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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별 Feb 07. 2022

생각지도 못한, 영국에서 3년살기.

 "뭐라고? 3년이나?"

우리 가족이 영국으로 가게 될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들은 건 지금으로부터 약 1년 6개월 전?

그때까지만 해도 소위 '카더라' 형식의 정보였기에 갈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라는 마음이었는데.. 2020년 10월 쯤, 남편 회사에서 정식으로 발령공고가 났다.

발령기간은 3년, 도시는 영국 런던. 


 남편이 지금보다 더 젊은이(?)일때는 해외 출장도 몇번씩 다니곤 했었으나 생각지도 못한 해외 파견 발령은 너무 갑작스러워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인생이 원래부터 다 우리의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나는 진작 알고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정말로 우리 인생 플랜에 없던 일이라 솔직히 나는 그 소식이 처음엔 크게 달갑지가 않았다. 내 고향에서 평생 살 줄 알았더니 회사에서 서울로 발령을 내고 우여곡절끝에 서울에서 정착하고 산지 3년. 이제서야 이 낯선 도시가 우리집 같고 이제야 동네를 좀 돌아다니면 가끔 아는이도 마주칠 정도로 적응했다 싶었더니 이번엔 해외라니…. 것도 몇시간 비행이면 한국을 오갈 수 있는 가까운 나라가 아닌, 직항만 12시간을 타야하는 영국… 

회사에서 고맙게도(?) 1년이나 미리 발령을 내 주었지만 사실 마음이 붕 떠 있던터라 그 어느것 하나 제대로 준비가 되질 않았다. 코로나 상황도 하루가 다르게 돌아갔고, 당장의 한국에서의 생활도 하루하루 바쁘게 돌아갔다. 주위에선 부럽다는 의견이 끊이질 않았지만 막상 당사자인 나는 앞으로의 일들이 막막할 뿐....

그 사이에 남편이 참 고생이 많았다. 넋놓고 애써 현실을 외면하는 아내와 아들 사이에서 회사일은 일대로 하면서 비자준비에 이것저것 세세한 준비들까지 거의 본인이 다 했다. 컨테이너에 우리 짐을 실어 영국으로 보내야 했기에 겨우 정신차리고 내가 나서서 이것저것 준비해야 했던 7월까지도 나는 마음의 갈피를 못 잡아 매 순간 이리 저리 휘청거렸다. 그래도 어쨌든 출국 날짜는 8월 30일로 정해졌고, 현실적으로 피할길은 없기에… 7월이 되어서야 겨우 받아들이고 이사준비를 시작했다.


 컨테이너 이사 별거 있나, 우리집에 있던 짐을 그냥 실어가면 되는 것 아닌가 했던 내 생각은 무지 그 자체였다는 것을 깨닫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일단 3년간 현지로 가져가야 할 아이의 책과 문제집, 교과서 양만 해도 상당했다. 집에 있던 책장에 책들 중 정리할 건 정리하고, 새로 채워넣을 것들 넣고, 돌아오기 직전 5학년 교과서와 문제집까지 차곡차곡 준비했다. 날씨가 여기보다 춥다고 들어서 여태 쓰지도 않았던 온수매트를 두개나 사고, 수면잠옷에 겨울 옷들도 주문했다. 김, 참치 캔, 스팸 같은 통조림 먹을 것들도 사고, 비상약에 결혼 하고 약 10년간 쓰던 이불들도 일부 바꿨다.

선박으로 올 우리 컨테이너가 늦게 올 것을 대비해 직접 비행기로 싣고 갈 이민가방엔 따로 한두달치 생필품을 쌌다. 이사 전날까지 남편과 나는 정리와 버리기, 주문과 정리의 과정을 반복했다. 택배는 끊임없이 배송되어 대문앞에 산처럼 쌓이고, 인터넷 쇼핑을 이렇게 많이 하다간 손가락 깁스를 해야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할 때가 되니 드디어 컨테이너 이삿날이 다가왔다.


 부산 여행갈 때 항만에서나 가끔 봤던 컨테이너가 위엄을 내뿜으며 아파트 입구까지 들어왔다. 다행인지 전날까지 컨테이너에 실을 것과 아닌 것들을 잘 구분해서 정리해둔 터에 당일에 우리가 할 일은 많지 않았다. 결혼할때 샀던 세탁기와 냉장고는 영국에 가져갈 수 없어서 결국 재활용센터로 보냈다. 어짜피 10년차인 물건들이니 그동안 잘 썼구나 애써 내 마음을 달래면서도 아직 잘 돌아가는 냉장고와 세탁기를 보며 내가 왜 이런 해외이사를 해야하는지 뭔가 헛헛한 기분이 숨겨지지 않았다. 한국에서의 삶도 충분히 만족스러운데 낯설고 물설은 곳에서 어떻게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재활용센터로 간 내 첫 냉장고와 세탁기, 그동안 고마웠다!!)

(컨테이너 짐 오기 전, 그래도 도착하면 먹고 살겠다고 사들인 비상식량 ㅋㅋㅋ)

                                ( 공항으로 출발하던 8월 30일 아침, 우리들 짐)

12시간 비행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이렇게 장거리 비행은 처음인듯. 
응팔이 있길래 응팔로 지루함을 달래봄 ㅎㅎ

초딩인 우리 아들은 오히려 즐거워하며 신나게 12시간을 즐겼다. 키즈밀도 싹싹 긁어먹고, 게임하고 잠도 자고... 

영국에 도착하고 임시숙소로 가기위해 미리 나와서 우리를 기다려 준 차에 올라탔다.

말로만 듣던 히드로 공항에서 입국 수속을 하고, 나와서 오른쪽 운전석이 있는 차에 올라타자 드디어, 결국 우리가 영국에 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시작이다. 더 이상 피할 수 없고 모른 척 할 수 없는.....

우리 가족은 드디어 영국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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