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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lja Jul 26. 2021

작은 아씨들-그 뒷 이야기 11

작은 신사들 (by 루이자 메이 올콧)

  네트는 조를 아주 좋아했다. 하지만 바에르 교수에게 훨씬 더 마음을 끄는 뭔가를 발견했다. 바에르 교수는 12년 동안이나 튀어 오르며 어쩔 줄 모르는 작은 배 위에서 거친 바다를 가까스로 탈출해 목숨을 부지한, 부끄럼 많이 타고 연약한 소년을 아빠처럼 보살폈다. 육체는 고통받았지만, 영혼은 거의 상처 입지 않은 채 아기처럼 순수하게 해안으로 떠밀려 왔으니 착한 천사가 네트를 지켜보고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로렌스 씨는 그 많은 불화에도 음악에 대한 네트의 사랑이 그의 영혼을 순수하게 지켜냈다고 말했다. 바에르 교수는 여자아이처럼 유순하고 다정한 자신의 새 학생에게서 찾은 단점은 고치고 장점은 발전하도록 하는 걸 좋아했다. 바에르 교수는 조에게 네트에 관해 이야기할 때 종종 네트를 자기 ‘딸’이라고 불렀다. 조는 바에르의 엉뚱한 말에 웃곤 했다. 자신은 남자다운 소년을 좋아했고 네트는 연약하지만 씩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절대로 알아채지 못했겠지만 사실 조는 데이지를 어루만지듯 네트를 쓰다듬어 주었고 네트는 그런 조가 참으로 유쾌한 여성이라고 생각했다.

   바에르 부부는 공포와 무지 때문에 네트의 단점이 커졌다는 점을 알았지만, 네트의 결점 한 가지가 그들을 무척이나 화나게 했다. 유감스럽게도 네트는 종종 거짓말을 했다. 악의가 있는 거짓말은 아니었다. 거의 가볍고 사소한 거짓말이었고 그다지 심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심하고 안 심하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거짓말은 거짓말이다. 이상한 이 세상에서 우리는 가끔 의례적인 거짓말을 하기도 하지만 옳은 일은 아니다. 모두가 그 사실을 안다. 

   “거짓으로 말하고 보고 행동하는 건 쉽다. 그러니 너의 혀, 눈, 손을 주의해라. 아무리 조심해도 지나치지 않다.” 

빠지기 쉬운 큰 유혹에 관해 이야기하던 중 바에르 교수가 네트에게 이야기하였다. 

   “알아요. 그리고 안 하려고 해요. 그런데 선생님이 거짓말에 너무 까다롭지 않으시다면 제가 아이들과 지내기 훨씬 더 쉬워요. 저는 아빠와 니콜로가 무서워서 거짓말을 하곤 했어요. 지금도 아이들이 저를 비웃을까 봐 거짓말을 가끔 해요. 거짓말이 나쁘다는 걸 알지만 전 그걸 잊어버려요.” 

네트는 자신이 한 거짓말로 의기소침해져 바에르 교수를 쳐다보았다. 

   “나도 어렸을 때 거짓말을 했단다! 세상에! 사소한 거짓말이긴 했지. 할머니가 내 거짓말을 어떻게 고쳐 주셨는지 아니? 부모님은 타이르기도 하고 소리도 치고 벌까지 주셨는데도 나도 너처럼 잊어버렸어. 그러고 나서 사랑하는 할머니가 말씀하셨어. ‘네가 기억할 수 있도록 내가 도와주마. 제멋대로 구는 네 몸 한 부분에 표시해야겠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내 혀를 잡아당기더니 가위로 내 혀끝을 살짝 베신 거야. 혀에서 피가 났단다. 아주 끔찍했어. 믿을 수 없겠지만 그 일은 효과가 있었어. 며칠 동안이나 혀가 따끔거렸지. 그래서 나는 내가 하는 말을 전부 천천히 할 수밖에 없었고 덕분에 생각할 시간이 생겼어. 그 이후 나는 무척 조심했고 좋아졌단다. 그 큰 가위가 너무 무서웠거든. 할머니는 모든 일에는 나한테 다정하셨어. 멀리 뉘른베르크에서 임종의 순간을 맞이할 때도 할머니는 어린 프리츠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진실만을 말하도록 기도하셨어.”

   “저는 한 번도 할머니를 본 적이 없어요. 그렇게 해서 내 버릇이 고쳐진다고 생각하시면 네 혀를 베셔도 좋아요.” 

네트는 아플까 봐 두렵긴 했지만, 거짓말을 하지 않길 바라면서 용감하게 외쳤다.

  바에르 교수는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더 좋은 방법이 있단다. 전에 한 번 해봤는데 효과가 좋았어. 들어봐라, 네가 거짓말을 하면 벌을 주지 않을 거다. 대신 네가 나를 벌줘야 한다.”

  “어떻게요?” 

네트가 그 방법을 듣고 깜짝 놀라면서 물었다.

