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93일
[투루언니의 육아살림생활기] 아이와 긍정적인 애착을 형성하고, 잊고 있던 소중한 일상을 발견하고, 쉼을 통해 다음 스텝을 그려보기 위한 투루언니의 재충전.
<투루언니의 코칭 퀘스천>
Q)결혼, 육아, 엄마 등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이미지는 어떤 것이 있나요?
Q)포기하고 선택하지 않고 다 가질 수 있기 위해선 어떤 도움이 필요한가요?
Q)성별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요?(어떤 일을 하고 싶나요)
오늘은 현충일. 백수 이후 휴일의 연속이라 달력 속 빨간날이 크게 와 닿지는 않는다. 오히려 온 가족이 쉬는 날이기에 할 일이 더 많아지는 느낌도 없잖아 있다.
결혼 이후, 휴일은 모두 같이 보내야 하는 일상의 반복이 때론 즐거우나 때론 지겹기도 하다. 홀로 떠나거나, 고요히 독서하고 싶은 욕구는 잠시 뒤로 하고 단체의 일정에 맞게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나만 이런다면 할 말 없고~) 모두가 잠든 시간, 자투리 독서를 했다. 참 시기 적절하게 잘 맞는 책을 빌려왔다.
역시 나의 안목은 멋져!
부제로 소녀들을 위한 페미니즘 입문서라고 되어 이는 책이다. 17년 1월 16일에 초판 1쇄가 나와 17년 8월 30일에 초판 3쇄를 찍었으니, 지금은 좀 더 찍었겠지. 12명의 저자가 공저로 쓴 책에 페미니즘/모성/외모 지상주의/대중문화/온라인과 여성혐오/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성 정체성/몸과 성/노동/과학/환경 등 카테고리 별로 각 저자의 내용이 담겨 이는 책이다. 이 중 아무래도 ‘모성’부분이 와 닿는 건 지금 내가 처한 현실과 가장 유사하고 중요도가 크기 때문이겠지.
*책구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1546803
가끔 내 심정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는 글을 볼 때면 정말 반가운 마음에 밑줄을 죽 긋고 옮겨 적기도 한다. 지난 주말 오랜만에 아이를 위해 화해모드로 들어가 남편과 이야기를 하던 중,
내년 마흔을 앞두고 마지막 서른의 몇 달 동안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가 없냐고 물었더니 남편이 하는 말이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없어, 나는 30대에 하고 싶은 건 다 해봤어. 여행도 가보고, 이직도 하고, 결혼도 하고, 아들도 있고, 공부도 하고 커리어도 뭐 괜찮고…..”
후회가 없다는 사실에 1차적으로 부러웠고, 그런 것들이 가능할 수 있는 숨은 이유를 몰라주는 것 같아 2차적으로 야속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이제는 조금 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위해선 누군가의 ‘숨은 노력'과 '헌신’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지금 나의 갭이어도 남편의 숨은 노력이 있어서 가능한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찝찝한 마음을 감출 수는 없다.
나의 30대는 후회투성이, 실패와 지뢰발의 연속인데 어찌 그의 30대는 원하는 것을 이루고, 성취한 30대로 스스로에게 평가 받을 수 있는지 궁금했다.
물론, 그의 부단한 노력과 열심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드는 것인지가 그저 궁금했다. 나 ‘개인’의 문제인지, ‘사회 구조적’문제인지 말이다. 좀 더 독했다면, 좀 더 이기적이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여러분은 이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을 몰랐습니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으니까요. 어디서도 읽거나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저는 분노했습니다. 왜 소녀들에게 엄마가 되는 일에 대해 가르치지 않을까. 이토록 치명적인 함정을 그대로 두고 네 꿈을 펼치라는 말만 할까.
아이에 대한 사랑과 직업적 성취 사이에서 자아가 찢기면서 날마다 울었습니다. 남편을 원망하고 미워했습니다. 내가 내 경력을 만신창이로 만들면서 고통받을 때, 남편은 아무것도 잃지 않았습니다. 같은 학교에서 같이 공부를 하고 같은 직업을 갖고 있는데, 저는 만신창이가 되고, 남편은 아무런 손실도 입지 않은 채 어엿한 4인 가구의 가장이 되었습니다. 남편은 제 모성애로부터 막대한 수혜를 입었습니다. 남성이라는 것 자체가 이토록 강렬한 권력이라는 것을 저는 철저하게 깨달았습니다. 모성애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서 아이를 24시간 어린이집에 맡겨도 괜찮으면 좋으련만, 도저히 그렇게는 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대부분의 엄마가 경력 단절 여성이 되는 이유이고, 절차입니다. “
_by 한국일보 박선영 기자 <소녀,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 中
이 책을 보니 조금 위로가 됐다.
