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네 뤼달 <덴마크 사람들처럼>
오마이뉴스 대표 오연호 기자는 지난 해(2014년)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책에서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고 불리는 덴마크를 소개했었다. 오연호 기자의 책을 통해 덴마크라는 사회에 대해 궁금해졌고 그들이 이룬 사회가 무척 부러웠다. 그런데 이번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에서 태어났지만 자신의 나라를 떠나 살았던 덴마크인이 자신의 나라를 소개하는 책이라고 하니 궁금증이 더 커졌다.
덴마크인들은 정말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일까? 저자가 서문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모든 것을 일반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덴마크에서의 삶도 매우 다양하고 복잡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하고 느끼는 부분은 있을 것 같다. 저자는 열 가지 키워드를 주제로 덴마크에 대한 경험과 느낌, 그리고 생각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고 있다.
무엇보다 덴마크를 행복하게 하는 기초는 '신뢰'인 것 같다. 주인이 지키지 않는 가판대, 아무도 지키지 않는 물품보관소, 아이가 타고 있는 유모차를 까페 밖에 둬도 되는 문화, 잃어버린 지갑을 다시 찾을 확률 등은 덴마크인들의 높은 신뢰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어떻게 신뢰수준을 이토록 높일 수 있었을까? 부패와 거짓, 편법을 아무 거리낌없이 행하는 한국사회에 있다보니 덴마크 사회의 모습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한국에서 정치인, 기업가 등 소위 사회 엘리트들이 종종 신뢰의 회복을 외치지만 그들의 모습에선 믿을 만한 구석이 보이질 않는다. 사회 전반에 불신이 팽배한 한국 사회에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행복이 찾아오길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어떤 계기(구체적으로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지만)가 필요해 보인다.
다음으로 교육, 자율성, 균등한 기회는 서로 관련이 있어 보인다. 개인의 자율성 형성과 호기심 자극이 교육의 목표이고, 아이들은 직접 경험하고 스스로 의견을 내도록 자극받는다. 교육제도 중 가장 부러운 점은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1년동안 에프터스콜레라는 곳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형적인 교과목이 아니라 다른 분야의 재능을 발견/개발하면서 보내는 성숙의 시간이다.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기간이라 할 수 있다.
덴마크 교육제도의 목표는 엘리트 양성에 있지 않다. 가능한 많은 학생이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해 주는 것, 그리고 학생 각자가 자신의 능력과 개성에 따라 스스로 가치 있는 존재라 느끼게 하는 것이 교육의 목표다. 게다가 무상으로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다.
덴마크 사람들은 최고가 되거나 다른 사람을 이기거나 앞지르려고 하지 않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그들을 행복하게 살도록 하는 데 한 몫을 하는데, 이는 16세기 프로테스탄티즘의 영향이 큰 것 같다. 행복의 원천 중 하나는 높지 않은 기대감에 있다.
또한 덴마크인들의 공동체 의식은 유별날 정도이다. 공동체를 중시한다는 것은 이들의 세금 및 복지 제도만 봐도 느낄 수 있다. 덴마크인들은 정부의 세금 지출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되어 있기 때문에 세금에 대한 스트레스가 훨씬 적다. 한국에선 상상할 수 없는 모습 중의 하나이리라. 한국 정부는 국민들에게 신뢰를 준 적이 단 한번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패의 온상이 바로 정부와 권력자들이니까.
행복에 기여하는 또 한가지 요소는 일과 여가 사이의 균형이다. 노동 시간을 꽤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어 가정과 여가 생활이 윤택해진다. 덴마크에는 휘게(hygge)라는 말이 있는데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또는 혼자서 보내는 소박하고 여유로운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은 강한 공동체 의식과도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사회에 참여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하며, 이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덴마크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요소 중의 하나이리라. 유치원생부터, 아니 유아기에서부터 강박적인 그리고 경쟁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다.
대체로 덴마크 사람들은 돈보다는 열정이다. 두툼한 월급봉투보다는 즐거운 휘게라는 시간을 갖는 것이 행복을 가져다주기 때문일 것이다. 기본적인 공공 서비스가 잘 자리를 잡고 있는 것도 이러한 경향을 갖게 하는 데 기여했을 것이다. 이들은 일과 가정의 균형, 공동체, 자아실현 등을 돈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리고 덴마크 사람들은 행복을 해치는 가장 큰 위험 요소인 타인과의 비교를 중요시하지 않는 편이다. 이들은 돈이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믿음에서 벗어나 있다. 너무나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말이라서 시시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정신이 실제 삶에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책을 읽고 나니 마음이 무겁다. 오연호 기자가 물었던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대답을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현재(2015년 현재) 행복하지 않고, 가까운 미래에도 행복하기 어려울 것 같다.
행복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라 생각하는데, 이것은 단기간에 회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건국이래 가져보지 못한 제대로 된 교육제도,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 사라져 버린 공동체 의식, 매우 취약한 공공서비스와 만연한 부정부패 등 어느 것 하나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는 요소가 없는 나라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