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터니 호로비츠 <셜록 홈즈 실크하우스의 비밀>
아서 코난 도일이라는 천재 작가에게서 태어나 전세계적 인기를 누리고 있던 셜록 홈즈 이야기는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수많은 책, 영화, 드라마로까지 끊임 없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이것들은 기존의 이야기에 조금씩의 새로운 살을 붙여간 것들이라는 인상을 많이 받았었다. 그렇기에 셜록 홈즈라는 이야기에 더 새로운 무엇인가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서점에서 이 실크하우스의 비밀이라는 책을 봤을 때도 여전히 이런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책의 표지도 새로울 것 없는 평범한 셜록 홈즈 책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막상 책을 읽기 시작해 책의 첫 챕터를 채 다 읽기도 전에 나의 이런 생각은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책의 중반을 넘어서는 책을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한 사건이 이어졌다. 셜록 홈즈의 매력이 진정 화려하게 발산되어 나왔다. 책의 서두에서 소개하고 있는 것처럼 정말 이 이야기는 이전의 셜록 홈즈 이야기중에서도 으뜸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셜록 홈즈의 오랜 친구 왓슨이 작가가 되어 써 내려져가는 이야기 속에서 과거의 셜록 홈즈가 부활했다. 그의 면밀한 관찰과 논리적 추론은 여전히 변함없었으며 오히려 그 능력이 최고조에 이른 듯 했다. 새로운 이야기의 저자는 아서 코난 도일만큼이나 이야기를 흥미롭게 이끈다. 책을 읽는 내내 마치 내가 홈즈와 이야기하고 있는 왓슨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할 정도로 실감났다. 홈즈의 관찰력과 논리적 추론이 어찌나 대단하던지 그와 대화하고 있는 왓슨이 느꼈을 법한 소름끼치는 놀라움을 나역시 동일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미술품 딜러인 카스테어스가 겪은 약간은 평범해 보이는 사건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가 미술품을 매매하면서 경험했던 사건과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의 복잡한 관계들이 호기심을 계속해서 자극했다. 카스테어스는 미술품 매매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인해 미국의 갱단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고 그들이 자신에게 복수하려 한다는 것을 홈즈와 왓슨에게 말한다.
한편, 카스테어스가 말했던 그를 위협하는 것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카스테어스 집을 절도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홈즈는 이 남자를 추적하기 위해 그의 정보원들인 거리의 버려진 아이들 무리를 이용한다. 이제 그 도둑의 정체가 드러나고 사건의 전말이 너무 쉽게 드러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 쯤 사건은 다른방향으로 흐른다. 추적하던 도둑은 죽음을 당하고 셜록 홈즈가 정보원처럼 부리는 거리의 버려진 아이들 중 하나가 실종된다.
이 실종된 아이를 찾기 위해 홈즈와 왓슨은 노력하지만 결국 아이는 주검으로 발견되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유일한 인물인 아이의 누나 역시 사라진다. 홈즈는 이 누나를 찾기 위해 단서들을 찾아가다가 한 아편굴에까지 찾아간다. 그곳에서 홈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에게 공격을 받고 실종된 여자 아이를 살해한 범인으로 몰리게 된다. 결국 홈즈는 이 사건으로 인해 거의 즉결 처분식으로 유죄를 선고 받고 감옥에 갇히게 된다.
홈즈가 이렇게 된 이유는 절대로 손대지 말아야 하는 거대한 조직의 실체를 파헤치려 했기 때문이었다. 실크하우스라는 단서만을 가지고 있는 홈즈와 왓슨, 그리고 책을 읽고 있는 나도 이 조직의 정체가 무엇인지 한 없이 궁금했다. 결국 아주 기발하게 탈옥을 감행한 홈즈는 이 거대 조직의 전말을 보게되는데 이것이 참으로 충격적이었다. 이 실크 하우스라는 곳은 거리의 버려진 아이들을 돌봐주는 척 하면서 그 아이들을 유명 인사들의 성적노리개로 사용하는 모임이었다.
아무리 소설 속의 이야기라지만 그 장면이 상상이 되어 너무나 끔찍했다.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날 것을 우려한 실크하우스 멤버들이 벌인 끔찍한 사건이었다. 충격적이기는 했지만 이 다음에 밝혀진 카스테어스의 아내에 관한 사실은 더욱 놀라웠다. 카스테어스에게 복수를 꿈꾸며 영국으로 왔던 갱단의 두목이 바로 그의 아내였으니 말이다. 전혀 생각지도 예상치도 못했던 이야기의 결말에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책을 덮으며 정말 기발하면서도 충격적인 이야기를 생각해 낸 작가에게 경의를 표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긴장감 충만한 글을 쓸 수 있을까? 작가의 글솜씨에 감탄하며 동시에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생각해본다. 겉으로는 훌륭해 보이고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어두운 모습이 이야기에는 그려졌지만, 이러한 모습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양면성이 아닐까.
마음속 욕망을 일정 부분 억누르며 살아가야만 하는 스스로를 통제해야 하는 인간들이 겪게 되는 일반적인 갈등과 그 선택의 극단적인 모습을 그렸다고 생각한다. 실크하우스라는 미성년 성매매 장소에서 일탈적 쾌락을 추구하는 사회 유력 인사들의 모습 속에서 인간 내면의 욕구 충족이 극단으로 치닫게 되면 이럴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또 그들이 자신들의 치부를 숨기기 위해 행한 잔인한 행동들도 실제 세계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까운 과거에 우리 사회에서도 일어났던 군사 정권 시절 고문, 감금 등을 통한 반대 세력의 제거에서부터 과거 및 현재의 정부들에서 저질러 왔던 각종 이권이 개입된 숨기고 싶은 사건들의 모습이 셜록 홈즈와 왓슨이 마주했던 충격적 모습과 비슷하지 않을까.
자신들의 이익 혹은 미국이란 강대국에 조공을 바치듯 하는 제주 해군부대 설치와 관련된 갈등, 그 갈등을 무력으로 해결하려는 현 정권(이 글은 2012년에 썼다)의 모습에서 실크하우스라는 존재가 폭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야기의 등장 인물들이 자행했던 무자비한 폭력과 억압, 모략 등이 겹쳐져서 분노가 치솟는다.
과연 인간이란 무엇일까? 어떤이는 한 없이 자신을 내어 놓으며 놀랍도록 이타적인 삶을 살아가고, 또 반대로 어떤 이는 다른 사람들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신의 업적, 자신의 행적에 족적을 남기기 위해 지저분할 정도로 집착하기도 한다. 이런 양 극단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대다수의 우리들은 이 양 끝을 시계추와 같이 왔다갔다 오가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인간이란 이러한 두 성향이 끈임 없이 내면에서 충돌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인가? 바라기는 조금이라도 전자의 사람들이 더 많아져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조금은 더 아름답게 변해가면 좋으련만, 오히려 추는 후자쪽으로 더 기울어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