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권리라도 양보 해보자
더운 날..
스벅으로 들어서니 이제야 살 것 같다.
다들 나 같은지 매장 안이 북새통이다.
주문하려 줄선 사람마다 손 부채질을 해대며
어서 내 차례가 되길.. 간절함?으로 기다린다.
나도 어서 줄을 서고 애플주스 한 병을 집었다.
드디어 내 차례..
- 다른 거 필요한 건 없으세요?
- 네, 얼음잔 하나 주세요. 먹고 갈게요.
- 네, 잠시 만요.
이 더운 날.. 어서 주문한 음료를 받지 않으면 폭동이라도 날 것 같은 분이기 때문인지.. 주문받던 직원이 바삐 뒤돌아 뭔가를 하곤 다시 포스 앞에 선다.
그런데 잠시라는 말에 난 그냥 서 있던 것뿐인데.. 주문받던 사람도.. 내 뒤 더위에 헉헉거리던 사람도 눈에서 레이저를 뿜는다. ‘아.. 옆에서 받으라는 말이구나..’
그렇게 내 앞 5명의 음료가 다 나온 뒤 얼음잔을 받을 수 있었다. 애플주스는 내 손에 있고 바로 얼음잔을 주는 줄 알았는데 얼음 잔도 순서를 기다려야 하다니..
아직 그렇게 하는진 몰라도.. 사실 알고는 있었다..
스벅 알바 시절 점심 러시가 시작되면
‘아 그만 좀 와라 이것들아!..’ 하는 말이 절로 나왔는데..
주문 줄 만큼이나 이제 나갈 컵과 곧 만들어질 음료도 길게 줄을 선다.
아이스라떼의 경우 샷에 우유와 얼음을 넣으면 끝이나..
뜨거운 라떼의 경우엔 스팀 우유가 들어가 그만큼 시간이 걸린다.
때문에 늦게 주문했어도 아이스가 더 빨리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다고 선주문을 앞질러 나갈 순 없었다.
이걸 모르고 먼저 완성된 라테를 주려 하는데 부지점장이 한마디 한다.
“먼저 만들어졌다고 주면 안 돼요!
사람들이 워낙 순서에 민감해서..”
언젠가부터 주로 톨 사이즈 바닐라 라테 샷 하나 추가를 마시는데 미국 스벅에서 이 주문이 참 어려웠다(아마도 ‘바닐라’ 발음 때문이겠지..).
그렇게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생각보다 빨리 내 이름을 부른다. 가만히 보니 주문 순서를 지키려 하지만 먼저 줄 수 있으면 주는데 그렇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니었다.
먼저 온 자의 권리..
선 주문자의 권리..
First come, first served
누가 보더라도 공평, 공정해 보이는 불문율이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참 불공평, 불공정하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누구보다 앞서기만 하면
시간 아끼고, 욕구 채우고, 권리를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인터넷을 잘 모르는 어른들은 청약 신청 때도 도움이 필요하고, 이동이 불편한 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이동에 시간이 걸린다.
어떻게 보면 공식적으로 이 불문율을 어기는 곳이 있는데 바로, 응급실이다. 응급실 진료는 온 순서대로 가 아니라 응급도 순이다.
트리아제(Triage)를 따르는 응급실은 많은 환자 가운데 즉시 치료가 필요한 사람과 아닌 사람을 구분한다. 불어 동사 ‘trier’, ‘분류하다, 같은 종류로 묶다 ‘에서 왔다.
뭐 음료 하나 받는데 트리아제까지 생각하나..
MICU 근무 시절..
이곳도 생과 사가 한 자리에 있는 곳인데 하루 몇 번씩 CPR을 치고, CPR 방송하는 게 일상 중 하나다. 때문에 어떤 일이든 빠른 동작으로 마무리해야 했는데 늘 프리셉터가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언제 CPR 날 줄 알고 그렇게 느긋해요?”
아직도 CPR 방송만 나오면 생각나곤 한다.
그날도 내 담당 옆 환자 PR가 죽 늘어지더니 CPR이다. 발견한 내가 CPR를 알리고 전화하고 담당 선생님이 오고 난 하던 액팅을 마무리하고 있는데 내 환자가
“아! 나 물 좀 달라고 아까부터 말했는데 안 줘?!” 한다.
내 환자가 나이가 많고 Dementia 이긴 했지만.. 바로 옆에선 생과 사를 오가도 당장의 목마름과 갈증은 해소되어야 할 그런 것이다!
아까 더위에 헉헉대며 시원한 뭔가를 애타게 찾던 내 뒤에 있던 사람..
이 사람에게 먼저 주문하라고 양보했으면 어땠을까?..
다음에 스벅을 가게 되고 목마름과 갈증으로 허덕이는 사람이 내 뒤에 있다면 한 번쯤 양보 하는 것으로 마음은 시원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