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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118일.

내면의 불안감과 뭔가 해보고싶다는 강한 열망으로 원서를 넣다.

by 제니

[투루언니의 육아살림체험기] 아이와 긍정적인 애착을 형성하고, 잊고 있던 소중한 일상을 발견하고, 쉼을 통해 다음 스텝을 그려보기 위한 투루언니의 재충전.


<투루언니의 코칭 퀘스천>

Q)내가 느끼는 불편한 감정들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Q)그것들을 자극하는 사건이나, 사람이 있는지요?

Q)있다면 그것의 '어떤 요소'들이 그런 자극을 주나요?

Q)그 요소들을 '스스로 채울 수 있는'방법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인정하기 싫지만 그래야 하는 날들이 있다. 유난히 짜증스러운 날, 화날 건덕지를 어떻게든 만들어서 누군가에게 폭발해야 하는 날. 그 날이 바로 오늘이다. 백수 118일 째. 21분 전에는 6월의 마지막 날이었던 오늘이자 어제.


습한 기운은 지난주 여행을 다녀온 괌(GUAM)과 같은데 기분이 드러운 건 뭘까. 아마도 현실직시. 5박6일간 이른 여름휴가를 괌(GUAM)으로 다녀왔다. 습한 건 더 습한데 신분이 달랐다. 그곳에서 나는 ‘관광객’이자 ‘맘(MOM)’으로 불렸다. 깔깔깔, 하하호호 신나게 웃고 떠들어도 죄책감이 들지 않는 시간과 공간. 그곳은 여행지였다.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고 보니 내 신분은 백수다.(내 스스로 느끼는 신분을 의미하며, 외에도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8월 말까지 갭이어(Gapyear)를 갖겠다는 야심찬 다짐이 23분 전 무너졌다. 물론 실현가능성은 크지 않으나, 원서접수 1시간을 남기고 경력직 채용에 지원했다. 아..이 나이에도 원서를 계속 쓰고 있구나..10년 전에 시작된 '사람인'의 저주가 지금까지 계속될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맞이한 서른여섯. 애써 만 서른넷이라고 우기고 싶다.


날씨 탓인가, 살이 쪄가서 인가, 아니면 오른쪽 손목부상으로 운동을 쉬고 있어서인가. 명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안에서 뭔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짜증을 가장한 그것은 아마도 욕구불만이겠다.


어떤 종류의 욕구불만인지는 예상되는 아이템들이 있으나, 어떤 한 가지로 퉁칠 순 없는 여러가지 들의 합이다.


여름휴가 이후 잠시 행복한 미소의 가족사진을 카카오톡 배경사진으로 올려놓았다. ‘다’,라고 끝나는 이유는 조금 전에 바꿨기 때문이다. 여러 자기계발 서적 등에서 나오는 지침은, 최고의 모습을 남에게 보여라, 안 되면 연기하라 등인데….실제 내 주관적인 느낌이 안녕하지 못하니(남편과 나의 사이) 차마 그 연기로 해 놓은 프로필사진이 일주일을 가지 못한다. ‘안녕하지 못할’어떤 명확하거나 큰 이유는 없다. 너무 사소해 눈치채지도 못할 정도의 것들이 계속해서 앙금을 남긴다.


‘부모’역할을 수행하느라 바빠서일까. 각자의 라이프사이클에서 과업을 수행하기 지쳐서일까. 뭔가 둘만의 대화를 시작해도 깔데기 이론처럼 끝마무리는 짜증 섞인 목소리와 ‘그만해’로 마무리된다. 여러 이슈가 혼재되어 있어 어떤 것 때문이라 말할 순 없지만, 지속적으로 관찰해보면 몇 가지 이유가 보이는데 그 중 가장 큰 건 '너무나도 다른 가족문화'가 그것이겠다.


나는 매우 가족적인 원가족과의 문화에서 성장했고, 남편은 개인주의적인 원가족 문화에서 성장했다. 물론 양쪽 문화 모두 장,단점이 고루 존재해 깊이 들여다보면 장점으로 보이는 것이 단점일 때가 있고, 단점으로 보이는 것이 장점일 때가 있다. 그런 특수성은 ‘이론적’으로 잘 안다.


허나, 실제 내가 ‘현실적’으로 겪는 혼란은 매우 심각하다.
특히, 어떤 사건에 대한 나의 해석을 설명할 때 상대방이 전혀 이해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을 때,
본인 경험으론 그건 아무 의미도 아닌 것을 왜 혼자 오바하느냐는 투의 말을 할 때 내 감정은 격해진다.
내가 느끼는 ‘서운함’을 상대방은 ‘편리함’이나 ‘좋음’으로 해석하거나 이미 수용하고 있는 것들을 발견할 때면 우리 사이의 거리(gap)와 이해력의 정도가 점점 멀어진다.
‘딱’하면 ‘척’하고 알아들어도 시원찮을 판국에 ‘딱’하면 ‘떡’이라고 알아들으니 이건 말해 뭣해.


그런 답답함이 6년, 햇수로 7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나마 둘만 있을 때는 싸웠다가도 금새 풀고 히히낙낙거렸다. 허나, 출산 이후 짜증과 피로도가 커진 이후 한 번 싸우면 풀리는 시간도 길어진다. 무뎌지고 지친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알면서도 모른척, 회피라고 해야 할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자 이유가 있고 서로를 생각 안 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반복되는 패턴으로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나는 부부상담을 받기로 결정했다.(물론, 나는 우리 사이게 꼭 필요한 필수불가결한 것이라고 설득했지만, 상대방은 나의 통보로 기억할 것이다. 그래왔지만 같은 사건에 대한 다른 해석,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확신한다.)


