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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100일을 뒤돌아보며.

어제가 백수된 지 100일 이었다. 무사히 보낸 것을 셀프 축하하며!

by 제니

[투루언니의 육아살림체험기] 아이와 긍정적인 애착을 형성하고, 잊고 있던 소중한 일상을 발견하고, 쉼을 통해 다음 스텝을 그려보기 위한 투루언니의 재충전.


<투루언니의 코칭 퀘스천>

Q)스스로 취약하다고 생각한 부분들이 있나요?
그런 모습을 바라볼 때 스스로 어떤 '이미지'(느낌)가 생기나요?

Q)그 부분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가장 쉽고 빠르게 극복하는 방법은 어떤 걸까요?

Q)취약점이 극복된다면 어떤 가능성이 생길까요?

Q)극복하지 않고 '긍정의 꼬리표'를 붙여본다면 어떻게 바뀔까요?
예) 성급하다 -> 추진력이 강하다/ 우유부단하다 ->신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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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내가 서울에서 처음 이용한 '따릉이'. 5년 전 마르세이유에서도 자전거를 탔었는데 서울에도 있었구나. 좋구려.


“생각해보면, 땅고의 걷기에 있어서 도착해야 할 어떤 일정한 목표지점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 음악이 끝날 때 멈추는 곳이 곧 우리의 도착점이다. 그러므로 땅고 걷기의 목표는 공간이동에 있는 게 아니다. 땅고에서의 걷기는 음악에 대한 해석을 바탕으로 공간 이동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운 흔적을 남길 수 있는가 하는 데 있다.”

_<Book_오직 땅고만을 추었다, 中>



왠지, 자전거가 타고 싶은 어느날이었다


남편의 퇴근 후 아들을 맡기고 운동복으로 갈아 입고 나왔다. 바람도 시원하고 운동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옥수역 앞에 자전거가 세워져 있었다. 작년 9월 이사 이후 별 관심을 주지 않았었는데 오늘 처음으로 그 자전거를 이용했다. 서울 자전거 따릉이라고 하며, 앱 가입 후 2시간에 2,000원 카드 결제를 했다. 그냥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걷고 싶은 날, 달리고 싶은 날, 오늘은 자전거 타고 싶은 날이었다.


아마도, 지난 금요일 아들 친구 H양의 집에 놀러 가서였을까. H의 친할머니와 고모(나보다 3살 어린 싱글)가 있는 그곳에 우연히 간 그 자리에서 든 느낌. “나는 누구인가, 또 여긴 어디인가..ㅎㅎ” 정작 H 엄마의 얼굴은 본적도 없는데, 이모할머니와 친할머니, 외할머니, 고모까지 두루두루 알게 된 나는 아들의 ‘엄마’였다.


2주 뒤 유치원 상담을 앞두고 아이를 데려오지 말라고 해, 난생 처음 시어머니한테 아이를 봐 줄수 있냐고 부탁전화를 했다. 선약(모임)이 있어서 어렵다는 말에 그간 쌓인 분노가 치밀어 올라서일까. 아들 성씨는 내 성씨랑 같지도 않은데, 독자인 손주에게 조금 무심한 것 아닌가 하는 서운함이 못내 있었나보다. 우리집은 가족주의의 전형, 시댁은 개인주의의 전형, 각자 장,단점이 있을텐데,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난감할 때가 많다.

조금 극복해 왔다고 생각하다가도 나의 story로 해석이 되는 순간 밀려오는 감정이 참으로 거세다. 그럴 때면 옆에 있는 사람들을 잡는다. 때론 남편, 때론 아들.


가족이라는 이름 하에 무의식적으로 가해지는 상냥한 폭력. 시간이 지나 성찰이 완료된 이후, “아, 또 그랬구나..”하고 뒤늦은 후회를 하기도 한다. 아마도 오늘은 그런 날.


자전거를 18시 44분에 대여해서, 20시 6분에 반납했다. 약1시간 20분 가량 한강을 자전거로 달렸다. 시원한 바람과 멀찍이 보이는 풍경들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저 멀리 보이는 롯데월드타워를 이정표로 해 발을 굴리고 또 굴린다. 나 외에도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꽤 많다. 이사와서 좋은 새로운 점 발견, 따릉이 타고 달리는 한강변. 좋구나.


김미경 강사님의 유투브 강의를 종종 듣는다. 설거지를 할 때나 걸을 때, 종종 듣는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강의를 듣는데 자존감에 대해서 나왔다. 나를 존중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패달을 밟으면서 나는 지금 ‘나’를 존중하고 있는지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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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하늘이 좋다. 특히 구름의 변화는 사소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커플 자전거를 타고 싶은데……


아들이 태어난 뒤 곧 4년이 되어가는데, 자유의지가 발휘되지 못하는 많은 상황 속 갈등은 더욱 커져만 갔다. 같이 자전거를 타는 커플을 보니 부럽기도 하고,,,,빨리 아들을 더 키워서 셋이 같이 타거나, 아이를 맡겨둔 뒤 둘이 다시 타는 그 날을 생각해본다. 연애시절, 서울 숲에서 신나게 자전거를 타던 때가 생각나기도 하고….


