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들이 안 할 거야?”
“뭐? 집들이? 안 할 건데. 여기 멀어서 사람들 오기도 불편해. “
“아니 네 친구들 말고. 동네에 인사해야지. “
“인사? 그런 것도 해야 해? 배달되는 것도 없는데 내가 집에서 어떻게 해. 동네 사람이 몇인데?”
대가족의 맏며느리인 엄마는 시집온 순간부터 평생 손님을 치렀던 사람이다. 그렇지만 나는 아니었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내 입에 들어가는 밥 해 먹는 것도 귀찮은 사람이었다. 기대도 안 했던 대답이었는지 이미 엄마는 대안을 가지고 있었다.
“다음 주에 할 거니까 그렇게 알아.”
“엄마!”
“내가 할 거니까 넌 그날 일 만들지 말고 집에 있기나 해.”
이미 부모님들끼리 이야기가 끝났다는 건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았다.
집들이 당일 엄마는 새벽부터 진두지휘를 시작했다. 사실 나는 우리집 집들이 소식을 전해 준 엄마에게 모든 권한을 넘겼다. 몇 명이나 모이는지 묻지도 않았으나 동네사람 반은 다녀간 거 같았다.
“인사드려. 이장님이랑 사모님이야. 알지?”
“안녕하세요.”
“인사드려. 의용소방대 대장님이랑 사모님. 아니 뭘 이런 걸 가지고 왔어”
“감사합니다.”
“아이고. 노인회장님 오셨네. 아니 뭘 또 이렇게 만들어왔어. 사모님이 빵도 잘 구우신다. “
“안녕하세요. 잘 먹을게요. 감사합니다.”
“이 분은 00이 외할머니. 이모할머니랑 놀러 오셨데. “
“안녕하세요.”
방금 소개를 받았지만 누가 누구인지는 기억할 수 없었다. 손바닥만 한 동네에 무슨 장도 많고 밥상이 남녀로 갈라지니 누구누구가 부부인지 짝도 맞춰지지 않았다. 그저 명절 전 날처럼 손님이 오시면 술상을 내가고 인사를 하고 미소를 띠고 다시 부엌으로 도망을 왔다. 대신 내게는 구원투수인 남편이 있었다. 술이 얼큰한 남자 어른들이 안방에서 새 상을 내오라고 하면 얼른 나서서 빼앗아 나르고 술병도 알아서 걷어다 주니 부엌에 옹기종기 모여있던 여자 어른들에게는 이미 아이돌급이었다. 모든 이야기 꽃은 동네에서 제일 젊은 남편을 중심으로 피어났다. 나는 이렇게 사람들의 모든 시선을 가져가 주는 남편이 너무 고마웠다. 엄마도 도통 살림에 관심 없는 딸보다 싹싹한 사위 칭찬으로 이야기가 넘어가는 것을 다행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그날 집들이를 하고 끝이 아니었다. 기분이 좋아진 동네 어른들이 몇 가지 새로운 일정을 통보하셨다. 12월에 마을 동계가 있으니 거기 와서 오늘 못 온 어른들에게 인사드릴 것. 마을에 백만 원을 낼 것. 이장님이 마을방송하는데 나와 남편의 전화번호도 포함시킬 것. 말로 딱 부러지게 설명할 순 없지만 우리 부부가 첫 관문을 통과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면사무소에서 하는 전입신고는 진짜 동네 사람으로 받아들여지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괜히 아까운 마음이 들기 전에 얼른 백만 원을 이체해드렸다. 만약 내가 시의원을 하면서 시골 동네마다 다녀보지 않았다면 이 돈에 대해 오만가지 생각을 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오해도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