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의 생일에게

생일축하해, 그리고 널 응원해

by 이공계 문과

참 멀리도 왔다고 생각한다. 벌써 십의 자리 수가 2로 넘어가는 문턱까지 왔으니까. 그만큼 나와 오래 함께했다는 걸까? 내가 이제 예측이 가는 수준이 되었다. 무슨 반응을 할지, 어떤 생각을 할지, 뭘 하고 싶어 할지. 이렇게 단조로운 사람이 되는게 아닐까 사소한 생각을 한다.


지난 순간들 중에서 분명 슬픈 일도 있었을 것이고 기쁜 일도 있었겠지만, 그보다 묵묵히 걸어왔던 시간들이 나를 더 돌아보게 한다. 오밤중에 학원이 끝나면 들이켰던 찬 밤공기부터 새벽 6시 20분의 차가운 방바닥, 숨가쁘게 달렸던 울퉁불퉁한 아스팔트 도로가 나에게 말을 건다. 나, 열심히 살았다고.


꿈을 크게 가지라는 말이 있다. 사실 지금 들어도 잘 모르겠다. 꿈이 큰 것과 내 도착지에 무슨 관련이 있는지, 내가 그만큼의 역량이 있는지 어떻게 깨달아야 하는 것인지. 꿈을 가져야겠다고 의식적으로 생각했던 적이 별로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주변 사람들을 보며 미묘한 부러움을 느꼈던 것 같다. 목표 지점은 없는데 열심히 가고 있는 것이, 이상하리만치 이질적이지만 안정적이었다.


어느새 뭔가가 이뤄져 있었다. 왜 그런건지 모른다. 이 글을 내가 진짜 쓴게 맞는지, 면접 문제를 내가 푼건 맞는지, 왜 대학이 좋아한건지 모르겠다. 닿지 못할 것 같을 땐 그토록 멀어 보이더니 이젠 어디를 보고 '멀다'고 느껴야 할지 모르겠다.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와 같은지도 솔직히 말해서 잘 모르겠다. 같음을 증명해주는 것은 내가 기억하는, 모든 것이 휘몰아치던 시절의 실낱같은 기억 뿐이다.


블로그를 하는 이유도,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도 같다. 정신없이 지나 왔던 그때를 명확하게 보기 위해서 글을 쓴다. 무엇을 생각했는지, 무엇이 좋았는지, 슬픈 일이 있을 때도, 기쁜 일이 있을 때도 남겼던 기록들이 내 세포 하나 하나를 채워간다. 그 세포로 하여금, 나는 새로 만들어지고 자란다. 하나 하나의 기능을 가진 채로 내 정신과 마음 속의 어떤 기능을 담당하며 묵묵히, 굴러가는 구조가 갖춰질때까지.


이전의 내가 그랬듯,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다. 새로운 장소, 새로운 사람, 새로운 책, 기차, 일과, 시간표, 전공 수업.... 머리가 터질 것 같으면서도 '설렌다'는 느낌이 드는 것을 강렬하게 느낀다. 뭔가 달라졌다는 것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내가 기억하는 때 까지만 해도 시작이 마냥 두렵기만 했는데, 이젠 올게 왔다는 느낌이 든다. 아직 자라지 않았다고, 시작이 생소하다고 생각했던 열여덟의 나에게, 좀만 더 기다리면 된다고 전해 주고 싶다. 별의 별 일을 다 겪을 것이라고.


스물을 마주한 나는 어떤 사람일까? 어떤 사람이 될지, 누구와 친할지는 모르지만 이것 하나는 알 것 같다. 절대 내가 지나온 시간들을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최선의 선택을 해 왔고, 또 최선을 다했을 거니까.


케이크에 촛불을 붙이는 것 처럼, 마지막 문장을 쓴다. 생일축하해. 네 앞길이 무엇보다 찬란하기를.



2026년 1월 6일

밤이 유달리 검은 겨울의 중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