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과 함께 지낸다는 것은.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사진 찍으며 쓰는 글-12

by egong

나는 사람 이외의 생물을 그렇게 깊게 바라보고 있던 적이 없다.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릴 적 토끼를 키운 적이 있다. 물론 여기서 키웠다는 말은 어머니가 키웠고 나는 구경했다. 라는 걸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내 기억 속의 토끼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동물에 속한다. 뭐랄까. 밥을 오래 줘도 밥 주는 다른 사람에게 가면 나를 못 알아본다는 느낌이랄까. 그래도 토끼는 엄청 귀엽다. 다만 그 당시 두 마리의 토끼 중 한 마리는 우리 집 베란다에서 죽었고, 그 한 친구가 죽어서 우리가 엄청나게 슬퍼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머지 한 마리는 산속의 토끼 농장에 줬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릴 적 내가 아토피가 있어서 힘들게 키웠던 토끼지만 이후로 부모님도, 나도 동물을 키우지 않았다.



지금 나는 피렌체에서 아메리칸 코카스파니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강아지 한 마리와 지낸다. 물론 이 ‘아메리칸’, ’잉글리쉬’로 나뉜다는 것도 지내면서 처음 알았다. 그저 내가 모든 붉은색을 빨강으로 불렀던 것처럼 말이다.


이 친구는 아주 글로벌 하게 돌아다녔다. 제주도에서 발견되어, 견주님이 피렌체로 데려오셨다. 그리고 최근에는 미국 10개 주를 여행하고 다시 서울과 부산을 찍고 다시 피렌체로 돌아왔다.


주인을 잘 만난 착한 친구다. 나도 아직 미국을 가지 못했는데 말이다.


약 총 기간 두 달 정도의 짧은 기간을 붙어 지내본 결과, ‘개’라는 종을 넘어서 그냥 자신 이외의 다른 생물을 하나 더 데리고 살고, 다닌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정말 이게 사랑이 아닌가. 집에 사람 이외의 생물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모두 공감하지 않을까 한다. (불가피하게 같이 사는 곤충과 절지동물은 제외. 물론 같이 산다면 대단하다)


일단 이탈리아는 동물을 키우는 것, 그중에서도 개를 키우는 것에 대해서 아주 좋은 인식을 하고 있다. 어떤 식이나 하면, 사람들이 외출할 때 기본적으로 자신의 개를 데리고 나온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어떤 가게나 식당, 마트 등 어디를 가도 개가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산책을 정말 자주 나오다 보니(내 생각에 강아지들이 귀찮아할 정도로) 밖에서 정말 조용하고 착하다. 길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개를 예뻐하고 좋아하며, 식당에 개를 데려가면 종업원이 개가 마실 물과 물통을 가져온다. 놀랍지 않은가. 그야말로 동물을 키운다면 이곳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집에 사는 이 친구는 아주 조용한 친구다. 정말 착하고 귀엽다. 애교가 넘치고 말이다. 여느 강아지들이 그렇듯이 간식을 좀 먹고 나서는 사료를 편식하고, 사람들 옆에 와서 다리에 얼굴을 올려서 귀여운 얼굴로 그 사람을 쳐다본다. 장난감은 그렇게 좋아하진 않지만, 플라스틱 물병을 던져주면 아주 잘 가지고 논다. 물어오진 않는다. 앉아. 손. 기다려. 짝. 등 간단한 말도 잘 알아듣는다. 주인과 나랑 같이 집에 있다가 주인만 밖에 나갈 일이 있어 나랑 남아있게 되는 일이 있다. 그러면 항상 문 앞에 앉아서 주인이 돌아오길 기다리다가 잔다. 한 번씩은 내가 앉아있는 곳 옆에 와서 졸고 있다.


아주 귀여운 포인트가 더 있다. 이제 잘 시간이 되어 침대로 향하면 꼭 자기 몸을 내 몸에 붙인다. 살짝 떨어지면 조금씩 다가온다. 물론 깊은 잠에 빠지면 모르긴 하더라.


개를 키운다는 것이 참 힘들다는 걸 알았다. 집에서 항상 밥과 배변 활동을 신경 쓰고 혹시 이상한 것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주의해야 한다. 매일 한 번 이상의 산책 이후에는 발을 씻기고, 일주일 정도에 한 번씩 목욕을 시킨다. 털이 잘 빠지기에 옷이 털로 뒤 덥히기 전에 털을 밀어줘야 하고, 양치를 시켜줘야 한다. 어디가 아프진 않은지 항상 신경 쓴다. 코카스파니엘은 귓병이 잘 나기 때문에 귀 세척도 주기적으로 해준다. 뭔가 주지도 않았는데 입에서 무언 갈 먹고 있는 것 같다면 또 입을 열어서 확인해봐야 한다. 밖을 나가서는 항상 어디서 다치진 않을지, 차도로 튀어 나가진 않을지 걱정한다. 앞에서 다가오는 개한테 달려가진 않을지도 말이다.


내가 아이를 키워보진 않았지만, 정말 이게 아이를 키우는 것과 같은 일이지 않은가. 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 귀엽고 사랑스러운 자태를 본다면 위에서 말한 것이 순간은 귀찮을지언정 그저 그 모든 행위는 사랑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아직도 강렬한 주황색의 일몰 빛이 들어오던 순간 내가 사랑하는 집주인과 이 사랑스러운 친구가 소파에 앉아 있던 모습을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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