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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스막골 Oct 27. 2023

지극히 사적인 리뷰 "페리시아인들"

다스딩소사이어티에서 함돈균 작가의 그리고 고전 비극 강의를 듣고 있다. 어릴 때 만화책으로 보면서 도무지 신 같지 않은 신들을 보며 어이없어하던 기억밖에 없어서 그 후로도 그리스 신화라거나 그쪽 고전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이래서 계기가 중요하다고 하지. 이 강의를 하는 사람 때문에 '아이스퀼로스 비극 전집(옮긴이 천병희)'을 샀다. 이건 개인적인 성향인데 나는 잘 모르지만 궁금한 분야가 생기면 우선 그 분야 전문가를 찾는다. 다음엔 그중에서 내 기준으로 신뢰할 만한 사람을 찾는다. 그걸 위해 만날 수 있으면 만나고(여러 번) 그 사람의 SNS를 읽고 천천히 사람을 어느 정도 알 때까지 본다. 사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인데 그 지식의 깊이까지 판단한다는 건 어불성설이고 중요한 건 그 사람이 그 일을 대하는 방식을 보는 것 같다. 이건 좀 복잡한 이야기라 다음에 하고......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페르시아인들'은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왕이 그리스와의 전쟁에서 대패, 거의 몰살을 당하고 그 소식을 전령이 고국으로 돌아와 전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어떻게 전투에서 졌는지를 생생히 전하며 전장에서 스러진 귀한 목숨들을 하나하나 호명한다. 그러나 내가 꽂힌 건 엉뚱한 부분이었다.

 

739행

다레이오스(크세르크세스 왕의 아버지, 위대한 왕, 이미 죽었으나 귀신으로 돌아와 부인과 슬픔을 나누는 중) 아아, 예언이 빨리도 실현되어, 제우스께서 내 아들에게 예언의 실현이라는 벼락을 던지셨구나.

...

아톳사(크세르크세스 왕의 어머니이자 생존해 있는 다레이오스 왕의 부인) 담찬 크세르크세스는 못된 자들과 사귀다 그렇게 배우게 된 것이지요. 그자들의 말인즉, 당신은 창으로 큰 재산을 모아 자식들에게 물려주었으나 그 애는 비겁하게도 집 안에서나 창을 휘두르며, 아버지의 유산을 전혀 늘리지 못했다는 거예요. 못된 자들의 입에서 그런 비난을 듣게 되자 그 애는 헬라스로 원정을 떠나기로 결심했던 거예요.

...


아무리 위대한 왕이라도 자식 일에는 범부와 똑같다고는 하지만 무리한 전쟁을 벌였다가 자기의 국민들을 사지로 내몬 자식의 일을 두고 아버지는 신의 탓, 어머니는 나쁜 친구 탓을 하며 자기 자식은 피해자처럼 이야기하다니.


어제 강의의 제는 '우리 시대(미래)의 영웅, 비극적 숭고, 숭고한 도약에 관한 예시는 어떤 게 있을까?

 <페르시아인>에서 보는 것 같은 오만(hubris) 미망(ate)에 관해 대화나누기'였는데 나는 그저 힘을 가진 자들이 정말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전쟁을 일으키고 변명을 하고 운을 탓하고 자기는 살아 돌아오는데 질려버려서 강의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의 그런 마음도 표현했다. 이것 역시 나의 개인적인 감상이니까.


그러나 돌아가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듣고, 내가 생각하지 못 한 시각, 특히 이 이야기를 쓴 아이스퀼로스가 전쟁에 참여했던 그리스 장군 출신이라는 것을 듣고 나니 생각이 많아졌다. 우리로 치면 임진왜란에서 이순신 장국에게 대패하고 돌아간 일본인의 관점으로 한국인이 만든 이야기로 한국에서 공연하고 한국인들이 그걸 보며 공감하고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니까. '과연 그게 현실이 된다면 우린 순수하게 전쟁의 참상과 아픔을 일본인의 입장에서 함께 울어줄 수 있을까?과연 그 작가는 어떤 의도로 이 작품을 쓰고 무엇을 전하고 싶었을까?내가 이렇게 한마디로 비웃고 넘겨도 되는 걸까?'

 

그 외에도 내 질문은 계속 도발적이었다. 오만이든 미망이든 실패했기에 결과만 가지고 네가 오만해서 미망에 빠져 실패한 거라고 하는 거 아니냐. 신에게 도전하며 혁신이 이루어지고 발전을 하고 이기면 원대한 꿈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거 아니냐라는 말도 했다. 그에 대해 함작가님이 한 말은 딱 하나였다 '물론 그렇게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비극은 그 비극에서 우리가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읽는 것이다.'

 

이 대답이 그때부터 내 머릿속을 꽉 채워버렸다. "인간이 어리석고 힘을 가진 자들의 분별없는 짓으로 결국 희생당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역사는 또 반복될 테지만, 정말 그것뿐이라면 나는 왜 돈까지 내며 이 강의를 듣고 이 책을 읽고 있는 거지? 결국 인간의 어리석고 세상은 변하지 않을 거라면 지금 이 시간들이 다 무슨 소용이야? 그런데 정말 그래? 인간은 구제불능이야? 우린 오만과 미망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어? 그런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해? 자기 손으로 일을 다 망쳐버리고 세상에 해를 끼치기 전에 어떻게 알 수 있어?

.

.

.

그걸 알려고 지금 나는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있구나. 사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구나."


내가 왜 화가 났는지를 인정하고 나니 이제야 크세르크세스가 해야 했던 일을 알 수가 있었다. 위대한 왕을 둔 아들로서 자신도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 싶었던 마음, 자존심을 건드리며 부추기고 핑크빛 미래만 보여주며 뒤로는 혹시나 성공했을 때 자신이 챙길 이득을 계산했을 주변인들. 그동안의 성공에 해이한 마음으로 헛된 예측을 하거나 옳은 소리를 하기를 포기한 가신들.


이런 일들은 오늘도 매일매일 뉴스에 단골로 방송되고, 개인사에서도 무수히 겪는 일이다. 권력을 가지고 힘을 가졌을 때 그걸 쓰지 않는 게 때로는 더 용기 있는 결정이라는 것을 자신의 신념으로 지키고 온갖 유혹을 물리치는 건 인간이기에 쉽지 않지만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가 충분히 그런 능력이 있다는 걸 잊지 않고, 그런 마음을 가지려노력하는 사람들이 또 있다는 것으로 응원을 받기 위해 우린 전국에서 온라인으로 이 밤에 이렇게 모인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나니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크세르크세스가 비참한 모습으로 돌아와 한 명 한 명 전우들을 호명하며 후회하고 눈물 흘리는 모습이 가여워졌다.


나의 반성과 미움을 고백하고 이 시간에 감사를 표하고 나니 함작가님이 마지막으로 덧붙여준 말이 있는데 오래 기억해야 할 거 같아서 기록으로 남긴다.


"... 저 고대의 바다에 떠다니는 페르시아의 영혼들과 이 시대의.. 영혼들이 다르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인간이 위대하기도, 가엾기도 합니다.


문학의 마음ㆍ시점은 무엇일까요.


'사랑'이라고 하고 싶어요.

탐구하지만, 단죄하지는 않습니다. 문학이 제일 싫어하는 것은 율법주의 같아요.


평안한 밤 되십시오."


탐구하지만 단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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