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265일, 이제는 슬슬 즐기는 건지도 모르겠다 냐하하하~~~
[투루언니의 육아살림체험기] 아이와 긍정적인 애착을 형성하고, 잊고 있던 소중한 일상을 발견하고, 쉼을 통해 다음 스텝을 그려보기 위한 투루언니의 재충전.
<투루언니의 코칭 퀘스천>
Q) 선택과 집중의 관점으로 목표(꿈)을 이루기 위해 버려야 할(습관) 단 한가지는 무엇인가요?
요즘에도 가끔씩 사람인을 들락날락하고 있는 나. 지지난주 몇 군데 사람인 지원을 했다. 다음날, 한 곳에서 하반기 경력 공채 서류합격 문자 메시지를 받았고, 수시채용이 아닌 [공채]라는 사실에 괜시리 설레고 걱정을 했다.
면접은 1주일 정도 지난 뒤 과제와 함께 날짜를 공지해 준다고 하였다. 경력직 채용에서 과제를 낸 건 참 생소한 건데 일단 나에게 찾아온 <기회>라고 생각되니 잡기로 했다.
문자 메시지가 왔고, 회사의 해당 제품 2개 중 1개에 대한 마케팅 계획안을 작성 해오라는 과제였다. 면접 전날 자정까지 과제를 제출하고, 면접 당일 발표한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1년 계약직 후 평가 뒤 정직원 전환이라는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괄호 옆에 90% 이상 정직원 전환, 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사실, 지금까지 네 곳의 회사를 다녔지만 정규직이 아닌 곳을 간 적은 없고, 계약직을 갈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마음이 급해지니, 이것 또한 <기회> 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별력이 흐려졌다.
과제 때문에, 면접을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수시로 고민을 하고...(면접을 보려면 수원에서 또 엄마가 와서 애를 봐줘야 하기에... 이래저래 민폐....) 고민하는 나를 보며 남편은 짠해하고....(굳이 그런 조건인데 봐야겠냐....)주말 간의 고민 후 일단 GO 하기로 결정한 뒤 면접 2일 전부터 과제를 시작했다.
온라인 홍보, 마케팅 직무를 한건 맞지만 전적으로 마케팅만 100% 한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일단 해보자는 심정으로 PPT를 작성하는데..... 지난 월요일에는 동네 커피숍에 가서 종이에다 아이디어를 확 나열하고, 10년 전 마케팅 책도 좀 보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과제 제출 디데이 하루 전에는 아들 등원시킨 뒤 PPT를 열심히 만들었다. 그런데... PPT를 만들면, 만들수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난 정말 PPT를 못 만드는 사람이구나 ㅎㅎㅎㅎ 이게 내 길이 아닌가 봐....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마감을 지키기 위해 스트레스를 왕창 받으며.... 일단 초안을 완성.
월요병으로 피곤했던 남편에게 화요일 저녁 10시 즈음 PPT 수정을 부탁했고, 남편은 수정을 하면서 군데군데 빵빵 터지는 웃음을 보이며 빠르게 수정을 했다.
남편: "근데, 왜 대형서점에 팝업스토어를 하는데 타겟이 30대 남성이야?"
나: "그냥.. 왠지 회사원들이 많을 것 같아서.."
남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이건 당최 내가 생각해도 비논리적이며 근거가 없는 것이지만, 그냥 그럴 것 같다~카더라로 과제를 했다.
특히 마케팅 예산 이런 부분은 그냥 때려 맞추기 식으로 금액을 넣었는데, 원가를 계산해서 수정까지 해줬다.
역시, 내 길이 아닌가 봐... 그래도 찾아온 기회니 이번에 해보고 떨어지면 <조직>은 내 길이 아닌 걸로...
11시 59분에 어렵사리 과제를 제출했다. 그리고 수요일 당일, 아들 등원시킨 뒤 막바지 연습을 하고 면접 장소로 향했다.
하필, 더럽게 추운 날이었다. 집 주변만 왔다 갔다 했던 동선에서 갑자기 전철을 타고 1시간가량 이동을 하니 몸이 찌뿌둥하니 컨디션이 안 좋았다. 그것도 경의선을 타고 가는데, 왜 이렇게 날씨는 춥고 전철을 안 오는 건지....목적지에 다다르고 30분 일찍 도착했기에, 따뜻한 카페라테 한 잔 시키고 마지막 연습 및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면접시간 30분 전 도착안내 문자를 받고 사무실로 올라갔다. 전 그룹 면접이 진행 중이었고 회사에서 요구하는 이런저런 페이퍼를 쓰고 있었다. 비전을 중시하는 기업이긴 하나, 너무 많은 것을 묻는 것에 좀 빈정이 상했다. 그리고 사실 면접을 보러 간 것도, 나 또한 회사를 평가한다는 입장으로 시간 내서 간 것이기에 나는 화장실도 갔다 오고 환경과 사람들을 살폈다.
