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니스트 헤밍웨이 <파리는 날마다 축제>
학창 시절 문학 필독서 목록에 빠지지 않았던 '노인과 바다',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등의 작가 헤밍웨이를 다시 만났다. 작품을 통해 주관적 인상으로 작가를 체험하기도 하지만 작가가 남긴 기록물들을 통해 조금은 더 객관적으로 작가를 만나는 것도 매력이 있다. 작가에 대해 좀 더 알고 나서 작품을 다시 보게 되면 이전과는 다른 작품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품의 등장인물들에 어느 정도 작가의 모습이 반영되어 있기는 하겠지만 헤밍웨이를 좀 더 가까이 만나보고 싶던 내게 '파리는 날마다 축제'라는 일종의 회고록은 무척이나 반가운 책이었다. 더군다나 헤밍웨이의 작품은 어린 시절 의무감으로 읽었던 것이기에 그에 대한 인상도 너무나 희미해져 있던 차에 이 책을 만났다.
노인과 바다를 통해 내가 가졌던 헤밍웨이의 이미지는 수염이 덥수룩하고 조금 덩치가 있는 나이 든 모습이었다. 나는 헤밍웨이를 거친 세파를 살아내 겉모습은 거칠지만 왠지 모르게 인자할 것만 같은 그런 노인의 모습으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젊은 시절이 어떠했을 지에 대해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내게 이 책은 헤밍웨이의 젊은 날을 만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 책은 헤밍웨이가 노년에 접어들어서 자신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남긴 글들을 그의 사후에 모아 엮은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내겐 무척이나 낯선 혈기왕성한 헤밍웨이가 낭만적인 도시 파리에 머물면서 글을 쓰던 초보 작가 시절의 경험들을 접했다. 멀게만 느껴지던 노벨문학상 수상자 헤밍웨이가 보다 친근하게 다가온다.
낭만과 동의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도시 파리에서 살았던 헤밍웨이의 삶의 흔적들을 조금씩 따라가다 보니 그와 그가 사랑하는(그 당시엔) 아내의 삶 역시 낭만으로 가득 차 보인다. 그곳에서 풍족하지는 못했지만 글쓰는 일을 업으로 삼으며 낭만에 차 살았던 젊은 헤밍웨이를 그려보고 있자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서울 한복판과 너무나 대비되어 약간의 슬픔이 차올랐다.
노년에 자신의 젊은 날을 추억하면서 글을 썼기 때문에 더 그러했을것이라는 생각도 일면 들기도 하지만, 여전히 낭만이 철철 흘러넘치고 있는 파리 시내를 나도 잠시나마 걸어보았던 것을 생각하면 헤밍웨이가 파리에 보내는 찬사는 그리 과장된 것은 아니다. 게다가 그 당시 헤밍웨이가 만나던 스캇 피츠제럴드, 거트루드 스타인 등의 사람들을 떠올려 보면 각각 문학의 역사를 주름잡았던 이들 아니던가. 가난하고 힘겹기는 했지만 헤밍웨이는 젊은 시절 엄청난 축복속에서 보냈다고 생각한다.
헤밍웨이가 남긴 자신의 젊은 시절의 추억들과 함께 이 책의 또 하나의 재미는 헤밍웨이가 머물렀던 장소들을 찾아보는 것이다. 헤밍웨이가 묶었던 숙소, 그가 자주 가던 까페와 식당, 그가 걸었던 거리들, 그가 사람들을 만났던 장소들을 지도에서 찾아보면서 헤밍웨이의 마음을 상상해 보는 재미가 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지금은 없어지기도 하고 많은 변화가 있었겠지만 그의 발걸음을 따라가며 그의 감성을 함께 느껴보려고 하는 데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특히 독서광이었던 헤밍웨이가 즐겨 찾았던 셰익스피어&컴퍼니 서점 이야기는 내게도 무척이나 흥미를 자아낸다. 파리에 가기 전에 이 책을 만났더라면 여행하는 즐거움을 한 가지 더 얻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책이 내게 선사하는 또 하나의 즐거움은 헤밍웨이의 글 뒷 부분에 이어지는 역주와 생생한 사진과 함께 실려 있는 헤밍웨이의 연대기이다. 여러 사진과 연대기를 보니 평생을 글쓰는 사람으로 살았지만 결코 평범한 인생을 살지 않았던 헤밍웨이를 동경하게 된다. 그의 어찌보면 파란 만장한 연애 생활만큼은 동경할 수가 없기는 하지만...
전쟁, 일상에서 생을 유지하기 위해 행했던 일들, 기자로서의 삶, 훌륭한 작가들과 예술가들과의 사귐, 그의 사랑의 역사 등이 헤밍웨이라는 작가와 그의 작품들이 있게 했던 것이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헤밍웨이가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파리에 다시 가서 헤밍웨이의 자취를 따라가보고 싶다. 그리고 그곳들에서 헤밍웨이의 작품들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