둘이 자유롭게 자전거를 타는 것도 ‘당연한 일’이 아님을 육아를 하며 느낀다. 그리고 엄마 생각이 난다. 연년생 오빠와 무척이나 극성스러웠다고 전해 들었는데, 그 느낌이 과거에 비해 생생히 느껴진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있어야 한다는데, 나는 혼자 일 때도 독립을 잘 못했었는데 ‘4살’이 넘은 사내아이를 데리고, 홀로 자립해보겠다고 아무도 없는 이 곳으로 이사를 왔으니..가끔 나의 선택은 정말 비합리적이고 똘끼충만하다.


이미 여러 번 그런 선택을 한 것 같지만, 아마도 그게 ‘나’겠지. 어렵고, 이틀에 한번 꼴로 지랄 대마왕이 찾아와 남편과 아들을 잡고, 엄마에게 하소연 하지만 그 와중에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3개월, 100일, 길고도 짧은 시간. 연애를 할 때 ‘100일 기념’은 의미 있는 행위이다.

적당히 잘 알 것 같으면서도 서서히 실망하고 모르겠는 100일. 그 삼 개월이 지나왔다.

백수 100일. 중간에 뛰쳐나가고 싶은 욕구가 수없이 몰려오고, 울고 불고 난리치며 버텨온 지난 100일.

그 100일 동안 나에겐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뒤돌아 보면,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지난 100일,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2가지를 해내다


살면서 ‘두려움’이라는 단어와 감정을 마주칠 때가 종종 있다. 공통적으로 두려움을 갖는 대상도 있겠고, 개별적으로 각자의 기질, 경험 등에 의해 두려워하는 것도 있겠다. 나에게도 몇 가지 두려움을 느끼는 장소, 대상, 과업 등이 있는데 그 첫째는 ‘육아’이며 둘째는 ‘운전’이다.


백수 100일 동안 나는 이 두 가지를 해냈다. 아직 완성형은 아니지만, 시도하고 잘 해나가고 있다는 게 맞는 표현이겠다. 내가 잘하는 것, ‘시도하고 도전하는 것’, 내가 어려워하는 것, ‘지루하고 답답한 상황을 버티고 인내하는 것’. 100일의 시간 동안 끊임없는 번뇌 속 여전히 잘 버티고 있다.


예전에 커리어관련 분석 등을 할 때 싫어하는 직업 1위에 농부와 전업주부를 쓴 적이 있다. 그 이유는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일 것 같아서라고 적혀있었다. 사실 그건 나의 선입견에 불과하다. 농업이나 가사, 육아 등 얼마나 창의적으로 해야 하며 새롭게 할 일들이 많은데, 표면적으로 보여진 그 이미지가 내겐 그렇게 느껴졌다.(특히나 이 두 직업의 공통점은 ‘꾸준함’에 있겠다.)


잘 나가는 친구,후배 커리어우먼들 보며 부러워하기도 하고, 살림의 여왕처럼 육아와 살림을 멋지게 해내는 지인들을 보며 나를 ‘탓’하기도 했다. 공부와 일을 잘 병행하는 남편을 시기와 질투의 눈으로 보며 싸움을 걸기도 했지만, ‘그 자리를 지켰다.’


나에게 제일 어려운 것, ‘꾸준히 자리를 지키는 것’. 누군가는 그깟 100일, 이라고 하겠지만, 나에게는 대단하고 ‘엄청난 100일’이다.


이 자신감으로 8월말까지 다시 전진하겠다.(여전히 불협화음과 불안감과 주변을 보며 헛걸음치고 있지만 아들 유치원 잘 적응시키고, 아들친구와도 잘 놀며, 요리와 살림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불협화음의 갭이어(gap year)속 미세한 진동을 느낀다


6월14일, 어제(6월13일)이 백수 된 지 100일째 되는 날이다. 틈틈이 글을 쓰고 있지만 여전히 좌충우돌이다. 특히나 결혼 7년차로 남편과의 갈등이 나날이 심해지고 있다. 권태기인지 소통의 부재인지 몰라도 그 강도가 점점 세지니 뭔가 수가 필요하다. 어제 선거날을 맞이해 투표 후 기분좋게 길을 나섰다가, 아들이 잠든 차 안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언성이 높아졌다.


특히 ‘상의’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 하던 중, 나는 충분히 나의 ‘갭이어 프로젝트’에 대해 안내를 하고 설명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남편은 내가 내 맘대로 ‘통보’했다고 한다.