  “옛날 방식이긴 하지만 괜찮은 방법이야. 매로 나를 때려서 벌주는 거다. 나는 직접 때리지는 않지만 네가 맞을 때보다 나를 때릴 때 너는 그 고통을 더 잘 기억할 거다.”

  “선생님을 때리라고요? 세상에, 그럴 수 없어요!” 

네트는 소리쳤다.

  “그렇다면 너의 그 가벼운 혀를 조심해라. 나도 아프기 싫단다. 하지만 너의 결점을 고칠 수 있다면 아픈 것쯤이야 얼마든지 기쁘게 참을 수 있다.”

  이 제안은 네트의 뇌리에 강하게 박혔다. 한동안 네트는 자신의 입술에 보초를 세우고 필사적으로 진실만을 말했다. 바에르 교수의 판단이 옳았다. 네트에게는 벌 받는 두려움보다 바에르 교수에 대한 사랑이 더 컸다. 하지만 아! 어느 슬픈 날 네트의 보호막이 떨어졌다. 성깔 있는 에밀이 네트가 자신의 텃밭을 넘어 달려서 가장 잘 자라던 옥수수밭을 망쳤다며 때리겠다고 위협했다. 네트는 분명하게 자기가 아니라고 거짓말을 했지만 전날 밤 잭이 쫓아오는 바람에 텃밭으로 도망가느라 그 일을 저질렀다고 인정하지 못한 점이 부끄러웠다.

  네트는 아무도 모르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토미가 우연히 그 광경을 보았다. 하루 이틀 뒤 에밀이 그 이야기를 꺼내자 토미가 고자질을 했고 바에르 교수가 그 말을 듣고 말았다. 수업이 끝나 모두 복도 주위를 서성거리고 있었고 바에르 교수는 짚으로 만든 긴 안락의자에 앉아 테드와 장난을 막 시작했던 참이었다. 바에르 교수가 토미의 말을 듣고 네트를 보았다. 네트는 얼굴이 시뻘게져서 겁먹은 표정으로 바에르 교수를 마주 쳐다보았다. 

  “엄마한테 가렴. 아가야, 아빠도 곧 갈게.” 

바에르 교수는 테드에게 말했다. 그리고 손으로 네트를 잡고 교실로 데리고 들어가 문을 닫았다.

  소년들은 잠깐 서로 말없이 쳐다보았다. 토미가 슬며시 들어가 반쯤 열린 블라인드 너머로 안을 엿보았다. 토미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바에르 교수는 자신의 책상 위에 걸려 있던 긴 자를 막 꺼내서 내렸다. 거의 사용하지 않아서 자에 먼지가 수북했다. 

  “세상에! 교수님께서 이번에는 네트를 정말 심하게 벌하실 모양이야. 말하지 말 걸 그랬어.” 

마음이 여린 토미는 후회했다. 이 학교에서 매를 맞는 벌은 가장 심한 불명예로 여겨졌다. 

  “내가 지난번에 말한 거 기억하지?” 

바에르 교수는 물었다. 화났다기보다 슬퍼 보였다. 

  “네. 하지만 그러지 않게 해 주세요. 저는 정말 할 수 없어요.” 

네트가 울면서 두 손을 뒤로 한 채 문 쪽으로 뒷걸음쳤다.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남자처럼 매를 맞지 그래? 나 같으면 그럴 텐데.’ 바에르 교수와 네트를 보며 심장은 빠르게 뛰면서도 토미는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약속을 지켜야겠다. 너는 거짓말을 하지 않기로 한 약속을 기억해야지. 내 말을 들어라. 네트, 자를 받아서 나를 여섯 대 아주 세게 때려라.” 

  토미는 바에르 교수의 마지막 말에 충격을 크게 받아서 거의 굴러 떨어질 뻔했다. 그는 간신히 창문 턱에 매달려 벽난로 위 선반에 있는 봉제 올빼미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네트는 자를 들었다. 바에르 교수가 그런 목소리로 말할 때는 누구라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네트는 하인이 자신의 주인을 막 칼로 찌르려는 그런 공포와 죄책감으로 교수를 바라보았다. 바에르 교수가 내민 넓은 손을 아주 약하게 두 대 때렸다. 그런 다음 멈추고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교수를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바에르 교수는 단호했다.

  “계속해라. 더 세게 때려라.”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네트는 이 힘든 일이 빨리 끝나기를 간절히 바랐다. 네트는 소매로 눈물을 닦고 좀 더 빠르고 세게 두 대를 더 때렸다. 교수의 손이 빨개졌고 네트의 마음은 더욱 아팠다.

  “그만하면 안 돼요?” 

네트는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이 북받쳐서 애원했다.

  “두 대 더 때려라.” 

이 말이 전부였다. 네트는 차마 쳐다보지도 못하고 두 대를 더 때렸다. 그러고는 자를 교실 바닥에 던지듯 떨어뜨렸다. 네트는 자신의 손으로 친절한 교수의 손을 감싸고 사랑과 수치와 후회의 감정에 뒤섞인 채 흐느끼며 고개를 떨구었다.

