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성 #자아 #에고고프로젝트
"맹장이네요. 원래 좀 무던한 스타일이죠?"
의사 선생님은 배에 닿는 것만으로 고함을 왁 지르는 내게 말했다. 맹장이라니! 한 번도 내가 맹장이 터질 것이라곤 생각한 적 없다. 아니, 어쩌면 몇 번은 '터지면 그렇게 아프다던데, 나도 언젠가 터지려나?' 생각한 적 있긴 하다. 공식적인 명칭은 충수염. 그것이 내게 오고 말았다.
전날부터 아팠다. 아침에 재택근무로 일하는데, 전날 저녁에 너무 많이 먹어서인지(보통은 메뉴 하나로 끝내는데, 그날은 두 가지 메뉴를 요리해 먹었다.) 아침부터 배가 고픈 건가? 싶었다. 허기쯤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점심시간에 맞춰 패스트푸드를 주문해 먹었다. 그 뒤부터 체한 것처럼 가슴이 답답해왔다.
망했다. 체했네. 그때부터 냉장고에 있는 매실액도 마시고, 온갖 혈은 다 눌렀다. 퇴근할 때까지 체기가 가시지 않자, 친구 중 누군가는 셀프로 손을 따라 했고, 누군가는 활명수를 사서 마시라 했다. 나는 충고를 충실히 받아들여 퇴근 후 편의점에 가서 활명수 세 병을 샀다. 한 병쯤이면 되겠지만, 혹시 모를 훗날을 위해.
깊은 밤. 활명수 두 병을 마셨는데도 아무 변화가 없었다. 이건 뭐, 박카스 마신 것과 다름없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반응이 나타났다. 평소와 달랐다. 몸 안의 장기가 드글드글 끓는 것 같았다. 아, 이거 조졌다. 활명수 두 병 마셔서 이러나? 마치 장기가 캅사이신에 고통받는 느낌. 가만있을 수 없었다. 엎드릴 수도, 앉아있을 수도 없었다. 다년간의 생리통으로 익숙한 나였는데, 처음 맛보는 강렬한 복통이었다..!
"우웨에에엑"
'그래, 이제 됐어!' 쾌재를 불렀다. 처음에만 그랬다. 총 여섯 번. 나올 것이 없을 때까지 구토했다. 그럼에도 이놈의 체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아, 이쯤이면 눈치챘어야 했는데. 눈치를 못 채면 119라도 부를 것을. 나는 화장실 문틈에 쓰러졌다가 다시 토하고, 돌아오고를 새벽 내내 반복했다.
아랫배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슬그머니 무서워졌다. 골반인지 다른 장기가 아픈 것인지 분간되지 않았다. 허나 아픔의 정도는 너무 커서, 다리를 똑바로 펼 수조차 없는 지경이었다. 이른 아침, 회사에 연락을 취했다. 오후 2시, 겨우 몸을 일으켜 200m 이내에 있는 내과로 향했다. 그 가까운 거리가 어찌나 멀던지. 두어 번을 더 쉬어가며 내과에 도착했다. 난입한 길고양이를 가차 없이 쫓아내는 냉랭한 간호사 선생님께 접수를 하고 의사 선생님을 뵈었다.
"이렇게 하면 아파요?(아픈 부위 꾹-!)"
"IC!!"
원래 그렇게 무례한 사람이 아닌데,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나는 거의 욕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고, 선생님은 차분히 "큰 병원에 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 답하셨다.
그렇게 시작된 입원 생활. 인생의 첫 입원이었다. 큰 병원에 택시를 타고 가 CT, 엑스레이, 채혈, 채뇨, 심전도 검사까지 종합세트로 받고, 코로나 검사까지 완료하여 501호 가장 깊숙한 창가 자리를 얻었다. 다음 날 오전 9시 수술. 코로나로 인해 면회도 금지된 상황이었다. 처음 해 보는 전신마취 수술인데! 심지어 보호자도 없이 임해야 한다는 게 못내 암담했지만 의연하게 행동했다.
"프로포폴 ***mg 투여합니다."
'오, 나도 그 유명한 프로포폴 맞네.' 하고 1초, 2초... (!) 일어나 보니 한쪽 배는 찢긴 것처럼 아프고 숨은 잘 안 쉬어지는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 내가 깨어나자 의료진이 다가왔다. 누운 채 병실로 이동하는데, 턱에 걸릴 때마다 수술 부위가 너무 아팠다. 내 원래 병상으로 굴려주실 때에도 침대에 눕는 게 아니라 어디 무한 나락으로 떨어뜨려지는 느낌. 마취에 덜 깨어 모든 게 다소 비현실적이었다.
엄마들은 다 어떻게 아이를 낳는 거야?! 배꼽 쪽 조금 찢었을 뿐인데도 이렇게 아픈데! 제왕절개는 어떻게 하는 거야?! 결혼하게 되면 출산도 하고 싶다고 최근에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하게 됐다. 아이. 꼭 낳아야 할까...? 진심?
"엄청 씩씩하다!"
멀쩡히 화장실을 다녀왔을 뿐인데 간호사 선생님이 기를 살려주셨다. 내게 간호사 선생님들용 마스크를 하나 선뜻 주셨던 분이었다. 실제로도 수술 후 빨리 회복된 게 느껴졌지만,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기운이 그렇게 날 수 없었다. 조금 까칠하게 구는 어르신 환자에게도 친절히 응대해주시는 분.
그 선생님뿐 아니라, 다른 선생님도 정말 친절하셨다. 교대근무하는 선생님 한 분이 새벽에 출근해 오시면 병실에 복숭아 냄새가 확 났다. 혈압과 체온을 재어주시는데, 그새를 못 참고 "선생님, 향 좋아요!" 했더니, 핸드크림 향이라고 알려주셨다. 변태 같아 보이진 않았겠지. 나는 며칠째 씻지 못해 머리는 떡져있는데, 그 향이 번지니 나까지 기분이 좋아져 어쩔 수 없었다. 향도 향인데, 뭔가 건강한 느낌이라서. 건강한 게 예쁜 것이라는 걸, 이리 일찍 알게 되다니.
그렇게 3박 4일이 흐르고 퇴원 날. 아침 9시 반 퇴원인데, 이미 4시 반에 깨서 엉덩이를 들썩였다. 집에 기다리는 사람 하나 없는데, 뭐가 그렇게 가고 싶은지. 마지막 식사를 마치고 주변 정리를 한 뒤, 간호사 선생님께 "감사했습니다!" 인사를 남기고 퇴원했다.
"혼자 서러웠겠다."
아니. 한 번도 서럽지 않았다. 어슴푸레한 병실에서 창 밖으로 해가 떠오르거나 지는 풍경,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풍경을 보는데 그게 그렇게 평온했다. 평온. 그래, 평온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빨리 낫기만 하면 되는 게. 간호사 선생님이 시시때때로 오셔서 괜찮은지 확인해주시고 약을 갈아주시는, 말 그대로 간호를 받는 것. 나는 큰 병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게 평온일 수 있었겠지만.
그래서 이 건강함에 감사하고, 잠시나마 바쁜 일상 속 그런 평온을 보내서 감사하다. 지금은 한바탕 꿈을 꾼 것 같은데, 앞으로 병원 안 수많은 환자들의 밤이, 그리고 새벽이 상상될 것 같다. 모두 평안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