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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고고 프로젝트 Mar 28. 2022

시간을 갖는다는 것

#천왕성 #자아 #에고고프로젝트

“그럼, 시간을 좀 가져보자.”

비 오는 새벽. 수화기 너머로 전해진 그의 말. 나는 어젯밤 우리가 나눠 마신 위스키 잔을 바라보고 있었다. 잔은 나란히 놓여있었다. “언제까지?” “2주.” 그렇게 시작하게 됐다. 생에 처음으로. 연인과 시간 갖기.


그와는 회사 동료의 소개로 만났다. 강남 모처의 이자카야에서 처음 마주했다. 그는 회색 코트를 입었고, 나는 평소에 잘 입지 않는 검정 원피스를 입었다. 뒤에서 인사를 건네는 그를 등 돌려 처음 본 순간. 난 이 만남이 꽤 즐거울 것임을 직감했다. 그는 회를 좋아한다고 했다. 마침 방어 철이어서, 우리는 방어를 주문했다. “그러고 보니 이번 겨울 첫 방어네요!” “어, 저도요.” 아니, 아니었다. 방어회 비주얼을 보자마자 떠올랐다. 올 겨울 이미 방어를 먹었단 것을! “아, 생각해보니 먹었었어요. 근데 너무 별로라서 안 쳐줬나 봐요.” “엇, 이것도 안 쳐주시면 어떡하지.” 그는 당황했고, 나는 그럴 것 같지 않다며 얼른 한 점을 입에 넣었다. 회는 눈 녹듯 사라졌고, 그는 한결 안심한 눈치였다. 우리는 방어회를 다 먹고도, 나가사키 짬뽕을 시켰고 술잔을 계속 기울였다. 그렇게 서너 번을 보고 우리는 연인이 되기로 했다.


“우리가 잘 맞는 거야, 네가 엄청 맞춰주는 거야?” “우리가 잘 맞는 거지.” 그렇게 말할 정도로 처음엔 제법 순탄했다. 아니, 제법이 아니라 인생에서 이렇게까지 수월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나는 나도 모르게 그와의 미래를 꿈꿨다. 짚신도 짝이 있다더니, 드디어 다른 한 짝을 만났구나! 하면서. 불안하지도 않았다. 매 순간 느껴지는 뜨듯한 안정감을 즐겼다. 이 순간이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이런 적은 정말. 처음이었다.


비극이란 가족들이 단란하게 모여 앉은 식사 자리. 뒤에서 꽂은 칼처럼 온다 했던가? 내게도 비극은 그런 식으로 나타났다. 깊은 밤. 평소와 다를 바 없던 전화의 끝에서 헤어짐을 통보받았다. 그는 우리의 차이 때문에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했다. 억울했다. 우리가 잘 맞는다고 했잖아. 그가 늘어놓은 차이가 납득되지 않았다.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 혹은 나의 환영을 보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해명 아닌 해명을 들은 그가 겨우 마음을 돌렸다.


“그럼, 시간을 좀 가져보자.”

그렇게 비 오는 새벽. 나는 눈앞까지 찾아온 이별을 조금 밀어내고, 어쩐지 가벼운 마음으로 잠들었다.




"결국 '헤어지자'는 얘기예요."

즐겨보던 연애 프로그램에선 그렇게 말하곤 했다. 시간을 갖자는 말은 "그만하자"의 대체어쯤 된다고. 인생에서 처음으로 해보는 '시간 갖기'였다. 사람들은 헤어짐의 카드로 그런 말을 쓰는구나. 학습해왔다. 그는 "이 과정이 너에게 고통스러울 거야." 예고해주기도 했다. 감정 소모가 심할 것이라고. 그럼에도 자기에게 시간을 줄 수 있는지. 나는 말했다. "사람이 어떻게 감정 소모를 안 하고 살겠어? 어차피 해야 할 감정 소모라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할 거야."


너무 호언장담했다. 나는 감정의 롤러코스터에 착실하게 착석하고 말았다. 먼저 화장실 찬장에 놓인 그의 칫솔을 버렸다. 그다음엔 휴대폰에서 그의 흔적을 모두 지웠다. 메신저 창, 사진, 번호. 헤어지잔 말을 두 번 들을 수는 없었다. 그 철렁하는 순간의 감각을. 두 번 느끼고 싶지 않았다. 지금이 헤어짐이고, 나중에 혹시라도 만남을 이어가게 된다면 그건 재회여야 했다. 그러니까 결국 나는 시간 갖기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 이 열차는 하강합니다.


"퇴근 안 해요?" "네, 해야죠!"

어쩐지 일에 더 몰입하게 됐다. 일하는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아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했다. 평소보다 훨씬 늦은 시간에 퇴근하니 버스에는 승객이 몇 없었다. 고요한 음악을 들으며 생각을 다듬었다. ‘성급하게 나를 판단하고 헤어짐을 고하는 사람과 만나야 할까?’ 그 질문이 떠나지 않았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기한은 2주. 시간이 한참 남아있었다. 겨우 시간을 벌어놓고 먼저 헤어짐을 꺼내도 되는 걸까? 비겁하지 않나? 전화나 문자로 하긴 싫은데.. 고민이 꼬리를 물었지만, 끝내 답이 없는 이유는 명확했다. 헤어지고 싶지 않아. 이토록 하기 어려운 것을 그는 어떻게. 어떻게 할 수 있었던 걸까. 늦게 퇴근해서 다행이었다. 승객이 없어서 눈물을 참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 이 열차는 상승합니다.


