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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148일

정말 오랜만의 글이다. 오른 손목이 이렇게 중요한 걸 몰랐다...ㅎㅎ

by 제니

[투루언니의 육아살림체험기] 아이와 긍정적인 애착을 형성하고, 잊고 있던 소중한 일상을 발견하고, 쉼을 통해 다음 스텝을 그려보기 위한 투루언니의 재충전.


<투루언니의 코칭 퀘스천>

Q)'현재를 완전'하게 만들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Q)후회가 남는 사건을 '긍정적 관점'으로 재해석 해보면 어떤 느낌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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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제주의 풍경은 마음을 잔잔하게 해준다.



아들이 정말 사랑스러워지다!


백수가 사람 잡는다고, 놀면서도 뭔가를 하겠다고 하다 보니 ‘건초염’에 걸렸다. 아마도 스마트폰을 많이 봐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안 하던 살림을 집중적으로 하다 보니 그럴 수도 있고. 그래서 그간 업데이트를 많이 못했다. 오늘은 ‘갭이어 프로젝트 버킷리스트’ 중 한 개인 <나 홀로 제주여행>중이라 잠도 오지 않은 새벽이라 오래간만에 글을 쓴다.


“아들이랑 정말 친해지고 좋아하는 거 같아. 자연스럽고 좋아졌어.”


최근 들어 만나는 사람에게 많이 듣는 말이다.

3,4월은 사실 적응기였고 6월 이후 가파르게 좋아졌다. 나 스스로도, 우리 아들이 너무 사랑스럽고, 보고 싶고, 없으면 허전하고, 보고 있으면 웃음나고. 이게 사실 정상이었어야 하는데, 어쩌면 뒤늦게 온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최초 퇴사 목표였던 ‘아들과의 애착 형성’은 점차 좋아지고 있다. 점점 완성되고 있다. (완성이라는 말은 어쩌면 쓸 수 없는 단어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겨우 5세이니. 미완성의 상태로 계속 나아가야겠지만…)


홀가분할 줄 알았던 첫째 날의 제주 여행에서 가장 많이 느낀 건, 이미 내 ‘일상’은 '가족'으로 이루어져 있음이었다. 그 가족은 원 가족도 있겠지만 남편과 아들이 주인공이다. 발걸음 하나하나 어찌나 허전함이 몰려오던지….

이렇게 돈 들이고 멀리까지 와서야, 비로서 가까이 옆에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사람이라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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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올레길 6코스즈음이다. 이중섭 미술관 부근부터 '작가의 산책길'이라는 게 생겨 쭉 걸었다. 역시 제주하면 식물과 구름이다.(그런데 요즘 서울도 구름이 예술이다.)



평소, 있을 때는 잘 모르지만 없으면 바로 티가 나는 그런 것들


많이 듣던 명언이 있다. ‘지금이 행복하면 과거는 다 추억으로 남고, 지금이 불행하면 후회로 남는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아니 맞다. 혼자 서귀포시 에어비앤비 숙소에 있으며 약간의 허전함과 무서움을 달래려 티비를 틀었다.


케이블에서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드마라 1,2화를 봤는데, 그 드라마를 보니 대학신입생 시절이 떠올랐다. 뭔가 행복하지 않던 최근 몇 년 회상했던 내 대학생활은 ‘통금 등으로 인해 제대로 놀아보지도 못한’으로 기억되는데, 이 드라마를 보며 다시 회상하니, 나는 '참 행복한 대학생'이었다.


반수 후 다시 들어간 대학이라, 내 마음 속에는 ‘대학생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지’라는 강렬한 소망이 있었다. 그 바람대로 나는 정말 열정적으로 대학생활을 했다. CC도 해보고, 장학금도 타고, 대학생 마케터, 명예기자 등 외부 활동도 하고, 복수전공도 하고, 어학연수도 가보고, 해외봉사도 가보고, 동아리 활동도 많이 하고 좋은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다.


그런 나의 20대 시절의 추억을 ‘현재 상태’가 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맞아 저런 '찬란한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지. 나는 비록 내가 그리던 그림의 꿈처럼 되지는 않았지만, 색다른 그림으로 현재 그려져 있다. 그 또한 매우 귀하고 충분히 아름답다.
아내, 엄마, 그리고 서른 여섯의 나. 이 삼박자가 지금 나의 ‘일상’이자 ‘현실’이다.


무엇이 두려워 나는 이런 상황에서도 ‘나 자신’을 잃지 않으려 애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이 또한 나의 ‘방어기제’일지도 모른다.

뭔가 강렬히 좋아하면 상처 받을 까봐 철벽치고 어느 선까지만 좋아하자고 스스로 마음먹는 그런 건지도.


아들도 크면 떠나겠고, 남편도 너무 잘해주면 당연히 여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나’에게 집착하게 만드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잊어버린 감사


어쩌면, 일상의 ‘감사’를 잊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고등학교 절친들이 제주도에 왔다고 하니, 애를 봐주는 엄마랑, 보내준 남편에게 고맙다고 하라고 한다. 흠, 그러고 보니 정말 고맙네.


뒤늦은 사춘기로 방황하는 딸을 60 넘어서 보는 엄마의 심정도 딱하다. 정말 하극상처럼 몇 년간 엄마와 과거의 일로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비난과 원망석인 목소리를 그대로 뱉어냈다. ‘엄마가 뭐길래….’ 그런 말들을 온 몸과 가슴으로 흡수할 엄마를 생각하니, 이제 정말 흘려보내자.


그땐 그때였고, 그럴만한 상황이었다. 여유가 없었고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게 전부다. 그 이상도, 이하도 없다. 이제 나도 엄마가 되어, 엄마의 마음을 헤아릴 정도가 됐다.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서서히 그 마음을 알아가고 있다. ‘완벽한 엄마는 없다, 충분히 좋은 엄마만 있을 뿐,’ 이 말이 역시나 떠오른다. 우리 사랑하는 엄마에게, 이제 효도하는 길 밖에 없다. 어깨의 무거운 짐을 이제 내릴 수 있게 제자리로 돌아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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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천지역 폭포 앞에서 사진찍는 수많은 인파를 뒤로하고 지친 나는 의자에 앉아서 잠시 풍경을 바라봤다. 연인, 가족과 한께 온 사람들 틈에 '나 홀로 여행'중인 내가 있다.



오늘 땡볕에 살 뺀다고 숙소에서 2~3시간을 걸어서 '천지연 폭포'에 왔다. 낯익은 풍경, 그림,,,,맞다, 남편과 연애시절 왔던 곳이다. 한창 사랑이 무르익을 무렵 달달한 연인 포스로 이곳에 왔었지. 하트뿅뿅으로 좋아라 커플 사진을 찍었던 모습이 순간 떠올랐다.


아이를 낳고, 일하며 서로 으르렁거리고 짜증 받이로 지내느라 잊고 있던, 그 모습이 말이다. 가까이에 있어서 잘 몰랐던, 뭔가의 애틋하고 소중한 마음이 올라왔다.(부디 오래가라 ㅎㅎ) 아들도 생각나고…부모님도 생각나고…


홀가분한 ‘나 혼자 여행’이 될 줄 알았는데 첫 날이라 그런지 아직은 허전하다.


이번 여행에서 다른 건 모르겠지만 ‘가족과 일상의 소중함’은 첫째 날부터 얻고 간다. 그리고, '지금 현재를 충분히 행복하게 지내면, 모든 건 다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사실'도 말이다.


새로운 출발에 앞서 내면을 단단하게 하고, 설렘을 장착하는 ‘제주’는 언제나 옳다.

남은 4일의 여행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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