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 속에서 나를 지키는 힘
가치가 있다면 견딜만하다
생각해 보면 내게 인내만큼 비호감인 단어도 없던 것 같다. 알레르기 반응처럼 기다림이나 끈기란 말엔 거부감이 올라왔다. “요즘 애들은 끈기가 없어 기다릴 줄 몰라!” 소리에 “지들은 지금 괜찮으니까 저런 소리지!” 따져 묻고 싶었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는 말도 대체 이게 달아지기는 할까? 의구심만 들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있음을 포기해야만 했다. 사실 그땐 뭐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조바심이 났다. 스펙 쌓는 대세를 거스르면 부모님과 자신에게 죄라도 짓는 그런 느낌이었다. 대세라는 물살에 휩쓸려 목적 없이 노만 저어대고 있었다. 그때의 난 의미와 가치를 몰랐고 확신도 없었다. 그래서 약 먹고 해소하면 그뿐인 두통 같은 것도 참고 견디면 된다고 생각했다. 사실 두통 같은 쓸데없는 고통은 참을 가치가 없다! 인내는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에서만 열매를 맺는다. 지금 내게 인내가 필요한 일이 있다면 바로 육아이고 육아엔 분명한 의미와 가치가 있다. 때문에 참고 견딜 만하다. 의미와 가치가 있기 때문에 육아 맘과 육아 아빠는 오늘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살다 보면 인내가 필요한 일과 시간이 반드시 온다. 단지 이게 견딜만한 가치 있는 일인지? 의미 있는 일인지? 구분이 필요하다. 인내가 꼭 필요한 때가 있다. 바로 내 항상성이 공격받아 여유가 없어지고 까칠해지며 지랄발광이 올라올 때다. 이럴 때 항상성은 날 다시 안정적인 상태로 돌려놓기 위해 치열한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은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도 한다. 항상성이 일하려 할 땐 인내가 필요하다. 과정을 참고 기다리지 못하면 과정 끝에 오는 평화를 느낄 수 없다. 안정감을 누릴 수 없다. 인내가 잘 작동하려면 내 속에 내적 자산이 있어야 한다. 책을 읽어 내적 자산을 쌓아야 한다. 그런데 인내와 내적 자산은 대체 무슨 상관일까? 영화 쇼생크 탈출을 볼 때마다 “아 내적 자산을 쌓아야지!” 말하곤 하는데 나의 내적자산이 내게 끔찍한 시간도 인내할 수 있는 힘을 주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주인공 앤디듀프레인이 몇 주간의 독방 생활을 끝내고 나왔다. 친구들은 그렇게 끔찍한 곳에서 어떻게 보냈냐며 묻는다. 그때 주인공은 머리와 가슴을 가리키며 베토벤과 함께해서 좋았다고 한다. 친구들은 축음기를 독방에 넣어줬냐며 놀린다. “한 달이 일 년 같은 독방이 좋았다니?!” 친구들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왜 공감할 수 없었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에겐 내적 자산이 없었다. ”감금을 견딜 수 있는 건 자기 안에 위안거리가 있는 배운 사람들뿐이다. 그들에겐 무위의 끔찍스러움을 견딜 자산이 없는 것이다.“ 조지 오웰의 말이다. 비교는 어렵지만 핵심은 같다. 육아에 인내가 필요하다면 내적 자산이 나를 도울 수 있다. 그러면 내 항상성이 안정감을 줄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어쩌면 즐거운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 책을 읽어 자기 안에 위안거리를 두면 인내가 작동한다. 편협한 눈을 돌려 여유를 가질 수도 있다. 오늘 밥 먹이다 또 폭발할 뻔했지만 “내 감정의 항상성이 공격받고 있구나, 또 한고비 넘기자!”며 인내한다. 인내는 훈련이 필요하다. 하지만 가치 있는 훈련이라 견딜만하다.
폭발하려는 감정도 참고 인내할 필요가 있다. 감정은 자기 통제 아래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람을 우리는 성숙한 사람이라 부른다. 성숙한 사람은 자기 통제력을 가진 사람이며 곧 고도의 심리적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그래서 사실 가장 무서운 사람이다. 화내려는 욕구에도 인내가 필요하다. 화는 통제 아래서 때와 장소를 구분해 낼 필요가 있다. 그런데 무슨 성인군자도 아니고 화내는데 때와 장소 구분해? 맞다. 화가 나면 주체가 안 된다. 그런데 그 조절을 못 하면 분노조절장애 폭발을 목격하게 된다. 화 같은 감정은 반드시 자기 통제 아래서 사용돼야 한다. 무슨 소릴 들었는지 씩씩대며 한 선생님이 다가온다. “아 하고 싶은 말 참으니깐 암 생길 것 같아!” “왜 왜? 누가 또 건드려? 참지 마 참지 마!” 농담으로 던진 말에 “아 그 소리 들으니깐 더 열받아!” 한다. 선생님도 할 말을 참아야 하지만 나도 참았어야 했다. 화가 나도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있다. 부부싸움에선 절대 넘으면 안 되는 선도 존재한다. 나쁜 감정이 지배하는 입은 다무는 게 상책이다.
한 육아 맘이 표현하길 나를 잃고 너를 얻었다고 하던데 정말 육아는 자신을 잃을 만큼 큰 고통? 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실 육아는 너로 인해 그런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자신을 잃었다기보다 자기를 알아가는 과정이 육아다. 육아를 통해 “이런 상황에서 나를 잃는구나!” 또는 “없어지는 나를 발견하네 “ 알게 된다. 육아가 아니고서는 몰랐을 자기를 발견했다면 사실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많아지는 육아가 된다. 육아 자체가 인생에서 큰 의미와 가치를 지닌 사건이 되는 것이다. 가치를 알고 정말 인내하고 있다면 고통을 기쁨으로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절대 쉽지가 않다. 그래서 인내라 표현한다. 왜 우리는 힘든 상황 속에서도 밝고 기쁘게 행동해야 할까? 바로 한 사람의 위대성은 그 사람의 인내하는 모습으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인내가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면 가치가 있는 일을 하고 있구나 생각하면 된다. 육아는 가치와 의미가 충만한 일이다. 또 육아가 가능한 이유는 사랑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육아를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내가 육아하는 이유는 가치와 의미를 넘어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