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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 am a stem cell Mar 05. 2018

모순 덩어리 인간에 대한 유쾌한 성찰

카렐 차페크 <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책 읽기의 즐거움 중의 하나는 내가 살아 보지 못했던 장소와 시대를 살았던 세계 곳곳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카렐 차페크라는 작가가 바로 그 사람이다. 작가 소개를 보니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라서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다들 알고 있었을 작가이겠지만 내게는 너무나 낯선 작가 카렐 차페크를 우연히 만났다.


전자 도서관에서 어떤 책을 읽을까 책 목록을 살펴보다 오른쪽-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라는 특이한 제목에 이끌렸다. 왠지 모르게 오른쪽보다는 왼쪽이 끌렸다. 글의 호흡이 상당히 짧은 편이어서 생각보다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중간 중간 그가 쓴 주제들에 대해서, 혹은 그가 묘사한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생각에 대해서 멈춰서 생각해보게 되는 그런 책이었다.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고 자수했지만 그 이상은 말하지 않았던 죄수의 이야기에선 곤란한 상황을 맞이한 교도관들의 엉뚱한 선택에 웃음이 나왔다. 그를 처벌하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증거 없는 귀찮은 사건을 어떻게 하든 처리하고픈 마음이 유쾌하게 그려져 있다. 그는 결국 죄를 지은 사람도 회개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신부의 말에 회개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 후 그가 지냈던 감방은 일종의 감화원이 되었다. 이상하게도 그 방에만 들어오면 죄수들이 죄를 뉘우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은 죄의 종류에 따라서 감화되는 시간이 달라졌다고 하는데, 그 중에서 돈과 관련된 죄를 지은 사람들의 감화시간이 가장 길었다고 한다. "엄청난 돈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사람의 마음을 무디고 딱딱하게 만들기"때문이다. 정말 그런 것 같다.
 
카펫 가게 주인이 실종되어 죽음을 당했던 사건에선 작은 실마리에서부터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형사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마치 셜록 홈즈 이야기를 축약해 놓은 듯했다. 범인들은 결국 체포되고 마는데 그 결정적 원인은 바로 카펫에 사용된 싸구려 염색약 때문이었다. 카펫 가게 주인의 시체에 묻었던 카펫의 염색약 자국이 결정적 증거가 된 것이었다.


이야기의 마지막엔 이야기의 교훈을 짧게 기술해 놓았는데, 이 것이 반전의 웃음을 준다. 카렐 차페크는 이야기의 교훈이 "상품의 품질이 사업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이다"라고 썼다. 싸구려 염색약을 쓴 카펫 대신에 품질 좋은 카펫을 밀수했다면 카펫 가게 주인을 해치운 사실이 발각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조잡한 물건을 팔면 조만간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이다"라고 마무리 한다. 하하.
 
"사실 젊었을 때는 모험하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알다시피 용기 하나만 있어도 많은 일들을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점점 모든 일을 심사숙고하기 시작하면 용기는 사라지고 신중함이 그 자리를 대신 메우게 된다."


언뜻 보면 굉장한 유명인이 한 말 같지만, 이건 이야기에 나오는 금고털이범이 한 말이다. 뭐랄까 차페크는 무슨 일이 되었든 곤조를 가지고 하는 것이 멋진 일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의 이야기엔 미스테리 소설의 속성이 강하다보니 도둑질 이야기가 참 많은데 그 안에서도 은근 곱씹어 볼 만한 경구 같은 말들이 출현한다. 내게는 그의 이런 점이 카렐 차페크라는 작가에게 매력을 느끼게 한다.
 
"사람들은 아주 이상한 구석이 있다. 그들은 재앙을 보면 그것이 끝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 커다란 화재나 홍수일수록 그런 경향이 더 심해진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마 자신이 살아 있음을 강렬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리라."


이건 뛰어난 한 마구 제조공이 겪은 화재 이야기에 나오는 부분이다. 차페크는 자신의 이야기 중간 중간에 이와 같이 사람들의 모습에 대한 자신의 통찰을 툭툭 던지듯 이야기한다. 이야기의 스토리도 흥미롭고 재미있지만 중간 중간 이와 같은 말들도 이야기의 주된 스토리와는 상관없이 인간, 그리고 나의 모습에 대해 다시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해준다.
 
'도난당한 살인 사건'이라는 이야기에선 사람들이 주변의 일들에 얼마나 무관심한지에 대해서도 꼬집고 있다. 거리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이 수 많은 목격자들이 있었음에도 경찰에 알려지지도 않고 범인에 대한 실마리도 잡을 수 없게 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 하다.


차페크가 살았던 시대도 그랬던 것일까? 지금 살아가는 내 모습도 이야기 속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옆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도 잘 모르고, 그들과 관계를 맺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거리에서 누군가 쓰러져 있다고 해도 번잡스런 일에 말려들고 싶지 않아서 못 본척 지나치기도 한다. 언론을 통해서 보게 되는 멀리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는 공감하고 도와줘야지 하면서도 실제 내 옆에서 고통 받는 이웃에게는 관심을 두려하지 않는 모순 덩어리 나를 발견한다.
 
사랑을 하게 되면 사람이 어떻게 변할 수 있을까? '어린 백작 아가씨'라는 이야기에선 사랑이 사람을 얼마나 비이성적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말해 준다. 이 백작 아가씨는 한 군인과 사랑에 빠져 그를 위해 적국을 위해 스파이인 것 마냥 연기를 해 재판을 받고 감옥에까지 간다. 게다가 그 군인은 15년 전에 결혼해서 아이도 셋이나 있는 유부남이다.


