 나를 상대에게 더 설명해주며 나와 다른 타인과 적절한 관계를 맺으며 지내는 법을 익히기를 바랐다.


  이제 갓 14살이 된 녀석들은 그저 내 입장만 생각하기도, 자기 잘못을 감추기에 급급하기도, 상대를 조금은 이해해보기도,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기도 했다. 그래도 아직 편도체가 덜 자랐기에, 주변의 분위기와 자신의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금 아웅다웅 다투다 결국 나를 부르기 일쑤였다.


  결국 나도 노련하지 않은 초짜라, 내가 이렇게 저렇게 하다보면 그래도 조금은 성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무참히 깨지는 장면을 보며 좌절하고 분노한 적이 종종 있었다. 그러다가도 녀석들이 내 말을 기억하며 조금은 자란 모습을 보일 때엔 뿌듯하였고.


  방학식 날, 여전히 녀석들은 좌충우돌이었다. 서로 놀리기 바쁘고, 선을 넘기 일쑤고. 이제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긴장이 풀리는지 그 모습을 보며 회의감이 들었다. 내가 이런 저런 기대를 하며 지도를 하는 게 의미가 있는 것일까. 기대를 하지 않는다면 나는 교사로서 어떻게 하는 게 맞을까.


  방학식 전날, 가까운 이에게 학교에 와 본가까지 데려다 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짐이 많아서, 학교에서 본가까지 가는 게 좀 멀기도 해서 겸사겸사. 그의 차에 실려 가며 1년을 마무리 하다가 질문했다. 그래도 나보다는 3년 먼저 교직에 발을 들였고, 나보다는 더 안정감있게 담임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니.


  “학생을 지도할 때 나는 조금이라도 성장했으면 하는 기대를 하지만 학생이 내 지도를 받아들이는 것은 본인의 선택이라, 가끔은 내 기대가 좌절될 때 고민을 하게 된다. 지도를 하되 기대를 하지 말아야할까, 기대를 한 뒤 좌절이 될 때 어쩔 수 없다며 다잡아야하는 걸까."

  

답을 찾아보려는 내 고민에 그는 “한국 교육은 선다형으로 답을 찾게만 하니 다들 존재하지 않는 하나의 답을 찾으려는 경향이 짙다.”는 엉뚱한 소리를 흘렸다. 그 답변을 듣고 웃자니 답을 해준다. 어떨 때엔 기대를 하지 않고도 지도를 하고, 어떨 때엔 기대에 대한 좌절을 어쩔 수 없다고 흘린다고. 그럼에도 기대를 낮추려고는 하지 않는다고 한다. 학생이 내 말을 듣지 않는다해도 나는 그 말을 “해야하는 사람”이라며. 그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직업윤리라며.

  내 기대가 좌절될 것을 알아도 “해야하는 것”이기에 한다. 동의할만한 말이라 고개를 끄덕였다. 내 경우에는 좀 더 나아가 내가 “하고싶은 것”이기에 계속해서 기대를 하고, 끈질기게 지도하고, 기다려봐야겠다. 애당초 내가 마음먹은 교사로서의 일은 기대하고 기다려주는 것이었으니.


  2022학년도가 마무리 되었다. 두 달 간의 시간 동안 좀 더 고민해보고, 방법을 찾아보고 2023년의 시작을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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