나는 수시로 카톡이나 구두로 상세히 이야기를 했는데 그런 말을 듣고 나서는 어이가 없었다. 허나, 남편의 입장에서는 아예 처음부터 ‘갭이어 프로젝트’를 하려고 하는데 해도 될까? 에 대한 '동의'를 이야기 하는 것 같다. 물론 우리 사이의 대화 패턴이 늘 그러했지만, 내가 그런 이야기를 아마 했을 거다. 그때마다 남편은 ‘그래, 알아서 해”라고 답을 하기에 나는 동의의 OK인 줄 아는 거다. 정말 반대를 하고 싶거나 의견을 냈다면 고려 했을 수도 있지만(남편 말로는 하고 싶으면 하는 성격인데 반대 했어도 했을 거라고…)지레짐작으로 늘 그러려니 하고 상대방이 OK를 했기에 동의를 얻었다 생각했다.


뭐 불협화음은 이뿐만이 아니다. 야심차게 목차를 다 세워놨지만, 현실적으로 다 하기도 어렵고 2시40분이면 아들 하원~자기 전까지 함께 있기에 PC를 켜기도 쉽지 않다. 글을 써 본 사람은 알겠지만, 한 개의 포스팅을 위해 투여되는 ‘시간’도 만만치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하느냐, 뭘 위해 하느냐고 질문을 할 것이다. 스스로도 그렇고 독자도 그렇고. 가끔씩 자문자답 해보면 떠오르는 건 하나다.


‘치유의 글쓰기’ 마치 배설하듯 써내려 가는 글과 그 안의 감정들이 나를 숨쉬게 한다. 옴짝달싹 못 하는 현실 속 나는 종이 위에서는 자유롭게 춤을 춘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 내가 숨 쉴 수 있고, 또 다른 에너지를 얻을 수 있기에.




JEJU행 비행기표를 끊다


신중한 사람들과는 조금 거리가 먼 나는(가끔 신중하기도 하다) 뭔가 질러서 일을 진행하기도 한다. 버킷리스트 10번 ‘여행’편을 위해 SELF 여행을 영국(22살 때 워킹홀리데이로 가고 싶었으나 부모님 반대로 못 감), 일본(가깝고 편함) 등 고민하다가 순간 제주(JEJU)가 떠올랐다. 일단 친정 엄마한테 원하는 날짜에 아들 케어가 가능한지를 먼저 확인한 후 OK싸인을 받은 이후 숙소부터 예약했다. 4박 5일의 에어비앤비. 내 이름으로 된 신용카드가 없어서(하나 있는데 국내전용) 남편이름의 신용카드로 예약을 하는데,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계속 에러가 나는 거다.


애 낳고 애 키우느라 너무 멍청해진 건 아닌가 하고. 몇 년 전에도 스스로 제주도행 비행기 표를 끊고 무사히 잘 다녀왔는데 갑자기 머리가 빈 건지 사소한 일들을 처리하는 게 어렵다. 아마, 자주 하지 않아서 숙달되지 않아서인데 그것을 ‘능력’으로 자동적으로 결부시키니 ‘위축’이 되는 거다. 그래, 그런 감정을 끊어내기 위해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는 걸 기억하고 천천히 다시 해본 뒤 결국 예약 성공. 그리고 다음날,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최종 결제까지 마치고 나니 뭔가 해냈다는 기분이 들었다.


사소하지만 누군가가 대신 해줬던 일들을 다시금 스스로 하는 행위들을 통해, 작은 성취감을 느낀다.


남편에게 숙소예약 전에, 4박5일간 제주도여행을 혼자 간다고 카카오톡으로 말을 했는데, 퇴근 후 아들과 가는 거 아니냐고하며 ‘대박’이라고 한다. 역시 당신이라는 사람은 대충 보고 흘리는 무심한 게 장점이자 단점이지. 조금 빈정이 상하다가 신경 쓰지 않고 마음을 추스린다.


아들을 데리고 갈까 끝까지 고민했었지만, 이건 ‘날 위한 여행’이기에 홀로 표를 끊었다. 끊은 뒤로도 취소하고 다시 예약해야 하는지의 충동이 몰려오지만, 굳건히 취소하지 않겠다. 에어비앤비 예약을 하고 추천된 리스트에는 ‘제주 원데이 클래스’가 많았다. 서핑 클래스, 요리, 요가, 밤문화 등…..와우…신난다. 이번에는 렌트를 해서 돌아다닐 건데, 조금 걱정되기도 하지만 ‘도전’이다.


8년 전쯤 첫 번째 이직이 결정되고 잠시 다녀온 제주에서 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게스트하우스에 묵었고, 올레길을 걸었다. 이번에 홀로 가는 제주는 렌트를 해서 자유롭게 가고자 하는 곳을 ‘스스로’ 돌아다닐 것이며, 마음에 드는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하리라.


(순간순간 아들이 떠오르며 죄책감이 들기도 하겠지만….널 위한 일이라고 합리화하며…이 엄마는 떠나리라….)



<아들과 지지고 볶은 100일 간의 추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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