직원 복지에 인색한 것을 개인적으로 싫어하는데, 화장실을 가보니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당번을 정해 청소하는 뉘앙스였다. 이런 회사들을 몇 알고 있기에 나는 이마를 찌푸렸다. Oh my god~~
면접이 시작됐다. 경력직임에도 면접은 떨린다. 지원자 3명과 면접관 3명이 마주 보고 하는 면접이었는데 경력직에 이런 식의 면접은 거의 처음이었다. 내 앞에 있는 면접관들을 봤다. 나보다 어린 걸로 추정되는 사람들도 있었고.... 젊은 기업이라 CEO도 내 연배로 보였다.
나는 최선을 다해 자기소개를 한 뒤 면접관들 앞에서 멋지게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이런저런 질문들 속 대답을 하고.... 1시간가량 진행된 면접을 마친 뒤 집으로 향했다.
그날따라 갑자기 영하권으로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했는데, 5시 넘어서 집으로 오는 전철 안에서 모든 에너지를 다 소진한 사람처럼 극심한 피로가 몰려왔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이제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할 때구나. 10년 전처럼 내 안의 열정을 자소서에 썼지만, 내 몸은 그만한 열정을 감당하기에 많이 노화됐구나..... 매우 피로하고..... 날씨의 영향을 받는 내 관절들을 이제 인정할 때라고 생각됐다. 20대처럼, 마음먹으면 다 할 수 없는 환경과 나이구나..... 그래, 받아들이자.....
그리고 합격자 발표가 나기까지의 2~3일 동안 나는 기분이 매우 안 좋았다.
내 나이 또래의 면접관들 앞에서 면접을 본 것도 기분이 나빴고, 계약직이라는 조건을 알면서도 면접을 보러 간 나 또한 의아했고, 또 누군가에게 평가받는 입장이 된 것에 짜증이 났다.
사실 더 정확한 표현을 하자면 이런 시간들 속 스스로 느껴진 감정은 '초라함'이었다.
이렇게 까지 해서 일을 하려는 목적은 정확히 무엇이며.... 만약, 출근을 하게 된다면 왕복 2시간여의 시간 소요될 테고 입사일이 12월 초라, 합격한다고 하면 등, 하원 도우미는 어떻게 구할 것이며....... 만약, 합격했다 치더라도 나는 쌩쌩한 젊은 친구들과 경쟁해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지.... 수만 가지 걱정 근심이 몰려왔다.
참 이상했다. 그 이전의 나는, 내 실력이 부족하더라도 좋은 기업에 취직이 되면 목숨 바쳐 일하며 따라잡겠다는 마음이 컸었기에 '상향지원'을 많이 했었는데, 지금의 나는 '하향지원'했다고 생각하는 곳에서의 앞날에 대해서도 스스로 자신이 없어졌다. 그런 내 모습을 마주하는 것이 생소하고 조금은 서글펐다.
여러 가지 감정 속 시름시름 앓고 있던 중 금요일 저녁 6시 즈음하여 문자가 한 통 왔다.
그것은 바로 <불합격> 메시지였다. 약간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가 무너진 순간 마음이 후련했다. 앓던 이 가 빠진 기분이랄까........ 차라리 잘 됐다. 붙었더라도 못가는 상항을 어떻게 말해야 하나 말도 안 되는 고민을 하기도 했던 순간이 정리됐기 때문이다.
예의를 가지고 메시지를 보낸 회사에는 감사하며, 나와의 인연이 아닌 걸로 생각하게 되어 감사했다.
그리고 스스로, 이번에도 불합격한다면 습관적으로 조직으로 다시 들어가려는 나를 점검하고, 정말 해보고 싶은 것들을 도전해보자는 다짐도 했기에 약간의 방향이 잡히는 것도 같은 시간이었다.
사실, 이번 면접을 남편은 말렸다. 떨어질 것 같은데 굳이 시간낭비, 에너지 낭비하지 말고 좋아하는 일을 하라며..... 굳어진 머리고 꾸역꾸역 과제를 하고 PPT를 만드는 나를 보며 짠해하며 이런 말을 했다.
"만약 붙더라도, 못 하는 것을 또 혼나면서 배우고 할 바에야 잘하고 좋아하는 걸 하는 게 날 것 같은데... 그래서 내가 창업을 하라는 건데...."
그래, 어쩌면 남편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간의 남편의 말들을 약간은 고깝게 받아들여 방어적으로 대해왔었다. 어떤 말들을 하면 "그래 당신은 대기업 다니니까.... 과장이니까.... 00니까..."라는 말들로 상대방을 비하하고 빈정 거리기도 했었다.
하지만, 까놓고 나를 가장 사랑하고 이해하고 나의 성공을 바라는 사람은 바로 '남편'인데 그의 말을 나는 너무 가볍게 흘려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일단, 이번 도전을 계기로 되도록이면 무의미한 '묻지마 지원'은 더 이상 하지 않겠다.
그리고 내년을 준비하기 위해 시급한 건 '체력'을 만드는 일이기에, 이번 겨울은 몸 관리에 치중하겠다.
