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더니...심봤다!
[투루언니의 육아살림체험기] 아이와 긍정적인 애착을 형성하고, 잊고 있던 소중한 일상을 발견하고, 쉼을 통해 다음 스텝을 그려보기 위한 투루언니의 재충전.
<투루언니의 코칭 퀘스천>
Q)내면의 무기력함을 해소하는 방법은 어떤 것인가요?
Q)선택 이후 흔들릴 때 나를 잡아줄 방법은 어떤 것이 있나요?
2018 0622(금)
올 해 여름휴가를 어디로 갈지 고민하다 선택한 곳은 ‘괌’이다. 작년 아들의 여권을 만들었으나, 아직 해외에서 뛰어다닐 아들을 생각하니 엄두가 나지 않아 양'양 솔비치'에 다녀왔었다. 만4세 생일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우리가족(아들포함)의 첫 해외여행지는, 아이들의 천국이라는 ‘괌’으로 결정했다. 항공권과 숙소, 렌터카 등 여행계획을 준비하고 드디어 d-day 5일안에 접어들었다.
하나하나 to-do리스트를 제거해나가다 가장 큰 변수를 만났다.
출발 하루 전, 잘 놀던 아들의 갑작스런 ‘고열’이 그것이다. 첫 해외여행이라 아플까봐 컨디션 관리를 철저히 했으나, 잠들어 있던 아들의 이마를 만진 나는 깜짝 놀랐다. 아주 오랜만에 느껴지는 이 뜨거움, 뭐지. 곧장 체온계를 재보니 이미 열은 38도를 넘었다. 수요일 저녁 8시경. 우리의 비행기는 금요일 오전 9시 40분인데…그 밤과 새벽에 해열제를 3번 먹이며 겨우 열을 내리고, 다음날 아침 바로 소아과에 갔다.
나: "내일 괌으로 여행 가는데 괜찮을까요?"
의사쌤: “일단 열 감기 시작이고, 지금 끝나는 단계가 아니라 시작 단계라 뭐가 올지 몰라요.
기침이나 콧물도 없고 목은 조금 부었는데…
의사로서는 지금 상태로는 안 가길 권유하나 결정은 어머님이 하셔야죠."
흠…전혀 일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이번 주에 택배가 쉴 새 없이 왔는데,,,물놀이 용품, 필요한 품목 등…비상 상비약까지 구비를 다 마쳤으나, 아이가 갑작스레 감기가 걸릴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 여행을 꼭 가야 한다면, 하루 전날이라도 유치원에 보내지 말고 컨디션 잘 관리하라고 이야기해줬다. 오늘 아들 유치원 보내고 하려던 수많은 일들은 일단 물 건너가 버렸다. 휴양지를 맞이해 화끈한 색깔로 손,발 젤네일도 계획하고 있었으나 쌩얼처럼 그저 손,발톱을 바짝 자르고 가는 수 밖에…
혹시 집이 더러워서 그런가 싶어 오자마자 청소를 하고, 죽 끓이고, 짐 싸고, 유치원 상담까지(하필 그날이었다.) 모두 마치고, 겨우겨우 재웠다. 중간중간 해열제를 먹여도 열이 39도에서 안 떨어져서…심각하게 여행취소를 고민했으나, 취소 수수료만해도 90만원을 육박해, 아프더라도 가서 아프자는 심정으로 일단 고고고.
다음날, 아침 일찍 출발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아들과 2년 전 제주도에 간 뒤로 처음 타는 비행기다. 특히, 오늘은 우리 아들의 첫 해외여행이자 여권개시일이라는 ‘의미부여’로 폴라로이드 사진도 찍어줬다. 기내에서 보낼 4시간 정도의 시간을 대비해, 노트북에 영상도 남아오고 미술놀이 칼레이도 챙겨왔다. 언제 저렇게 커서 이렇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같이 가게 됐는지, 정말 신기하다.
요즘 같이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이런 저런 얘기를 많이 하는데, 어제는 열 내리느라 물수건 등으로 계속 몸을 닦아줬다. 나보고 의사선생님이냐고, 우리 엄마 의사선생님이라고 좋아라 하는 모습에 엄마미소가 절로… 감정표현도 잘 하고 의사소통도 잘 되고 있는 우리관계, 신기하다.
결혼 이후 그간 나의 여행은 ‘책’과 함께하는 여행이었다. 내가 우아하게 책 2~3권 읽을 동안 남편은 아들과 씨름하며 여행지에서 더욱 격한 에너지를 써왔다. 이번 여행은 책을 최대한 줄이고, 아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늘이기로 맘 속으로 다짐했다. 이번 여행은 남편의 힐링을 위해 내가 좀 더 움직이자고 스스로 다짐해본다.
▷사진설명: 괌의 하늘은 정말 예술이었다. 셔터만 누르면 작품이 되는 그 곳. 바람, 내음, 공기, 하늘, 햇살, 토양, 그 모든 게 그저 좋더라. 다시 가고 싶은 여행지.
6월 말, 3개월 이상 백수로 지내며 나름의 긍정적 내용을 포장하며 글을 썼지만, 내면에 자리한 불안은 점점 커져만 갔나 보다. 8월까지는 신나게 갭이어를 갖기로 다짐해놓고도 6월 말, 다시 입사원서를 쓴 걸 보니 말이다.(허나 빠른 속도로 서류광탈 ㅎㅎ)
내면의 무기력, 집 안에 있는 것의 답답함, 엄마역할의 불편함, 아내로서의 불만족, 등 여러 가지 이유들로 부정적 감정이 솟아올랐다. 3일에 1번 짜증과, 수시로 미간을 찌푸리며 아이에게 참았던 화를 폭발하는 나를 보며,
“아 이제는 다시 사회로 나가야 할 때인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남편은 한 학기를 마치고, 이제 대학원 한 학기가 남은 상태고, 아이도 유치원에 제법 적응해 즐겁게 지내고 있다. 이 집에서 이유 없이 나태, 무기력한 ‘나’빼고. (아마도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여유 있고 몸을 덜 움직이기에 나타나는 증상일거다.)
지난 6월 30일, 11시를 넘어 간신히 입사원서를 넣고 해결되지 않은 마음으로 잠을 자고 일어났다. 7월 1일, 첫 달의 시작을 기분 좋은 이메일로 시작했다. 이전에 신청해 놓은 컨텐츠가 ‘브런치 위클리 매거진’에 연재된다는 소식이었다.
뭐랄까,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이제 다시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나의 프로젝트를 연장할 수 있게끔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된 거다.
어딘가에서 본 구절이 떠올랐다. ‘무너질 것 같으면 일어나고…’ 딱 그 격이다.
내면의 불안감과 원래의 목표가 성취되지도 않은 채, 또 다시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했는데, 그 기한을 연장시켜줬다. 고마운 브런치. 할 일이 더 많아지고 갈 길이 구만리지만, 7월은 새롭게 다시 시작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