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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고고 프로젝트 Mar 27. 2022

일의 기쁨과 슬픔

#송사리 #자아 #에고고프로젝트

"회사에서 울어본 적 있어요?"

                                                                                장류진 <일의 기쁨과 슬픔> 中


거북이 알의 물음에 주인공은 고개를 젓는다. 물론 그 역시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다들 그렇지 않는가. 윗선의 일방적 지시에, 자기 감정이 우선인양 푹푹 내쉬는 동료의 한숨에, 그런 날엔 내 맘도 몰라주고 (응답없음)만 반복하는 컴퓨터에. 왈칵 쏟아질 일 천지다. 그럼에도 눈물을 삼키고 다시 일을 한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


나 역시 울어본 적이 있다. 아니 많다. 세상을 활자로만 배운 탓에 현장에서 임기응변으로 대처하는 '일머리'가 부족한 편이었다. 그 사실이 들통날까 항상 노심초사했고, 한소리라도 들을라치면 눈물부터 보이기 일쑤였다. 자기방어에 급급한 전형적인 사회초년생의 모습이었다.


서른초반에 마주한 네 번째 첫 직장. 이번 만큼은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뭐든 여유 있고 긴장하지 않은 척 보이려 애썼다. 그때 도움을 줬던 게 웃음이다. 새로운 일터다 보니 처음 들어본 용어가 많고, 마스크가 소리를 막아 못 알아듣는 경우도 생겼다. 당황하지 않고 적당히 미소지으면 서로 이해한냥 넘어갈 수 있었다. 속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겨우 내쉬며, 나는 내가 사회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뿌듯해 했다. 금방 탄로날 줄도 모르고 말이지.


부서 배치 1주차. 아직 혼자 내놓기엔 미심 쩍은 수습이기에 부서에서는 선배들과 동행하는 일정을 짜줬다. 그 중 하나는 전시회 참가. 코엑스에서 열리는 무지막지하게 큰 행사였다. 선배의 지시는 간단명료했다. 바로 자신을 잘 따라오라는 것. 높으신 분들에, 기업관계자에, 미디어에, 관람객에 모두 뒤섞여 누구 하나 코로나 걸려도 이상하지 않을 인파였다.


그 북새통 속에 나는 잘 따라오라는 선배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고자 애썼다. 자석이라도 붙은 것마냥 선배를 쫓아다녔고, 인파 속에서 선배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몸빵'을 마다하지 않았다. 점심 후식으로 "졸라 시원한 슬러시를 사오라"는 말에 금방 잠바주스를 찾아 스무디를 대령할 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일 잘하는 수습이라 뿌듯했다. 하마터면 나르시즘에 빠질 뻔 할 정도로.


문제는 선배가 내게 독자 일정을 만들어주며 시작됐다. 전시회 부대 행사로 진행되는 컨퍼런스 연설을 찾아가서 내용 정리를 해오라고 했다. 한때 잇따랐던 배터리 ESS 화재를 예방하는 대안을 주제로 한 연설이라며, 대안을 A, B, C로 요약하면 된다고 알려줬다. 이 정도면 떠먹여준 셈이나 다름없다. 나는 찾아가서 A, B, C만 집어넣으면 된다.


찝찝한 건 역시나 혼자 가야한다는 것. 미리 찾아가서 변수를 줄이는 수밖에 없었다. 출입 등록을 마치고, 최대한 앞자리에 자리를 잡고, 노트북 와이파이를 연결하니 10분 가량이 남아있었다. 연단에는 한 광역지자체에서 자신들의 R&D 인프라를 소개하고 투자를 요청하는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있었다. 연습 삼아 말을 받아쳐봤다. 이 정도면 OK. 임무만 수행하면 됐다.


드디어 내가 맡은 연사가 왔다. 그가 말하는 족족 다 받아치겠다는 각오로 눈은 모니터에 손은 키보드에 집중한 순간, 예기치 못한 일이 터졌다. 그가 영어로 연설을 하는 것이다. 프레젠테이션 PPT 자료도 알아보지 못할 영어로 도배되어 있었다. 당황한 나는 일단 주변을 살펴봤다. 나를 제외한 청중들은 모두 귀에 통역기를 꽂고 있었다. 중간에 들어오는 바람에 나만 컨퍼런스가 영어로 진행되는 줄 몰랐던 것이다.


예기치 못한 전개에 어찌할 줄 모르던 찰나, 딱 하나 문구가 떠올랐다. 보고는 생명. 일단 선배한테 연락을 취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실직고 했다. 영어로 진행되는지 몰랐다고. 하지만 답이 오지 않았다. 내 맘도 모른 채 연사는 샬라샬라 빠르게 말을 이어가며 자꾸 슬라이드를 넘겼다. 그때마다 내 심장 반쪽씩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


답이 오지 않는다면 내가 최선의 판단을 하는 수밖에. 호다닥 뛰어 연설장 밖에 나갔다. 테이블 위에는 통역기가 수없이 깔려있었다. 하나를 잽싸게 챙겨 돌아왔다. 시계를 보니 이미 1/3이 날라가 있었다. 남은 내용이라도 필사적으로 들어야겠다고 애를 썼지만, 통역하시는 분 역시 멘탈이 많이 나가있으셨다. 배터리 전문 용어가 반복되는 까닭이다. insulation(절연)을 그대로 인설레이션이라 읽어주시니 내가 손쓸 도리가 없었다.


연설을 마치고 워드 파일을 보니 저런 전문용어의 나열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이거 어떡하지? 상황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선배는 "받아적은 내용 가지고 알아서 해봐"라고 친절히 알려주셨다. 헛웃음이 나왔다. 어쩌겠어. 시키는 대로 어떻게든 만드는 수밖에.


머리를 쥐어짜며 어떻게든 말이 되게 만드는 사이, 선배가 돌아왔다. 잘 하고 있냐 물었다.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컨퍼런스가 영어로 진행되는지도 모르고 저지른 내 실수가 너무 말이 안 되어서.

선배 반응은 딱 저러했다. 돈 받고 일하는 프로의 세계에 웃음이란 웬 말이냐는 투로. 솔직히 그때는 아주 조금 억울했다. 속으론 울고 있었는데 말이지. 이미 떠나간 멘탈은 돌아오지 않았고, 나는 정리한 내용을 날려버리는 실수까지 저질러 버렸다. 이번엔 선배가 헛웃음을 지었다. 얘 어떡하지 하는 표정과 함께.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는 냉기류가 흘렀다. 침묵을 깨고 선배가 물었다.

"너 영어 잘 하냐?"/"더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서른 넘었으면 끝났지 인마"/"예.."


그 찰나의 포인트에서 내 스위치가 켜졌다. 영어, 글쓰기, 관련 지식 등 나는 죄다 부족한 것 투성이인 게 화가 났다. 특히 영어. 수능 원점수 1점 차이로 대학, 장학금 등 모든 걸 미끄러트렸다. 그 컴플렉스가 10년이 지나도록 따라올 정도면 미리 대비라도 했어야 말이지. 뭐든 내가 편한 대로 미루는 내 습관을 고쳐야겠다 싶었다.


그리고 질러버렸다. 영어가 여태 발목을 잡고 있다면 그 고리를 끊으려는 최소한의 노력은 해야하니까. 통역기 없어도 발동동이 아닌 자신 있게 앉아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혼자만 다짐하면 절대 안 지킬 걸 알기에 이렇게 올리는 거겠지. 일단 코로나부터 좀 낫고, 꼭 듣고야 만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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