그렇게 몸을 다져 놓고 나서 나의 미래, 진로, 삶 등에 대해 다시 진지하게 하나하나 풀어나가야겠다.
갭이어가 잘 마무리되고, 아들과의 관계도 좋아졌지만 몸과 뼈가 망가졌기에 겨울잠을 자는 동물처럼 개인적으로 동면 준비를 해야겠다. 그리고,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다른 무언가를 향해 따뜻한 봄이 왔을 때 다시 시작하련다.
글 쓰는 것이 너무 좋지만, 손목에 무리가 많이 가기에(손가락도) 동면 기간 중에는 최소한으로 글을 써야겠다.
10~11월에 가장 잘한 일은 '높은 뜻 정의교회'에서 진행한 <친밀한 부부학교>를 수료한 일이다. (21기로) 결혼한 지 5년 정도 이상 된 부부들에게 리프레시 및 재교육을 하는 프로그램인데, [결혼-출산-육아] 등으로 힘겨운 시기에 딱 필요한 과정이기에 남편을 협박(?) 성으로 설득해 어렵게 수료할 수 있었다.
그 프로그램에서 배운 많은 것들 중 남편을 위한 '헌신'을 해야겠다고 다짐했기에, 이번 주말은 내가 하고 싶은 것 이후 가족을 위한 시간을 냈다.
그 첫째로 며칠 전부터 냄비 버리고 새로 사자는 남편의 말이 떠올랐다.
사실, 그간은 남편이 냄비를 닦았고 나는 냄비에 별 신경을 안 쓰고 살았었다. 그런데 너무 많이 탄 냄비가 몸에 안 좋을 것이라는 남편의 말에 엄마한테 물어보니, 스댕냄비는 닦으면 새 것이 된다고 하기에 버리긴 아까워서 인터넷으로 찾아서 닦아봤다.
깨끗한 곰국 냄비에(한 번도 끓인 적이 없기에..ㅎㅎ) 베이킹소다를 넣고 끓인 뒤 해당 냄비들을 넣고 20분씩 끓이고 수세미로 닦았다.
총 3개의 냄비를 닦았는데 내가 이 '행위'를 하고 있는 모습도 신기했지만 거짓말처럼 깨끗해진 냄비를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를 뿌듯함과 도전의식도 생겼다.
'살림'이란 녀석도 찬찬히 들여다보고 하다 보면 정들고 익숙해질 것도 같았다. 그 또한 '가족'을 위한 보이지 않는 헌신과 사랑이라는 것도.
얼마 전에 뒤돌아서도 할 일이 많음에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 온 적이 있었다.
좋은 엄마 노릇하려고 아들과 놀아주고 간식도 만들어주고 튀김에 고구마 맛탕에.... 씻기고 재우니 9~10시. 좀 쉬려니 돌려놓은 빨래를 널고 개고... 그리고도 쌓여있는 설거지.....해도해도 끝이 없는 설거지...
아아아 아아아아!!!!! 악!!!!!!!!!
왜 이런 것들을 몰랐을꼬 하니, 그간 이런 사소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당연한 일들을 누군가 항상 대신해줬기 때문이라는 간단한 사실을 알게 됐다.
학창 시절, 꿈을 향해 달려가던 시절에 나의 원대한 꿈을 지켜주기 위해 부모님이 그 역할을 대신했고, 결혼 이후에는 그 꿈을 지지해주기 위해 남편이 최선을 다해왔다는 사실도.
넓은 집으로 이사 가면 식기세척기와 건조기를 꼭 사는 걸로 다짐을 하며.... 살림살이를 마무리했다.
사실,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만 된다면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해왔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의 범주에는 <말과 글>이 통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봤고, 지금까지 살아온 내 경험이 어떤 콘텐츠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사실, 아직도 앞이 보이지 않고 희뿌연 안개가 가득하지만, 뭔가 하나하나의 힌트를 받으며 최종 목적지를 향해 가는 느낌이다.
오늘 아침은 참으로 행복했다.
지난 몇 년간 항상 나보다 일찍 일어나 아들과 놀아주고 아침 볶음밥을 해주던 남편 대신에, 내가 먼저 일어나 남편을 더 자게 하고 아들과 아침을 시작했다.
아들은 연말에 발표회 때 할 노래들이라고, 유치원에서 배운 노래들을 율동과 함께 불러주는데 그 모습이 너무 예뻤다.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아이들 크는 모습이 참 예쁘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건가 잠시 뭉클하기도 했다.
아들과 함께 커가는 이 시간도 참 소중하고 귀한데, 나의 불안과 조급증은 어디론가를 향하게 만들다.
언젠가, 세월을 돌이켜보면 사실 이 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황금기인 행복한 순간으로 기억될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심호흡. 여유를 갖고 하루하루 주어진 과제들을 하나하나 해 나가 보자.
너무 큰 미래, 성취 등에 사로잡힌 불안 속 강박이 아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