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라 호로비츠 <관찰의 인문학>
신해철은 노래했었다. “산책을 하고, 차를 마시고, 책을 보고, 생각에 잠길 때~ (중략) 매일 똑같은 일상이지만 너와 함께라면 모든 게 달라질거야~.”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한다면 다를 것 없는 일상의 모든 것들이 새로워질 것이라는 그의 노래는 여전히 마음을 울린다. 연인까지는 아니어도 많은 사람들은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날 무엇인가를 끊임 없이 갈구하는 것 같다.
특히나 매일 같은 길을 통해 같은 일터로 가고 같은 사람들과 일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은 그 어떤 욕구보다 강할 것이다. 주말이 되면 뭔가 다른 생활을 위해 여행을 떠나 보기도 하고 새로운 장소로 나서 보기도 하지만 해방감도 잠시 뿐 결국 반복되는 일상으로 돌아오게 된다. 심지어는 주말에 떠나는 여행조차도 반복하다 보면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일상이 단조롭고 재미없는 이유는 우리가 경이로움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매일 눈앞에 펼쳐진 평범한 풍경 곳곳에 숨겨진 놀라운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면 매일 똑같이 지겨운 하루를 산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알렉산드라 호로비츠의 책 <관찰의 인문학>은 그 동안 우리가 일상에서 주목하지 않고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을 다양한 관점에서 다시 바라볼 수 있도록 우리를 안내해 준다.
우리는 보지만 제대로 보지 못한다.
저자는 “우리는 보지만 제대로 보지 못한다. 우리는 눈을 사용하지만 시선이 닿는 대상을 경박하게 판단하고 스쳐 지나간다. 우리는 기호를 보지만 그 의미는 보지 못한다. 남이 우리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우리는 세상을 그리고 우리의 일상을 얼마나 제대로 보고 있을까?
알렉산드라 호로비츠는 <개의 사생활>이라는 베스트셀러를 쓴 작가이자 심리학자로서 관찰에는 일가견이 있는 전문가이다. 하지만 그녀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선별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관찰의 전문가인 그녀에게도 일상적으로 걷는 산책길은 별다를 바 없는 평범한 곳이었다. 서로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열한 개의 눈을 얻기 전까지는.
저자는 두 살이 채 되지 않은 아들, 지질학자, 타이포그라퍼, 일러스트레이터, 곤충학자, 야생동물 연구가, 도시사회학자, 의사와 물리치료사, 시각장애인, 음향엔지니어, 그리고 애완견과 동일한 동네 거리를 걸으며 무뎌진 감각을 깨울 수 있었다. 이들과 함께 한 산책은 알렉산드라 호로비츠에게 무려 열 한개의 새로운 눈을 선사해주었다. 물론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도 열 한개의 새로운 시각을 선물로 얻을 수 있다.
열 한개의 눈으로 새롭게 찾은 일상의 경이로움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이라면 저자가 소개한 어린 아들과의 산책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말했듯이 아이에게 산책은 “손가락, 발가락, 혀로 물체의 표면과 질감을 타험하는 행위”이자 자신이 발견한 것을 손가락질을 통해 타인과 공유하는 시간이다. 사실 아이들과 함께 하다 보면 산책뿐만 아니라 세상의 다양한 것들에 새로운 통찰력을 얻을 때가 많다.
저자와 함께 걸었던 전문가들의 시각이 모두 새로웠지만 그 중 필자에게 인상적이었던 사람들은 지질학자, 일러스트레이터, 도시사회학자였다. 지질학자의 눈을 빌려 보니 자연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인공물로만 생각했던 도시가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건물은 암석들처럼 풍화작용을 겪고 있고, 사람과 자동차들은 계단과 도로에 침식 작용을 하고 있다니. 이 지질학자처럼 도시의 암석들에서 수천년 전 빙하자국을 찾을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내가 매일 걷는 도시의 거리 곳곳이 다르게 보였다.
일러스트레이터인 마이라 칼만은 충분히 오랫동안 관찰하는 것이 평범한 것을 낯선 것으로 바꿔준다고 조언한다. 예술가들은 대체로 사소한 것들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재주가 뛰어난 것 같다. 마이라 칼만은 “지루하거나 우울할 때면 길모퉁이에 서서 30분을 보내보라.”고 제안한다. 일상이 지루해지는 이유는 바쁜 우리가 잠시 멈춰서 있을 30분의 시간을 갖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때론 관광객이 된 것처럼 내가 사는 곳을 걸어보자.
도시사회학자 프레드 켄트가 브로드웨이의 가장 붐비는 곳의 행인들을 관찰하면서 사람들간에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충돌회피 행동들이 새로웠다. 강남이나 홍대같이 붐비는 곳에서 우리 역시 큰 충돌없이 거리를 이동해 간다는 사실이 새삼 새로웠다.
또한 무단횡단에 대한 관점도 신선했는데, 무단횡단을 할땐 운전자와 눈을 맞추면서 길을 건너기 때문에 오히려 안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네덜란드 드라흐텐의 한 사거리는 하루에도 수 많은 자동차, 자전거, 보행자가 지나가지만 이동하는 이들끼리 눈을 맞추며 경로를 합의해 교통신호 없이도 원만하게 이동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경이로움으로 일상이 채워져 가기를
저자는 열 한 번의 산책을 통해 자신의 모습이 이렇게 달라졌다고 쓰고 있다. 정말 매력적이어서 내가 종종 걷는 산책길과 매일 반복하는 출퇴근길 등도 이제 조금은 새롭게 보일 것 같다.
“내 시야는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내 머리는 나뭇잎에서 벌레혹을 찾아보고, 에어컨이 윙윙대는 소리를 듣고, 도시 골목에 버려진 쓰레기의 역겹도록 달콤한 냄새 또는 내 얼굴에 남은 비누 냄새를 맡을 수 있게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 나는 이제 내 숨소리를 들을 수 있고, 심장고동을 느낄 수 있고, 내가 길을 걷다가 보도의 다른 행인들과 공간을 협상할 때 몸무게가 어느 쪽으로 쏠리는 지 감지할 수 있다.”
“앞 뒤에 있는 행인들이나 지나가는 차 안의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 소리, 내 옆에서 걷는 애완견의 개 목걸이가 짤랑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제 내게 있어 걷기는 단지 육체를 수송하는 수단이 아니라 정신적인 고양을 가능케 하는 도구이자 몹시 매력적인 행위다. (중략) 나는 우리 모두가 한 때 지녔으나 느끼는 법을 잊고 있었던 것, 바로 경이감을 되찾았다.”
하지만 저자가 다시 홀로 산책을 나섰을 땐 그들과 함께 걸으면서 느꼈던 경이로움은 사라지고 또 다시 거리는 낯익은 그 거리가 되어 있었다고 한다. 아이의 시선도, 예술가의 시선도 가질 수 없었고 개와 함께 걸으며 맡았던 새로운 냄새도 맡을 수 없어 놀랐던 저자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들을 다시금 세심하게 관찰하면서 비로소 그들과 함께 했던 산책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때문에 일상에서 경이로움을 찾아내는 것은 덧칠해 그려나가는 유화와 같다고 저자는 말한다.
“동네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면 우리 시각이 얼마나 제한돼 있는지 깨닫게 된다.” “우리는 매일 다른 사람들을 지나치면서도 자기 머릿속을 떠도는 생각들에 사로잡혀 있느라 그들이 아는것, 그들이 하는 것을 전혀 보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