  “이젠 절대 잊지 않을게요! 정말이에요!”

  바에르 교수는 네트의 어깨를 감싸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연민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럴 거야. 주님께 너를 도와주고 우리 둘에게 이런 일이 다시 생기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렴.”

  토미는 더 보지 않고 살금살금 복도로 나갔다. 소년들은 심각하면서도 흥분돼 보이는 토미 주위로 몰려들어 네트가 무슨 벌을 받았는지 물었다. 토미는 이야기를 잘 전달하려고 인상 깊은 어조로 속삭였다. 아이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 놀랐다. 때리는 사람과 맞는 사람을 바꿨다는 말에 거의 숨을 쉴 수 없었다.

  “언젠가 한 번 외삼촌이 나한테도 같은 일을 시킨 적이 있어.” 

에밀은 처참하게 저지른 범죄를 고백하듯 말했다.

  “그래서 때렸니? 사랑하는 바에르 교수님을 때렸다는 거야? 이런 제기랄, 어디 한 번 여기서 해보시지!” 

네드는 분을 참지 못하고 에밀의 멱살을 잡으며 화를 냈다. 

  “오래전 일이야. 지금 그 일을 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아.” 

에밀은 맞서서 때리는 대신 네드를 가볍게 바닥에 눕혔다. 지금은 싸움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느낀 모양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데미는 생각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했다.

  “나는 그때 정말 화가 나 있어서 외삼촌을 때리는 일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어. 어쩌면 차라리 때리고 싶었는지도 몰라. 그런데 아프게 한 대 때리고 나니까 외삼촌이 나를 위해 하신 일들이 전부 생각나는 거야. 계속 때릴 수가 없었어, 결코! 외삼촌이 나를 바닥에 눕히고 짓밟는다고 해도 가만히 있었을 거야. 내가 너무 못됐다는 생각이 들었어.” 

에밀은 과거를 후회한다는 듯 자신의 가슴을 쿵쿵 쳤다.

  “네트가 엄청나게 울고 있어. 미안해서 어찌할 줄 모를 거야. 그러니 우리 네트에게 이번 일에 대해서 한마디도 하지 말자, 어때?” 

착한 토미가 의견을 모았다.

  “물론이지. 하지만 거짓말하는 건 끔찍해.” 

데미는 잘못한 사람이 벌을 받은 게 아니라 제일 소중한 이모부가 벌을 받았다는 점이 더 끔찍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했다.

  “우리가 모두 여기서 나가면 네트가 2층으로 편하게 올라갈 수 있겠지.” 

프란츠가 의견을 냈다. 그리고 어려운 시간에 그들의 피난처가 되어주는 헛간으로 앞장섰다. 

  네트는 저녁을 먹으러 오지 않았다. 대신 조가 음식을 좀 가져다주었다. 조는 상냥하게 위로했다. 네트는 고개를 들 수는 없었지만 조의 위로를 받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밖에서 놀던 아이들이 곧 바이올린 소리를 듣고 자기들끼리 말을 주고받았다. 

  “이젠 괜찮은가 봐.” 

네트는 기분이 나아졌다. 하지만 아래층으로 내려가기에는 부끄러워서 숲 속으로 살그머니 사라지려고 했다. 문을 열자 데이지가 계단에 앉아 있었다. 바느질도 하지 않고 인형을 가지고 놀지도 않았다. 손에 작은 손수건을 들고 있을 뿐이었다. 자신의 친구가 방에 갇혀서 슬퍼하고 있었던 듯했다. 

  “산책 갈 건데, 같이 갈래?” 

네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쳐다보면서 물었다. 하지만 데이지가 아무 말 않고 동정해 주어서 고마웠다. 모두 분명히 자신을 비열하게 여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응, 갈래!” 

데이지가 재빠르게 가서 자신의 모자를 가져왔다. 나이 많은 오빠가 자신을 친구처럼 대해서 마음이 뿌듯했다. 

  다른 아이들은 그들이 산책하러 나가는 걸 보았지만 아무도 따라가지 않았다. 소년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섬세해서 이런 수치스러운 일에는 어리지만 다정한 데이지가 가장 마음 통하는 친구임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산책으로 네트는 기분이 좋아졌다. 평소보다 조용히 집으로 들어갔지만, 명랑해 보였다. 잔디에 누워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동안 작은 친구가 만든 데이지 화환을 여기저기 걸고 있었다.

  누구도 아침 일에 대해 입도 벙긋하지 않았지만 네트에게는 더 효과가 있었다. 네트는 최선을 다해 노력했고 큰 도움을 받았다. 하늘에 계신 친구 주님께 진심으로 기도한 덕분이었다. 여기 이 땅에 있는 친구 바에르 교수가 인내하고 배려한 덕분이기도 했다. 자신을 위해 고통을 기꺼이 참아준 사실을 기억하지 않고서는 친구의 친절한 손을 절대로 잡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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