요즘 네버엔딩 싸움의 주제는 나의 퇴사, 육아, 재취업, 시댁의 도움, 도우미 구하기 문제 등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감정이 격해지면 남편은 늘 이런 말을 한다.


“그렇게 일하고 싶으면 일 해. 내가 때려치고 전업주부 하면 될 거 아니야.”


이 얼마나 무식하고 폭력적인 말인가. 그 말에 정말 100% 책임질 순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전업주부’라는 그 말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내포하고 있는지 과연 그는 알까.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라는 이름 하에 소외되는 ‘본연의 존재’, ‘사회적 지위’, ‘성과를 계획하고 예측할 수 없는 반복되는 일상’, ‘통제할 수 없는 아이와의 감정싸움’, ‘차려먹기도 힘든 혼밥’, ‘울리지 않는 휴대폰’, ‘단절되는 관계’,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효력이 정지한 새로운 정체성’,,,,


……전업주부 안에서도 사교적이고, 다양한 그룹에서 활동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한다면 좀 덜하겠지만, 사회생활을 경험해본 나로서는 남편이 저런 말을 할 때마다 속에서 열불이 난다.


“그렇게 쉽게 말하지마.”


강력히 말했다. 정말 ‘전업주부’로서 사는 삶이 어떤 건지 감히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쉽게 내뱉지 말라고 경고했다. 내가 질투할 까봐 자랑도 못하는, 스스로 만들고 세팅한 게 많은, 손때 묻고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낯선 이를 만날 때 내밀 수 있는 명함이 있는, 그룹이라는 소속감을 가지고 월급을 받는, 차리지 않아도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아침 저녁으로 어딘가의 목적지로 갈 수 있는……그 모든 것들을 내려놓는다는 걸 과연 그는 알까.

(다음에 또 그렇게 이야기하면 건조하고 시크하게 그러라고 해봐야겠다.)


내 기준으로 무심하다고 여겨지는 남편에게, 내가 하루 종일 뭐 하는지 궁금하지도 않냐고 물을때면 남편은,' 대충 뭘 하겠지' 라고 한다. 그는 전혀 모른다. 내가 아이와 어떤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아이의 미소, 커나가는 모습, 자연스럽고 편안해진 관계 속에서 힐링과 보람을 얻는다.


허나, 그것들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단조로운 일상, 미래에 대한 불안, 성실히 일해온 사회인으로서 배제되는 상실감, 어버버버 머리가 굳어지는 것 같은 착각, 불규칙한 식사…등이 사라지진 않는다.


조직에 있을 때는 업무로 자꾸 오는 연락이 지겹고 건조했다. 지금은 오지도 않는 카톡을 한 시간에도 여러 번 확인하고, 어쩌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면 혹시 누가 댓글을 달지 않았나 쉴새 없이 알림을 눌러본다. 이 모든 것이 열정의 과잉, 결핍과 욕구불안 아니겠는가.


뭐든 거저 오는 건 없다고, 잘 되어가고 있는 반증은 어떤 것들은 잘 안되어 간다는 말이기도 하겠다. 우리아들은 유치원에 잘 적응하고, 매일매일 엄마와 함께 하는 행복한 일상이 익숙해질 무렵, 이 엄마는 점점 살찌고, 약간의 불안감과 감정기복을 얻고 있다. 이유 없는 짜증과 분노가 솟구칠 때도 있다. 내 안의 불덩어리들이 이제 슬슬 수면위로 나가자고 노크를 한다.


그런 이유에설꺼다.
여름휴가로 집에 9시 넘어 도착 후 다음 날 바로 출근을 이틀 한 남편은 금요일 저녁에 녹초가 돼 돌아왔다. 그의 입장에서 그는 무척이나 피로하고 지친 상태였을거다. 오자마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을 자고 싶었겠지.


허나 난 뭘 기대한 걸까. 다시금 돌아온 일상에서 이틀 동안 짐 정리 한다고 뺑이치고 뭔가 내 기준의 일을 하지 못한 것 같은 기분에서였나. 다정한 미소, 상냥한 안부 따윌 기대한 건 아니다. 그저 아주 약간의 관심, "넌 도대체 이 긴 시간 동안 하루종일 뭐하고 있니", 그 한마디가 듣고 싶어서 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체중이 불어난 내 몸에 난 짜증을 상대방을 통해 투사해 인상을 찌푸렸는지도 모르겠다. 집에만 오면 피곤하다고 아우성인 남편이 안쓰럽기 보다 짜증스러워 지기에 서둘러 운동복을 입고 집을 나섰다. 이런 날은 몸을 피곤하게 해서 아무 생각도 안 해야 한다.


오랜만에 따릉이 1시간을 대여하고 잠실대교 전까지 자전거를 타고 돌다 왔다. 마음이 이루 말 할 수 없는 파도로 요동치는 가운데 중간중간 내 눈에 보인 표지판. 그것은 ‘천천히’였다.


그 표지판 하나를 보는데 눈물이 나는 건 뭔가.

그래, slow라고 천천히 가라잖아….


지금의 불안감이 나를 파도처럼 삼키지는 않을 거다. 자고 나면 괜찮아 지는 걸 알지만 순간의 파도가 요란하다. 나에게 표지판이 위로를 건넨다. 진심으로 눈물나고 사무치게 고맙다.


인정하기 싫지만, 지금은 그런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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