이것은 비단, 나만의 인식과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요즘 내 주변 친구들을 보면 정말 너털웃음이 나온다.
하루는 친구가 이렇게 살아야 하냐고 전화가 오고, 하루는 내가 이렇게는 못살겠다고 전화를 한다.
20대 시절, 꿈과 야망으로 빛나던, 열심과 노력으로 승승장구하던 우리 친구들은 삼십 대 중반에 들어서며 결혼과 출산의 변화 이후 ‘갈림길’에 서 있다. 20대 까지는 남자 동지들과 크게 다른 게 없다고 느꼈었는데 20대 후반~30대 들어서며 ‘결혼’ 이후에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건 유사하다. 이유가 뭘까. 궁금하던 찰나, 책 속 저자의 이야기가 또한 위로가 됐다.
“여성은 선택을 해야만 한다는 생각은 잘못됐습니다.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남성은 아무런 고민 없이 직장과 가정을 병행하는데 왜 여성만 ‘직장이냐, 가정이냐’양자택일을 해야 할까요. 남성도 아빠로서 엄마와 동등한 육아와 가사의 부담을 지도록 사회, 문화가 강제하고, 남녀가 함께 가정과 직장을 모두 누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지, 왜 여성만 포기할 수 없는 두 가지 사이에서 괴로워하거나, 결혼과 출산을 기피해야 할까요. 남성에게 그렇듯, 여성에게도 두 가지 모두 필요한데 말이지요.
우리는 양자택일의 선택을 거부해야 합니다. ‘나는 다 가질거야.’ 라는 태도로 뻔뻔하게 선택을 거부해야 합니다. 그 선택이 출산의 진통보다도 고통스럽다는 것을, 어느 쪽을 선택해도 괴롭다는 것을 세상은 모릅니다. 이 틀을 부수지 못하면 오늘날의 엄마들이 아무리 죽을힘을 다해 딸들을 키워 낸들, 딸들 역시 엄마가 지나온 길을 그대로 밟을 수밖에 없습니다. 악순환은 끊임없이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다 가져야 합니다. 다 가질 수 있습니다. 엄마 세대로서 저는 제 딸 세대가 엄마가 되기 위하여 일을 그만두거나, 일을 그만두기 싫어서 엄마가 되는 것을 포기하는 걸 원치 않습니다.
모성이라는 것은 여성이 남성과 평등해지기 위해서 넘어야 하는 가장 높은 산봉우리 입니다. 모성과 부성이 부모애라는 이름으로 동등해질 때, 여성은 엄마가 되는 것과 되지 않는 것 사이에서 진정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모성 신화를 깨뜨리자고 주장하는 대신, 아빠를 엄마의 자리로 끌어들이자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무릎이 꺾일 것 같은 이 짐을 남성과 함께 나눠 지자고, 이것은 힘들기는 하지만 황홀한 고통이라고 설득하고 싶습니다.
모성이라는 말이 쓰이는 모든 자리에 부모애라는 새로운 말을 넣을 수 있다면, 거기엔 어떤 차별도 억압도 없이 아이가 마땅히 누려야 할 온전한 사랑만 남으니까요”
_by 한국일보 박선영 기자 <소녀,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 中
“그래, 애는 엄마가 키워야지.”
시댁 모임에서 아이를 봐 줄 사람이 없어 회사를 그만두고 보게 됐다고 하자 시어머니가 한 저 말.
“그런가?” 라고 받아들이려는 무의식에 이 책은 다시금 질문을 던진다.
시어머니가 육아에 도움을 주지 못해 내가 그만뒀다는 식의 피해의식이 있었다. ‘엄마’로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해봐야 한다는 죄책감과 뒤늦은 열의도 있었다. ‘변화의 시기’에서 ‘선택’해야 한다는 압박도 있었다. (그래, 내가 이상한 게 아니고, 나의 인식이 잘못 된 게 아니라고.)
남편 또한 ‘엄마는 00 해야해’라는 강한 엄마의 인식이 마음 속에 있기에 우리는 아이를 낳은 이후 갈등해 왔다. 이사 문제로 심하게 다툰 날, 친정부모님 앞에서 중재를 요청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아빠가 정곡을 찔렀다.
“지금 문제는 자네는 둘 다 일하는 것 보다 자네가 일 해서 가정을 책임지고 육아 등을 하면 좋겠다는 입장이고, 우리 딸은 둘이 일을 하면서 육아를 같이 하는 전제로 말을 하는 것 같네.”
그게 '차이'였다.
물론, 결혼 이후 나의 태도도 문제였다.
내 맘 속 모성신화에 사로잡혀 “00하면 이럴 것이다~”라는 여러 가지 카더라 들이 잘못된 선택을 하게 했고, 그 선택이 마음에 들지 않은 나는 ‘책임지는 자세’보다는 투덜이 스머프로 남편에게 이야기해 왔다.
