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 am a stem cell Mar 17. 2018

한 우물만 파야 성공? 아니오 여러 우물을 팔래요

에밀리 와프닉 <모든 것이 되는 법>

“이 책은 하나의 집중 대상을 선택하고 나머지 다른 관심사들은 포기해야 하는, 그런 상황을 원치 않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아울러 새로운 것을 배우고 창조하며 여러 정체성 사이를 오고가는 데서 기쁨을 찾는, 별난 사람들을 위한 책이기도 하다.”(10쪽)


에밀리 와프닉이 쓴 <모든 것이 되는 법>이 누구를 위한 책인지는 위 두 문장에 아주 명확하게 나와 있습니다. 세상에 흥미로운 일들이 너무 많아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기 어려운 사람들, 과연 내게 적성이라는 게 있을까 의심스러운 사람들, 뭔가 하나를 꾸준히 할 수 없어서 종종 좌절했던 사람들에게 이 책은 큰 용기를 줄 것입니다.

어린 시절 어른들로부터 흔히 들었던 ‘커서 뭐가 되고 싶니?’, ‘누구누구는 꿈이 뭐야?’라는 물음에는 뭔가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습니다. 저 역시 아이들에게 똑같이 묻기도 했습니다. 이런 질문에는 이번 생애에서 허용된 정체성은 하나뿐이니 너에게 꼭 맞는 일을 찾으라는 압박이 내포되어 있다는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정말 꼭 맞는 일이란게 있을까요?

그런줄 알았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적성검사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진로를 선택하는게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예전엔 중학교 때 인문계, 실업계(공업고, 상업고) 고교를 선택해야 했고(적성이 아닌 시험 성적으로) 고등학교 때 인문계는 문과 이과로 진로를 정해야 했습니다. 좀 특별한 영역으로 예술고등학교도 있었네요.

내가 선택한 길인 것 같지만 실상은 세상이 정해놓은 틀 안에서 강요된 선택을 해왔던 것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어느 덧 중년에 이르러 삶을 돌아보면 제가 선택한 직업분야는 운좋게 제 적성에 꽤 잘 맞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너는 세상이 안내한 길에 잘 적응했던 것 뿐'이라고 해도 반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정한 것 하나를 꾸준히 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 저는 세상의 틀을 잘 견뎠던 것 뿐입니다.

하지만 저와 같지 않은 사람들을 주변에서 상당히 많이 만납니다. 미술을 전공하다 엔지니어가 된 동료도 있고, 엔지니어인데 연주회, 전시회를 할 정도로 음악과 미술에 조예가 깊은 사람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이들을 보면 과연 어떤 정해진 적성이라는 것이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책의 저자도 인생에서 음악, 미술, 영화, 법학 분야를 거치며 활동해 왔습니다. 에밀리 와프닉은 자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다능인(멀티포텐셜라이트)’이라 정의합니다.

우리 사회에도 다능인들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세상이라는 외부의 정해진 틀 속에서도 삐죽삐죽 솟아나오던 사람들이 그 틀이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이 책을 읽으며 ‘와, 완전히 내 얘기네’라고 맞장구치는 분들이 상당히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자는 다능인으로 살아온 경험을 기반으로 다능인들이 대체로 겪게 되는 직업, 생산성(집중력), 자존감 영역에서의 문제 극복 방안을 공유합니다. 다능인이신가요? 저자의 말을 들어보세요.

“당신은 무언가를 뒤집어보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며, 복잡하고 다차원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세상을 당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더 좋게 만들 사람이라는 것이다. 당신의 운명적 일이 무엇이든, 다능인 기질을 억누르는 동안에는 목표에 다다를 수 없다. 반드시 그 기질을 받아들이고 사용해야만 한다.”(31쪽)

다능인들은 기질 상 다양한 경험과 시각으로 아이디어를 통합할 수 있고, 초보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열정이 있기에 무엇인가를 습득하는 속도가 빠르고, 적응력이 뛰어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하지만 이같은 강점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다능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통찰을 얻기 위해 저자는 ‘스스로 행복하며 경제적으로 안정적이라고 표현하는 수 백명의 다능인들을 설문하고 인터뷰’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성공적인 다능인들은 돈, 의미, 다양성을 제공하는 삶을 설계해왔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저자는 먼저 생존과 예기치 않은 상황 그리고 우선하는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얼만큼의 돈이 필요할 지 명확한 선을 정할 것을 조언합니다. 두 번째로 어떤 활동을 할 때 활력과 기쁨을 느꼈는지 생각해보고 각자의 삶에서 ‘왜’라는 질문을 지속해야 함을 상기시킵니다. 마지막으로 다양성을 추구할 때 압도당하지 않을 정도로 자신만의 균형 지점을 찾을 것을 제안합니다.

