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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달걀 Nov 04. 2020

긴 원망 끝에 남는 건 한숨뿐

넌 뭐가 그렇게 매일 바쁘니?라는 말 대신

바쁜데도 애 잘 먹이고 잘 키워 기특하구나!라고 해주셨다면.

왜 애를 그렇게 학원으로 돌리니?라는 말 대신

엄마 올 때까지 잘 다녀주어 기특하다고 해주셨다면.

잠시 낮잠 자는 동안 덮은 이불 걷어버리는 대신

어제도 야근했는데 명절 일 보느라 애썼다 해주셨다면.

바싹 마른 나에게 쌀 떨어졌냐고 묻는 대신

많이 먹으라고 한마디 해주셨다면.

회사 뭐하러 다니냐, 아껴 살라 하는 대신

건강 먼저 챙겨야 한다 말해주셨더라면.

먹던 물김치 그릇을 저 멀리 치우지만 않으셨다면.

전화 걸 때마다 한숨 대신 웃음을 주셨더라면.

방학 동안 아이 어쩌고 회사 다니는지 한 번이라도 물어봐주셨더라면.

갑작스러운 여행에 함께 하지 못 하더라도

니들 못가 속상해 죽겠다는 말 대신 다음엔 같이 가자고 해주셨더라면.

왜 아이를 그렇게 키우냐는 말 대신

골고루 잘 먹고 바르게 잘 크고 있다고 칭찬 한 번 해주셨더라면.

명절에 점심 먹고 가지 벌써 가냐는 말 대신

할머니가 증손주 보고 싶어 하실 테니 어서 내려가 보라고 선뜻 말씀해주셨더라면.

애 먹던 말던 안 먹으면 굶기란 말 대신

내가 먹여줄 테니 너 먼저 얼른 먹으라고 친정 엄마처럼 배려를 해주셨더라면.

한자도 영어도 잘 읽을 수 있다고 자랑하는 아이에게

큰 손자 생활력을 칭찬하는 대신, 자랑하는 아이 뻘쭘하지 않게 입에 바른 칭찬이라도 해주셨더라면.

하루 종일 바깥으로 돌다 엄마 퇴근 시간 맞춰 겨우 집에 오는 아이에게

친구가 없어 학원 가니?라고 묻는 일만은 없었더라면.


어머니 연세 80쯤 되면 원망하고 따져야지 수백 번을 되뇌며 살고 있었는데. 나는 그 대답을 듣지 못할 모양이다.

늘 그 말투가 송곳 같아 두려웠다. 오늘 만나면 또 어떤 말로 상처를 줄까 걱정을 해야 했으니까.

시부모 도움 없이도, 더 악착같이 잘 키우고 보란 듯 잘 사는 모습 보여주자 다짐했거늘. 나 잘 사는 모습, 알고는 계실는지.

놓아버린 미련이 언젠간 후회스럽겠지만, 많은 날 동안 나 역시  많이 노력했었노라 다독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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