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전원일기] 너도 우리 동네사람이다

by 그스막골

충분히 머리로도 이해했고 시뮬레이션도 했다고 생각했지만 소용없었다. 커피 한 잔 들고 마당에서 한가하게 어슬렁 거리고 있는데 멀리서 SUV 한 대가 올라오는 게 보였다. 시골길 드라이브에 나섰다가 우리 집이 막다른 길인줄 모르고 들어서는 경우가 가끔 있다. 당연히 뒷 산 너머로 길이 연결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길이 갑자기 끝나버리고 집 한 채가 덩그러니 나타나면 잠시 주춤하다가도 마당에서 차를 돌려 나가곤 한다. 이번에도 누가 또 길을 잘 못 들어왔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이 차가 망설임 없이 마당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대낮이지만 막다른 집이다. 여기선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동네에 기별도 안 간다는 사실이 다시 머리를 스쳤다. 커피잔을 든 손에 힘이 들어갔지만 태연한 척 서서 지켜보고 있는데 이제 차까지 세우고 중년의 남성 둘이 내리자 나는 비명을 지르고 싶은 심정이 됐다. 아마 속으로는 열 번도 더 소리를 질렀으리라.


나는 반사적으로 “안녕하세요”라고 웃으며 다가갔다. 내가 인사를 건네자 그제야 이장님이 얼굴을 돌려 나를 보시며 한 마디를 던지셨다.

“이~. 이거 받어. 동네에서 나눠주는 거여.”

“네. 고맙습니다.”

“그려~ 동상. 나는 가네.”

“아!”


나는 커피 한 잔 드시고 가란 소리도 못 하고 차를 놓쳐 버렸다. 나도 이 동네 사람이라는 뜻인가. ‘의원님’이라고 불릴 때보다 ‘동상’이라는 호칭에 기분이 간질간질했다.


동계에서 나온 안건 중에 코로나19로 마을 쉼터(경로당)를 오랫동안 닫아두면서 노인회에 지원한 경비가 남았다고 그걸 어떻게 사용할지 정할 거라고 했던 게 기억났다. 다른 마을에서는 곧 설이니 방앗간에서 가래떡을 해서 나눈 경우도 있다. 그걸 노인회에서만 돌린 경우도 있던데 우리 마을은 동네 전체에 나눠주기로 했던 모양이다.

사실 이 동네는 친척들이 많이 모여 산다. 부모님도 계시고 이장님도 집안 오빠뻘이고 대부분 동네 어른도 다 알지만 그런 걸로 넘어갈 순 없다. 우리 부부는 정식으로 동네에 이사 들어왔다고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우리가 며칟날 얼마의 돈을 냈는지도 이장님을 통해서 보고가 됐다. 사실 우리가 낸 돈만 보고 된 것은 아니다. 1

년 동안 마을의 살림살이와 행사 내용, 행사에 봉사한 사람과 찬조한 내용 등이 전부 보고 내용이었다.


회의가 끝나고 나서는 부녀회에서 준비한 음식들로 작은 잔치가 열렸다. 나이가 마흔이 넘었지만, 우리가 동네에서 가장 젊은 부부라 할머니들이 ‘아유~ 애기네~’라며 예뻐해 주셨다.




동계란?

‘동계’ 또는 ‘대동계’라고 부른다. 농한기에 동네 사람들이 모여 한 해 마을의 운영실태를 보고하고 개선할 것에 관해 이야기한다. 내년 일정까지 확인하고 나면 그 해에 특히 공로가 많은 사람에게 상을 주기도 하는 등 큰 행사다.

또한 동계가 있는 날은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잔치를 벌인다. 이런 행사를 통해 어른들을 모시는 것뿐만이 아니라 동네에 굶는 사람이 없는지 도움이 필요한 집이 없는지 자연스럽게 챙기는 계기가 된다.

코로나19로 잔치를 못 할 때도 시골 마을에서는 떡이라도 해서 집마다 나눠주며 안부를 살폈다.

돈계‘동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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