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성 #자아 #에고고프로젝트
<노래하는 사람> 시리즈
이 시리즈는 1편 이상으로 기획된 완성 지향형 프로젝트입니다.
'커버곡 촬영 및 업로드'라는 구체적 목표 아래, 이를 수행하면서의 과정과 생각을 담고자 합니다.
꾸준히 봐주시면 결과물 볼 날도 있으실 걸요? 아마...?
그러니 응원해주셔요!
초등학교 3학년. 학예회 날이었다. 우리 학급엔 룰이 있었다. 누구나 1회 이상 꼭 참여해야 했다. 1회 이상.. 그땐 몰랐다. 그럴 땐 1회만 하면 된다는 걸. 나는 욕심이 많았다.
교실 뒤편. 우리가 얼기설기 그려놓은 그림들이 붙어 있고, 우린 그 앞에 섰다. 조그마한 아이들 의자에 학부모들이 불편하게 앉아 있었다. 리코더 연주, 성대모사하는 재치 있는 아이, 여러 순서가 지나고 드디어 내 차례. 나는 그때 당시 '화이트 스카이'라는 그룹을 친구들과 결성한 상태였다. 그룹 god 노래만 부르는 팀인데, 각자 맡은 역할도 있었다. 학예회니까 응당 우리(아님) 노래를 불러야지! 다섯 명의 아이들이 늘어서 god의 길을 불렀다. 명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그때 당시 손호영 님을 좋아했기 때문에 틀림없이 그 파트를 불렀으리라.
"그 꿈을 이루면 난 웃을 수 있을까"
"짝짝짝"
곡이 끝나자 학부모들이 박수를 쳤다. 누군가는 우리를 귀여워하는 것도 같았다. 앞에서 두세 번째 줄에 앉은 엄마도 환히 웃어 보였다. 박수소리가 멎자 친구들 넷은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중앙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 무대는 따로 없었다. 그냥 맨바닥에 고무신 같은 실내화 신고 서서 했던 것 같다.
"울지 마, 이미 지난 일이야."
물 흐르듯 시작된 다음 공연. 그룹 샵(s#arp)의 내 입술 따뜻한 커피처럼. 내 솔로 무대였다. 읊조리듯 시작된 무대에 관객 몇은 '오, 저 친구 끼 있는 친구로구먼'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나는 네 명 몫을 혼자 부르기 시작했고, 내레이션, 랩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때쯤이었던 것 같다. 엄마 얼굴이 붉어진 게.
"짝짝짝"
"이젠 보다 높은 곳을 바라봐..."
이어진 곡. 내가 좋아한 첫 가수. 유승준. 그땐 그가 그런 일을 벌일 줄이야 꿈도 못 꿨지. 내가 처음으로 산 음악 테이프가 유승준의 4집이었다. 하늘색 불투명 워크맨 주황색 재생 버튼이 닳을 때까지 들었던 앨범이었고, 그중 가장 좋아한 곡. '꿈을 위해'였다. 연이어 세 곡을 부르기 시작하자 좌중이 일순 고요해졌다. 엄마는 조용히 핸드백을 집어 들고 교실 밖을 나갔다. 나는 개의치 않고 완곡했고 박수를 얻어냈다. 엄마는 아직까지 뒷목에 땀이 흐를 만큼 당황스러웠다고 회고하신다.
뭐, 노래하는 거 되게 좋아하는 친구인가 보다 하셨겠지. 엄마는 창피하게 했을지언정, 나는 노래에 대한 욕심을 멈출 수 없었다. 도저히 그 세 곡 중에 한 곡을 못 정하겠던 걸 어떻게 해. 그걸 다 시킨 선생님도 대단하다. 어쨌거나 나는 어릴 때부터 이렇게까지 노래하는 걸 좋아했다. 노래 그 자체도 좋지만, 노래하는 나 자신도 좋아한다. 노래에 관련한 에피소드가 많지만, 가장 오래된 기억 중 가장 강렬한 에피소드라 소개해보았다.
노래 커버 영상 올리기
올해 버킷리스트 중 하나다. 이미 자작곡 부르는 영상을 올린 적도 있는데. 커버 영상쯤이야. 사실 작년에 올리고 싶었는데 하지 못해서 올해 꼭 해보리라 계획을 세웠다. 벌써 5월. 슬슬 시작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한가한 일요일 오후. 현금이 두둑한 반지갑을 들고 코인 노래방으로 들어섰다. 한 손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쥔 채였다. '청소년실'이라고 적힌 한적한 방을 골랐다. 오천 원이면 10곡에 2곡 보너스였다. 휴대폰 음성 메모를 켜고 리모컨을 쥐었다.
'노래방쟁이'. 아니, 나름 장인정신들이 있으니 '노래방장이'라고 불러야 할까? 노래방장이들은 나름 자신만의 철학이 있다. 간주 점프와 1절 ONLY가 생명과도 같은 부류, 악보 띄워놓고 부르는 완벽주의자들, 자기 음역대에 맞게 음정 조정하면서 부르는 민감 가수형, “아아..” 자기한테 맞는 마이크 고르느라 테스트만 몇 번째인지 모르겠는 해리포터형... 나는 뮤직과 멜로디, 에코, 리버브 줄이고 마이크 볼륨만 키우는 목소리형에 점수 제거, 육성 제거하는 제거파다. 오랜만에 잡은 마이크는 좀체 놓고 싶지 않았고, 얼굴이 뜨거워져 나갈 엄마도 동석하지 않으니 12곡이 지나고도 천 원짜리 지폐들을 희생하여 18곡으로 마무리 지었다. 혹여나 곡명을 궁금해하실까 리스트를 공유한다.
10cm - 어제 너는 나를 버렸어
태연 - INVU, 그대라는 시, I, Gravity, 너를 그리는 시간, 11:11, Fine
아이유 - 아이와 나의 바다, 자장가
자우림 - 있지
이수현 - 아직 너의 시간에 살아
종현 - 하루의 끝
Adele - Make You Feel My Love, Easy On Me
윤하 - 소나기
권진아 - Lonely Night
전미도 -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
이제 녹음한 곡들을 꾸준히 들어보면서 어떤 곡을 커버할지 정해야 한다. 어쩐지 부르면서도 이별곡이 많다고 느꼈는데, 선곡에 가사가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뭐, 꼭 한 곡만 부르라는 법은 없으니까. 별로면 2초도 할애해주지 않겠지만, 듣기에 괜찮으면 엄마처럼 채널을 박차고 나가진 않겠지(엄마, 뒤끝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