“자신의 삶을 지탱해줄 만큼의 돈이 있다면, 우리가 추구하는 활동 중 어떤 것이 수입을 창출하더라도 상관없다. 같은 맥락으로, 단지 돈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도 괜찮다. (중략)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반드시 수익을 낼 필요가 없듯이 꼭 의미가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세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느낄 정도면 충분하다.(65-66쪽)

사실 이 책은 결과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삶을 돌아보며 이야기해준 성과들을 요약해 놓은 것이기에 말하기는 쉽지만 실제로 살아내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이상적인 삶입니다. 이들이 경제적 안정을 얻기 위해, 또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고민하며 때론 좌절하며 분투하며 지내왔을 지에 대한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저자는 이 치열한 과정을 헤쳐나가기 위해 다능인들이 어떻게 일하면 좋을지 네 가지 직업 모델을 제시합니다.

-그룹허그 접근법: 몇 가지 직업 영역을 오가며 많은 역할을 하는 다면적 일이나 사업
-슬래시 접근법: 정기적으로 오갈 수 있는 두 개 이상의 파트타임 일이나 사업
-아인슈타인 접근법: 생계용 풀타임 일이나 사업. 단, 부업으로 열정을 추구할 시간과 에너지를 남길 수 있는
-피닉스 접근법: 단일 분야에서 몇 달 혹은 몇 년간 일한 후 방향을 바꿔 새로운 분야에서 새로운 일 시작



그룹허그 접근법(좌상), 슬래시 접근법(우상), 아인슈타인 접근법(좌하), 피닉스 접근법(좌우) 각 직업 모델에서 돈, 의미, 다양성을 추구하는 방식

평생직장이라는 말은 화석에서나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요즘 이 직업 모델들은 꼭 다능인을 위한 것만은 아닙니다. 정규직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그마저도 고용을 보장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급여도 적고 안정성도 떨어지는 비정규직 노동은 더 만연해집니다. 물론 철밥통이라는 직업군이 여전히 있기는 하나 그 문은 점점 더 비좁아집니다. 가혹한 현실이지만 선택을 해야 합니다. 어짜피 이런 현실이라면 내 안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를 다능인의 기질을 찾아보는 시도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신의 모든 열정 분야를 아우르는 하나의 직업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보수를 받으면서 그 열정 분야들을 탐험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일을 찾는 건 정말로 달콤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당신의 모든 열정을 전부 보수를 받는 일로 만들어야만 한다고 느껴서는 안된다. 우리가 앞서 논의한 대로, 시간이 허락하는 한 순전히 재미를 위해 관심사나 활동에 참여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104쪽)

사회 구성원들이 이와 같이 다양한 시도를 해 볼 수 있는 기반을 정부가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경제적으로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지원을 해 줄 수 있다면 지금도 가혹한 세상에서 좌절하고 있는 사람들, 특히 청년세대들이 자신들의 열정 분야를 탐험하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책에서 저자는 유명한 다능인들의 삶을 기초로 사람들 개인의 역량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때문에 각 다능인 개인들에게 필요한 생산성 혹은 집중력 발휘 기술에 대해서도 상당부분의 조언을 할애했습니다. 저자가 제시한 질문지가 어떻게 집중하고 행동하며 언제 그만둘 때를 결정할 지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저자가 언급한 다능인들을 힘들게 하는 두려움, 불안, 다능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외부의 비판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이는 다능인들뿐 아니라 다능인이 아니어도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문제들이라 생각합니다. 저자는 ‘다재다능함을 지속하며, 번창하고, 탁월함을 세상에 드러내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돈, 의미, 그리고 다양성을 얻는 방법’을 사람들이 알아내기 위해서 개인의 역량 향상과 직업 선택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저는 개인의 노력과 함께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사회의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 안에 숨겨져 있는 다재다능함을 이끌어내고 순전히 재미를 위한 활동이 가능한 장이 마련된다면 사회 공동체 전체에 활력과 기쁨이 일어날 것입니다. 한가지를 선택했다가 실패하면 다시 일어설 수 없는, 생존하기조차 버거운 사회에서 저자가 말한 것처럼 살아가기는 너무 어렵습니다. 기본소득이든 실업수당이든 다능인들의 직업모델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조성된다면 국가 전체가 다양성으로 활력을 띠게 될 것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숨만 붙어 있는 인생에도 의미가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