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goist Jul 13. 2019

쉘 위 플레이?

<플레이타임>, 자크타티 (1967)


오늘은 <플레이타임>을 이야기합니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하는 유머'가 아니라 '작정하고 만들어진 콩트'의 코미디 영화입니다. 슬랩스틱으로 무장했습니다. 일단 기승전결 없이 그저 일상의 해프닝을 조망하는 전개 자체가 그 특징을 말하죠. 기승전결이 없으니 스포랄 것도 없습니다.

눈에 띄는건, 아니 (엄밀히 말해) 귀에 꽂히는건, 유머를 만들어내는 핵심 요소가 효과음이라는 사실입니다. 판토마임같은 배우들의 행동양식과 리듬감 넘치는 각종 효과음이 어우러지면서 재미를 선사합니다. 유유히 흘러들어오는 소리의 효과라기 보다는 각성시키는 소리의 효과로 상황을 갖고 놉니다. 이에 심취하다 보면 어느새 보는 이가 함께 즐기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보는 내내 머릿속에서 굴러다닌 단어 하나, 바로 호모루덴스입니다.

네덜란드 역사학자 요한 호이징하가 제시한 개념인 유희하는 인간,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정의가 떠오른 것입니다. 인류의 문화 그 자체가 놀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 영화 내재적으로는 주인공 윌로의 일정에서 놀이가 아닌 우연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는 것.

종국에는 한바탕 난장까지 벌어지는데 이 사람들, 어찌 됐든 놉니다. 계속 놀아요. 주구장창 놀 뿐입니다.

요즘 영화를 보며 혹은 여타 예술작품을 접하며 심오한 의미를 찾고 뜻을 탐색하려는 자세가 강박처럼 뒤따르곤 합니다. 하지만 <플레이타임>은 모두 내려놓게 합니다. 외려 지금까진 오락이라는 본질을 너무 등한시했나 봅니다.

어느새 토요일 오후입니다. 자, 쉘 위 플레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