그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던 담당 경관은 투옥된 그녀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그 남자에 대한 진실을 말해주며 백작 아가씨가 한 어리석은 행동을 돌이키기를 권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진실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위대한 진실의 한 단면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차페크는 말한다. "진실은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진실에 관해 이야기 할 때는 말을 잘 가려서 해야만 한다."고.
 
때론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들을 인간들이 하기도 한다. 20km가 넘는 산길에 눈보라를 뚫고 자수를 하러 왔던 살인자 이야기 속 주인공 경찰은 바로 그것을 경험했다. 너무나도 단순하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살인사건과 범인의 자수 이야기에는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신비의 세계가 우리가 사는 세계와 공존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우리 인간들은 인간들의 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초월적인 신적 존재가 있다는 희미한 증거들을 마주하기도 한다. 자연도 그렇고 인간들의 사회도 그렇고 모든 일들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한계를 인정하게 되고 겸손해질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고해'라는 이야기에는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을 가진 사람들의 답답함과 그것을 해소하는 방법이 그려져 있다. 고해성사를 하기 위해 신부를 찾아온 한 남자는 신부에게 너무나 섬뜩하고 역겹고 짐승 같은 짓을 남김 없이 털어놓는다. 그리고는 회개도 없이 신부를 떠난다. 그는 아무것도 믿지 않으며 단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마음의 짐을 덜고 싶었을 뿐이었다고 말한다.


죄 사함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그이기도 했지만, 자신이 저지른 끔찍한 일로 인해 무척이나 괴로웠던 것 같다. 여기서도 인간의 모순을 발견하게 된다. 서슴없이 잔인한 악행을 저지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그 행위에 괴로워하는 모습이 인간에게 공존한다. 서로 공존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마음이 내 안에서도 이리저리 떠돌고 있는 것과 같이.
 
도둑질을 한 후 한 편의 시를 남기던 도둑의 이야기도 참 재미있다. 시를 쓰는 도둑과 그의 숨겨진 욕망, 그리고 그의 변화를 통해 인간의 마음에 담긴 보편적 욕구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한 신문의 편집인이 이 도둑의 시를 훌륭한 평가와 함께 기사화했는데 그 이후 도둑의 범행이 증가했고 항상 범죄 현장에는 도둑이 쓴 시가 놓여 있었다.


도둑은 자신의 시를 알아주는 누군가의 독자를 원했던 것이다. 이후 도둑은 도둑질을 계속하면서 시를 쓰다가 이젠 자신의 시를 그 신문사에 보내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의 시를 마주한 편집인은 처음 도둑의 시에서의 감동을 느낄 수 없었다. 편집인이 말했다.


"시인 도둑의 시는 늘 같은 것을 반복했고, 온갖 싸구려 감상주의와 터무니없는 생각들로 가득했다. 간단히 말해서, 그는 진짜 작가처럼 행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도 이런 작가들을 종종 보게 되지 않는가.
 
"얼핏 불가능해 보이거나 가치 없어 보이는 일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걸 옹고집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모험심이라고 부르고 싶다. 왜 있지 않은가. 자신의 최고 능력을 백 퍼센트 발휘하고 싶어 하는 욕망 말이다. 사람은 단지 결과만을 얻기 위해 온갖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게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게임이기에, 자신의 자유의지로 선택한 가슴 뛰는 도전이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빵에 든 바늘을 사 먹고 수사를 의뢰한 사건에 나오는 한 국립화학연구소의 연구원들이 빵을 만들어 팔게 된 어이없기도 하고 우습기도 한 모습에서 난 내 모습을 마주하기도 했다. 연구원으로서의 삶에 회의를 느낄 때가 종종 있는데 빵에 든 바늘의 출처를 조사하기 위한 그들의 태도에 나의 삶을 다시 돌아본다. 다른 사람들에게 옹고집으로 비칠 수 있겠지만 내가 선택한 가슴 뛰는 도전이라면 그 일에 매달려 보련다.


딸에게서 온 알 수 없는 전보를 마주한 한 부부의 모습을 통해서 차페크는 평범한 사람들의 인상적인 변화와 특징에 대해 공감되는 이야기를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하루 평범하게 살아간다. 그들의 일상은 너무 평범해서 초라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너무 예외적이고 감정적인 상황에 처하면 그들은 백팔십도 딴사람으로 돌변한다.


먼저 그들의 말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목소리가 드라마틱하게 변하고, 평소에 쓰지 않던 말들을 사용하며, 논쟁도 서슴지 않는다. 뿐만 아니다. 일상생활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들이 그들을 찾아온다. 그리하여 열에 아홉은 자신도 미처 몰랐던 용감함과 고귀함, 희생심 같은 영웅적이며 고결한 품성을 불쑥 드러낸다. 마치 위대한 행동을 하게 만드는 어떤 공기를 마셨거나, 예외적이고 재앙적인 상황에서 어떤 비밀스러운 만족감을 맛본 사람처럼 말이다...(중략)...


그러다가 드라마틱한 순간이 모두 지나고 나면 사람들은 다시 왜소한 일상인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후의 삶은 이전과는 다르다. 사람들은 이제 과거와 달리 일상에 환멸과 실망감을 느끼고 당혹해한다."


나 역시 이런 평범한 사람 중의 하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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