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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고고 프로젝트 Mar 19. 2022

일확천금 도전기

#송사리 #자아 #에고고프로젝트

잠시 스스로를 소개하자면, 극도로 부정적인 사고를 한다. 그리고 툭하면 남과 비교한다.



너무나 익숙한 예시. "물이 반 컵밖에 안 남았네?"는 물론이요, '남들은 다들 물 한 컵씩은 가지고 사는데 나만 이 모양'→'역시 내가 문제군'→'난 안 될 거야'→'나가 XX야지' 흐름으로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는다. 그 모습 때문에 얼마 없는 친구들마저 떠나간다.


그렇다보니 돈에 보수적이다. 내기를 극도로 싫어한다. 질수도 있는 건데 뭐하러 돈 걸어서 기분 상할 일 만드나,란 생각부터 든다. 주식도 마찬가지. 심지어 또래들이 경험해보고도 남았을 로또나 토토 한 번 해본 적이 없다. 로또 1등 당첨 확률이 814만 분의 1이란다. 누군가를 벼락부자로 만들어주기 위해 813만9999명이 희생해야한다는 소리다. 나는 어느 쪽에 속할까. 당연히 후자겠지. 그걸 왜 해?


5천원도 맘껏 쓰지 못하는 '쫄보'가 자산형성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세 번의 직장을 거쳐 만 서른줄에 들어선 지금도 수습 월급을 받고 있다. 친구들에 비해 5년 정도 사회 생활이 늦어졌다. 부자가 되기 위한 출발 역시 5년 뒤쳐진 셈이다.


아니 5년이 뭐야. 희한하게도 주변엔 변호사, 증권맨, 대기업 직원 등 잘 나가는 친구들만 있었고, 비교한 결과 나보다 2배나 많은 돈을 버는 녀석도 있었다. 무엇보다 유동성이 넘쳐나던 지난 2년 사이 주식과 가상화폐로 꽤나 짭짤한 수입을 얻었다고 한다. 그때 나는 취업문이 뚝 끊겨 방황하고 있었는데 말이지.


여기까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혼해 가정을 꾸린 친구가 지난해 서울 소재 아파트를 자가로 마련했다는 소식은 다르게 느껴졌다. 심지어 화장실이 2개인 아파트. 그것만 해도 배가 아픈데, "이사한지 한 달만에 한 장이 올랐다"며 단톡방에 껄껄 웃는 것이다.


한 장이라.. 백?→ㄴㄴ

그럼 천→ㄴㄴ

억→ㅇㅇ


뭐 1억을 한 달 만에? 그것도 숨만 쉬고?? 나는 평생 일해도 1억은커녕, 일자리는 구할 수 있을까 암담한데???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느껴졌다. 계속 이렇게 살면 나는 영영 가난하게 살지 않을까 불안해졌다. 그리고 "그럼 나도?"란 생각이 슬슬 스며들었다. 대선을 앞두고 고개를 드는 '000 테마주'를 사면 나도 떼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사고로 늦게 들어갔다가 피 본 사람을 많이 봤기에 멈췄을 뿐.


근데 로또 한 장 정도는 살 수 있잖아? 지난주 각자 무언가에 도전하며 자아를 발견하고 높여보자는 '에고고(Ego Go) 프로젝트' 구상 회의를 하다가 깨달음을 얻었다. 원효대사가 해골물을 마셨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월급쟁이로 살면 달라지는 게 없음을, 아무 시도도 하지 않으면 변하는 게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도전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깟 5천원 잃을 게 두려워서. 그 돈으로 술사먹어서 몸 상할 확률이 더 큰데 말이지.


마침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괜히 망설여져 미루다간 또 한 주가 흐르고 다시 이도저도 아니게 될 확률이 컸다. 그래, 그냥 질러보자. 마침 주위를 둘러봤다. '복권'이라 써지는 빨간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빨간색이 주가 상승 나타내는 색깔이라 그런가. 가슴 속 뭔가가 끓어올랐다. 뭔가에 홀린듯 나도 모르게 길을 건너고 있었다.


가까이 가니 유리벽에는 3등 당첨 표지로 도배가 되어있었다. 그래서 더 안심됐다. 물론 신도림이나 고속버스터미널에 위치한 '명당' 판매점에 사람들 줄이 늘어선 광경을 본 적있다. 부랴 이동해 거기서 살까 고민을 잠시 했다. 근데 첫 도전에 1등은 조금 부담스러웠다. 빨리 먹으면 체하잖아. 일단 3등부터 시작해보기로 결정했다. 813만9999분의 1일 운운하던 놈 맞니?

"자동 하나 주세요"

출입문을 들어서자 주인 아주머니는 당장이라도 복권을 줄 기세였다. 마감 직전이었으니까. 보통 그런 상황에 맞닥뜨리면 당황하며 우왕좌왕하다 허점을 잡힌다. 그렇게 '호갱'을 당한 게 셀 수 없을 정도다. 이번에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복권을 산 적이 없을 뿐, 복권을 사는 광경은 더러 봐왔다. 그들이 했던 말을 따라해봤다. 다행히 주인 아주머니는 "이 복권은 어떠냐?"며 빌드업을 하지 않고 바로 버튼을 눌러 복권을 발급했다. 너무 고마워서 고개를 90도로 숙였다. 아니 내가 내 돈 주고 사는 건데!


큰 기대는 안 했지만,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원래 멋모르고 치는 고스톱이 가장 잘 들어맞지 않나. 그렇다면 내게도 기회가? 자연스레 슬렉스, 재킷, 벨트 등 사야겠다 생각하던 것들이 떠올랐다. 로또 당첨금으로 사면 되겠네! 


응 아니야. 돌아가~ 낙첨은 물론이요, 어떻게 맞는 숫자가 하나도 없었다. 단순히 생각하면 로또가 45번까지 있으니 하나라도 숫자가 맞을 확률은 2/3인데 말이지. 높은 확률도 비껴가는 나는 정말 안 되는 놈인가. 부정적 사고만 더욱 강해졌다. 그렇게 일확천금을 향한 나의 도전기는 끝이 나고 말았다.


"로또 1등 당첨 확률이 814만분의 1이래. 그래도 매주 몇명씩 당첨되잖아. 그러니깐 그 3%는 정말 큰거야."

얼마전 봤던 영화 <연애의 온도>가 떠올랐다. 영(김민희 역)이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커플이 계속 만나게 될 확률이 3%라며 재결합을 망설일 때 동희(이민기 역)가 말한다. 맞다. 아무리 확률이 낮다고 해도 누군가는 행운을 맛보고 행복해진다. 그게 나냐 아니냐가 문제일 뿐. 언젠가 나도 그 행복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손에서 떠나간 5천원을 더는 아까워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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