“그 사람은 지금 당신과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어요."

유튜브에서 흘러나오는 말에 자세를 고쳐 앉았다. 예전에 종종 보곤 했던 타로 영상이었다. 뭔데, 이거. 재회운을 본 것도 아니었는데? 휴대폰 볼륨을 높였다.

"생각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데. 이 시간이 지나면 둘의 사랑이 더 견고해질 거예요.”

그래. 그는 분명 헤어짐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 시간을 갖자고 했다. 이미 헤어진 것처럼 군 건 나였다. 다시 희망이 느껴졌다.



- 점검을 위해 이 열차는 운행을 중지합니다.


오후 11시 퇴근. 지칠 대로 지쳤지만 잠들 수 없었다. 아이패드를 켰다. 지난 2~3일 동안 새벽까지 봤던 게시물을 요약하고, 그래프를 캡처해 PT를 만들었다. 매끄럽게 전개되지 않아서 모두 지우고 다시 만들기를 여러 번. 최종적으로 3장의 PT가 완성됐다.


"면접 때 혼자만 PT를 준비해왔는데, 그게 진짜 인상 깊었어."

재직한 지 2년이 되어가는데도, 이사님은 술자리에만 가면 면접 당시 나의 PT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얘기하시곤 한다. 종이 한 장짜리가 어떻게 사람 마음을 사로잡는지. 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언제 그만둘지 모를 회사도 들어가려고 그 정도 노력을 하는데, 하물며 평생을 함께 할 반려자를 잡기 위해 못 할 리가? 그가 짚어낸 '차이' 중, 내가 증명해낼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생경한 분야였지만 내 잠재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면 잡힐 것 같았다. 내가 증명하는 진실을 믿어줄 수도, 그렇지 않더라도 그 노력을, 그 노력에 담긴 절실한 나의 사랑을 봐줄 것 같았으니까. 내게 흘러넘치는 이 사랑이, 이 에너지가 결국 그의 일시정지를 다시 재생으로 만들 수 있을 거야. 끝내 헤어진 대도 공부한 건 남겠지.


PT를 만들면서 그 어느 때보다 자존감이 용솟음치는 걸 체감했다. '나는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끝의 끝까지 노력할 수 있는 사람이야!', '나는 사랑 앞에 자존심 같은 거 없는 사람이야!' 이런 생각이 사람을 달뜨게 해 피곤하지도 않았다. 시간을 갖는다는 것. 너무 다양한 나를 마주하게 했지만, 감정에 호소하며 방바닥만 긁는 게 아니라 책상 앞에서 생산적인 행동을 해내는 나도 만나게 해 주었다. 처음 만난 나였다.



'전송'

800자쯤 되는 간단한 편지를 쓰고 PT를 첨부하여 이메일을 보냈다. 우리가 처음 만나고, 그다음 날. 실수로 휴대폰 번호 대신 전해줬던 이메일 주소였다. 업무 메일 주소쯤은 알고 있었지만, 또 그 편이 훨씬 정확하고 빠를 것임을 알았지만, 혹시 모를 그의 당혹스러움을 위해 내린 선택이었다. 혹시라도 죽은 메일이라면, 그 또한 운명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새벽 2시. 메일을 보내고 잠자리에 누웠다.


다음날. 그리고 다다음날까지도. 회신은 오지 않았다. 다른 연락도 오지 않았다. 신경 쓰게 될까 , 부러 수신확인이 되지 이메일을 이용했었는데, 후회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몰려오는 묘한 감정. 회사는 명확한 ''. 나는 명확한 '.' 사랑 앞에서 내가 너무 쉽게 '' 자처한 걸까? 당당한 척은  했지만, 미묘하게 나의 일부 어딘가 다친 것을 느낄  있었다.



"집에 두실 거면, 흰 장미가 아직 덜 피어서 오래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오로지 그 조언 때문에 흰 장미를 샀다. 꽃을 자주 사는 편이지만, 흰 장미는 처음이었다. 꽃을 오래 보려면, 매일 물을 갈아주고, 끝이 무르지 않도록 줄기를 사선으로 잘라주는 것이 좋다. 여느 때처럼 꽃을 오래 보기 위해 가지를 이만큼씩 잘라냈다. 그러면, 장미는 조금 다치겠지만, 더욱 깊은 향을 내었다. 관계도 그렇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꽃을 돌봤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화장실에서 물을 따라내고 새 물을 받아내는데 한 송이가 똑-하고 모가지를 끊고는 그대로 추락했다. 하롱하롱 꽃잎을 흩트렸다. 덕분에 화장실 바닥은 프러포즈를 앞둔 사람이 준비한 모양새가 되었다. 그만큼 로맨틱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그저 덤덤하게 잎들을 주워 담아 버렸다. 시간을 갖는 게 아니라, 막다른 이별이었다면 조금은 더 서러웠을까?


흰 장미의 꽃말은 순결, 존경 등이 있지만 ‘다시 만나고 싶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내게는 아직 세 송이의 장미가 남아있다. 우리는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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