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 am a stem cell Mar 04. 2018

조지 오웰의 빈민 체험 르포르타주

조지 오웰 <파리와 런던 거리의 성자들>

조지 오웰은 평범치 않은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그의 삶은 정말 독특했다. 식민지 인도에서 일하던 영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영국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성장했다. 학교를 마치곤 인도의 식민지 경찰로 일했고, 식민지를 착취하는 제국의 통치에 혐오감을 느껴 귀국한 후 경찰로도 일하지만 결국 모든 것을 그만두고 작가가 되고자 삶의 방향을 완전히 틀어버렸다.


그리고는 파리와 런던의 빈민가에 들어가 진짜로 빈민이 되어 그 실상을 체험하였다. 이 체험의 기록이 책이 되어 오랜 세월이 지난 현재, 파리와 런던과는 매우 멀리 떨어져 살아가고 있는 내 손에도 올려져 있다.


오웰은 당시 파리와 런던에서 힘겹게 생을 이어가고 있던 빈민들의 비참한 삶을 체험하면서 그 실상을 매우 생동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빈민가에서 그가 만났던 인물들과의 대화, 일터에서의 모습, 수용소에 모인 군중과 그들을 대하는 관리인들의 태도 등에 대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 당시의 상황이 실감나게 그려진다. 그가 있었던 곳은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곳이었고, 아무짝에도 쓸모 없다 여겨지는 존재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그가 표현한 것처럼 오웰에게 있어 빈민들은 “소외되고 억압받고 뒤틀린 삶을 살아왔고, 미래의 삶에 있어서도 정상적인 삶의 방식을 포기한 사람들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을 바라보면서 조지오웰은 묘한 해방감 혹은 자유로움도 느낀다.


그는 그것을 “돈이 사람을 노동에서 해방시켜 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난은 사람을 상식적인, 정상적인 행동 규범으로부터 해방시켜 준다.”라고 표현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기에 누릴 수 있는 자유로움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것은 어떤 면에선 어린 아이들이 누리는 자유로움과 비슷할 지도 모르겠다.
  
조지 오웰은 가난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파리와 런던의 빈민촌에서 가난이라는 것과 처음으로 실감나게 마주하게 된다. “시끄럽고 더럽고 기이한 삶들로 이루어진 빈민촌”은 오웰에게 가난에 대해 깊이 통찰하게 해 주었다. 빈민이 된 오웰에게 현실을 더욱 암담하게 했던 것은 지금의 힘든 것들이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고 지속되거나 더 힘들어질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오웰은 모든 악조건들 속에서도 걱정했던 것보다 실제 마주하게 되는 하루하루가 더 나빠지지는 않았다는 이야기를 한다. 궁핍한 생활을 계속해서 해나가다 보면 배고픔 이외에 모든 어려움을 버텨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럴 때의 감정은 어떤 것일까? 나락으로 떨어져 본 적이 없는 나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기분일 것이다. 모든 빈민들이 오웰과 같은 생각과 감정을 가지게 될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빈민들 중 일부는 오웰과 비슷한 것을 느꼈을 것 같기는 하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 더 이상 추락할 수 없는 바닥에까지 떨어졌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느껴지는 해방감이랄까 아니면 희열이라 할 수 있는 그런 감정이다.”
 
파리에서 오웰은 어떤 호텔에서 접시닦이 일을 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오웰이 생각했던 부분이 현대 사회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그 호텔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철저하게 계급이 나누어져 있었고, 노동을 엄청나게 착취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호텔은 그럭저럭 잘 운영되었다.


조지 오웰은 그 원동력을 “비록 어리석고 지저분할지라도 모든 종업원들이 자신들의 일에 대하여 긍지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또한 일하는 이들은 “자신이 동경하고 있는 대상에 봉사하며 쾌락을 얻는 것이고, 노동조합도 만들지 못하고 하루에 열두 시간씩 일을 한다.”라고 지적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돈과 권력 앞에 이런 태도를 취하고 있지 않은가?
 
“사람들은 타인의 일이 유익하냐 무익하냐, 생산적이냐 기생충적이냐 하는 것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오로지 중요시하는 것은 그 일을 통하여 얼마만큼의 수익을 올리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능력이나, 효율성, 사회적인 봉사 등을 논의할 때 가장 중요시 되는 것은 오직 한 가지 ‘돈을 벌어라. 합법적으로 그리고 많이’라는 것이다.”


이 문장을 수십 년 전에 빈민의 한 사람으로 살았던 이가 썼다는 것이 믿겨지지가 않는다. 이것을 그대로 지금의 사회에 적용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진술이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조지 오웰은 빈민으로서의 삶을 체험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가난이라는 것에 대해 깊이 고민을 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비참한 삶을 이어가는 이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인지 국가적, 사회적 맥락에서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해 보고자 노력했다. 일종의 복지제도 제안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무엇보다 오웰은 빈민들에 대한 편견, 즉 이들은 위험하고 혐오스런 인간들로 일을 하지 않고 몸을 씻는 일을 죽기보다 싫어하며 오직 구걸한 걸로 술이나 마시고 남의 집 닭이나 몰래 잡아먹는 위험하고 끔찍한 인간들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무료해서 산송장처럼 되어가는 부랑인들을 어떻게 하면 자존심을 지닌 인간이란 존재로 전환시켜 주느냐에 있다”고 썼다. 중요한 통찰이다.
 
오웰은 궁핍한 생활을 통해 몇 가지 다짐을 한다. 거기에는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편견을 버리고자 하는 의지와 무시하기도 하고 무시당하기도 했던 경험을 통해 배운 교훈이 스며있다.
 
“나는 앞으로 결코 부랑인들이 모두 술주정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또 걸인에게 돈을 주며 고마워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또 실직을 당한 사람이 무기력하게 있어도 섣불리 간섭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또 구세군에게는 헌금을 하지 않을 것이다.”


“또 내 옷을 전당포에 잡히지 않을 것이다.”


“또 광고 전단지를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또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지 않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낯선 세계로 나아가기 직전의 순간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