남편의 인식 속 나는 변덕이 심하고, 사회생활을 잘 못하는 사람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 남편이 한 말이 기억난다.
-----------------------------------------------------------------------------------------------------------
남편: “9월 부터는 뭐 할거야?
나: “다시 일 할건데.”
남편: “힘들텐데…회사에 적응 못 할텐데, 회사 스타일이 아닌데…”
나: “글쎄.”
-----------------------------------------------------------------------------------------------------------
이 질문은, 나를 위한 걱정인지, 본인을 위한 염려인지는 모르겠다.
나 또한 마음 속 갈등이 수시로 계속되겠지만 9월부터는 뭐라도 할거다. 다시 사회로 발을 디디며, 이번에는 좀 더 신중하게 선택 후 책임지는 자세로, 말보다 행동으로 ‘파트너’로서의 길을 갈 거다. 이건 나의 다짐이기도 하다.
사표내기 직전, 아니 낸 이후 나의 행동을 설명하던 중, ‘등,하원 도우미도 구하기 쉽지 않고, 하루라도 결근하면 누군가 땜방 해야 하는데 우리 회사는 그런 회사가 아니라는 남편에 피해주기 싫어 내가 포기한 거야,'라고 하니 남편이 한 말이 아주 기억에 생생하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 지는데 구해보려고도 안 했잖아.’
그래, 상대방의 관점으로는 내가 유약하고, 시도도 안 하고, 쉽게 포기한 걸로 비칠 수도 있겠다.
그래서 9월 이후 취업통지서를 받고는 나도 우아하게 말하려고 한다.
“등,하원 중 하원은 내가 구해볼 테니 등원은 한 번 구해봐. 나는 00부터 출근해야 하니까 그때까지 못 구하면 휴가를 내건 시어머니를 오라고 하건 알아서 해~
*참고로 우리 남편은 비교적 동시대의 남편들보다는 육아에 많이 참여하고 있다.
오죽하면 아이 낳고 대상포진도 걸리고 주말이면 아침잠이 많은 나를 위해 항상 먼저 일어나 아침도 준비하고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도 가고 많이 했다. 답답해하는 날 위해 커피숍으로 나를 보내고 육아를 도맡아 하기도 했다.
물론, 다 안다. 그래서 나도 그 고마움에 애가 어리지만, 본인의 필요성을 위해 ‘대학원’도 갈 수 있게 동의해 줬다. 남편은 이 말에도 어이없어 했지만. 본인 의지로 간 거지 누가 누굴 보내준 거냐고…이걸 가지고도 한참 싸웠다.
ㅎㅎ 본인이 독박육아 한다고 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결국 결과적으로 보면 그는 다 누려왔다. 나는 내려 놓았고. 나의 선택 이면의 여러 '갈등의 문제'를 그는 짐작하지 못한다.
다만, 내가 철이 없고, 끈기가 없고, 부적응자라고 생각할 테니까 여전히.
남편은 내 글을 잘 읽지 않으며, 읽어도 본인을 비난하는 줄 알고 기분 나빠 할 것이다. (아니 한다.)
나는 누구를 비난하는 것이 아닌 팩트, 현재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밝혀둔다. 또한 남편에게도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있음을 전하고 싶다. 남편, 남성, 가장, 아빠로서의 어깨의 무거운 짐을 잘 알고 있다. 그들 또한 하루 하루 부단히 애쓰고 노력하고 고군분투 하고 있음도 잘 알고 있다. 이것들이 개개인의 문제라기 보단, 우리 사회에서 변화해야 하는 그 과도기에 우리가 놓여있음을.)
“여성의 선택은 일과 가정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될 것이냐, 되지 않을 것이냐 사이에 있습니다. 누구나 엄마가 돼야 한다는 압박에 맞서 여성은 싸워야 합니다. ………
백합이 아름답냐, 장미가 아름답냐를 두고 논쟁할 필요는 없습니다. 취향이고, 선택일 뿐입니다. 다만 그것은 여성의 선택이어야 합니다. 온전히 여성 자신의 선택이어야만 합니다. 아이 없이 자유롭게 인생을 펼쳐 나가는 것도 용감하고 멋진 삶이며, 아이를 키우며 세계의 구조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멋지고 용감한 삶입니다.
소녀들이여, 그대들은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고, 선택해야 합니다. 소녀들이 모성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세상을 우리는 꿈꿔야 합니다. 그래서 소녀는 엄마가 되는 것이 어떤 일인지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엄마가 되기 위하여, 혹은 되지 않기 위하여.
_by 한국일보 박선영 기자 <소녀,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