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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224일, 눈물의 설거지

한바탕 눈물을 쏟고 나면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by 제니

[투루언니의 육아살림체험기] 아이와 긍정적인 애착을 형성하고, 잊고 있던 소중한 일상을 발견하고, 쉼을 통해 다음 스텝을 그려보기 위한 투루언니의 재충전.

<투루언니의 코칭 퀘스천>

Q) 내가 인정하는 것은 '존재'인가요 '성취'인가요?



이제 하원 모드 굿바이 하나 싶었는데


아마 8월부터 시작한 태권도(적응시키는 데 뒤에서 한 달 정도 같이 있었지 ㅎㅎ) 이제 3시 30분 반으로 옮기기로 결정하고, 오늘부터 학원 셔틀버스로 픽업해서 곧바로 태권도 학원으로 이동하면, 나는 끝나는 시간인 4시 20분에 데리러 가기로 계획 세웠었다. (었다의 의미는 뭔가 일이 틀어진게지 암.)

주말부터 엄마가 데리러 오면 안 되냐고 이야기를 하고, 아침에도 엄마가 오면 좋겠다 해서 알아듣게 잘 설명했다. 아침 등원 길에 즐겁게 등원시키고 나오려는 찰나, 아들은 태권도 차 안 탄다고 이야기하긴 했지만 잘 설명하고 집으로 왔다. 환기를 시키고 오래간만에(?) 청소기를 돌리려는데 전화가 왔다. 아들의 담임 선생님이었다.


선생님: "어머니, 00가 등원하자마자 지금까지 울고 있어서요.. 태권도 차가 데려오는 게 싫다고 계속 우는데
요 적응할 동안에 어머니가 같이 오셔서 가는 건 어떨까요?"
나: "아 네네 알겠다고 해주시고, 그래도 울면 다시 전화 주세요."


이건 또 무슨 소리인 건가. 내가 등원시킨 지가 30분이 훨씬 지났는데 말이다....

이제, 뭔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기대감과 설렘이 가득했던 내 마음은 순간 걱정과 죄책감으로 바뀌어갔다. 충분히 설명했다고 생각했는데.... 원래 눈물이 많은 아이이긴 하는데 뭐라 말을 할 수 없이 마음이 헛헛했다.




같이 태권도 차량에 탑승하다


지속되는 손목, 팔 통증에 신경외과 치료를 받고 있기에, 병원에 갔다가 집 정리 좀 하고 3시경 유치원 앞으로 갔다. 아들이 안 무서워하는 사범님이 계셔서 인사하고, 아들을 불렀더니 이내 눈에 눈물이 글썽 글썽이다. 다독이며 앞으로 이렇게 사부님이 차로 데리러 올 거라고 이야기해줬다. 불신의 눈빛이 가득한 아들을 잘 달래 태권도 차량에 같이 탑승했다. 오늘부터 자유로울 줄 알았는데... 너란 녀석은 일관적이구나. 적응기간이 늘 필요한 걸 내가 깜박했구나...ㅎㅎㅎㅎ

차에서 내려 태권도 학원으로 이동하고 한 층 아래 커피숍에 가 있겠다고 말하고 내려왔다. 커피 한 잔을 시켜서 책을 좀 보다가 4시 20분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데리러 갔다. 즐겁게 운동하고 나왔는지, 언제 울었냐는 듯한 아들의 얼굴을 보니 난감하다.


뭐랄까, 실망과 포기, 그리고 안도의 한숨이 나온달까. 집으로 돌아와 깨끗해진 거실에서 영어 단어장도 만들고 책도 좀 보다가 저녁을 준비하고 만화를 틀어줬다. EBS 공룡 만화 등을 보다가 시간이 지나서 티비를 껐다. 그랬더니 아들이 몇 번이나 혼난 행동을 또 하는 것이었다.(손으로 사람을 때리는 모션) 어른이나 엄마한테 그런 행동을 하는 거 아니라고 이미 여러 번 말했는데 오늘 그 행동이 또 나온 것이다. 나의 인내는 이내 폭발하고, 이건 너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너 잘되라고 하는 거라고 발바닥 열 대를 때렸다. 평소 육아서적에 관심도 많고 이론에서도 체벌이나 훈육의 부정적 효과에 대해 잘 알고 있었으나,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들은 하염없이 울더니 밥을 먹다 잠이 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는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내 맘대로 안 되는 이 현실과 처량한 모습의 아들의 모습에 눈물이 났다. 하루 종일 참았던 감정이 폭발한 듯, 설거지를 하면서도 대성통곡의 눈물이 나오는 거다....

내가 사춘기 때도 울어본 적이 없는데, 애 낳고 서른 넘어, 이렇게 눈물이 많아질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혹자는, 과감히 그런 것들을 이겨내고 나와라.

객관적인 시선으로 남의 아이다~하듯이 거리를 두라...

아이의 눈물에 요구를 들어주지 말아라... 등...


여러 이론과 이야기들이 많지만, 엄마라는 이름으로서 나의 선택이, 누군가의 희생과 맞바꿔야 한다는 압박감과 죄책감을 느끼면, 무언가 시도하기조차 무기력해지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물과 한숨으로 가득한 나날들을 이기고, 또 이기고 그렇게 한 발자국 씩 걸어가는 거다. 예전에, 회사 대표님이 일 하느라 늦게 집에 가면 아이들이 티비보고 안 자고 기다릴 때 가슴이 짠하다고 했던 그 말이 뭔지 조금씩 이해가 된다. 그 당시는, 그런 시간이 지금의 대표님을 만들었다고 공감 아닌 의견을 던졌는데, 그 심정을 이제야 알 듯도 하다. 어떤 마음으로 버텨온 것인지, 어떤 시간을 견디어서 한 발씩 굳건히 걸어온 것인지를 말이다.




나의 자랑은 존재에서 오는 것인가, 성취에서 오는 것인가


아들을 기다리며 책을 읽는데 내용이 정말 오싹하다. 굉장히 지금 상황에서 좋은 책을 발견해서 정독 중인데, 문득 든 생각이 내가 오늘 느낀 이 감정의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순간적으로 찾아온 생각은, 26살 취업 이후 스스로 힘겨웠던 이유의 해답인 것 같다.


나는 지금껏, 나의 '성취'에 자랑스러워한 것이지 '존재'자체를 자랑스러워 하진 않은 것 같다. 물론, 외부 사람들이 보기엔 자존감 높아 보이는 모습과 제스처를 취해왔지만, 내면 깊숙이 들여다보면 한껏 부풀어지고 과장된, 분주하고 뭐라도 된 듯한 모습에 착각하고 있던 건지도 모르겠다. 기대치보다 못한 회사에 첫 취업을 하면서, 그때부터 시작된 내면의 자괴감과 부족감, 실패감과 알 수 없는 감정들은 '존재'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를 대변할지도 모르겠다.


위축된 내면을 또 다른 '성취'로 이제 부풀릴 때가 온 듯했는데, 아이의 모습에 좌절감을 느낀 게 오늘 나의 상태가 아닌가 싶었다. 서른 중반, 결혼해서 애 엄마로서도 충분히 '존재'할 수 있는 데 말이다.

깊은 성찰이 왔다. 완벽주의의 함정에서 스스로 얼마나 나를 핍박했는지, 주변 사람들 또한 닦달하고 못마땅해한 건 마찬가지고.




좋은 인연으로 다시 뵙겠습니다라는, 서류 불합격


백수 일 때 남편은 최대한 쉴 수 있게 한다고, 퇴근 후 운동 갔다 온다는 남편에게 YES라 했다. 집에 온 남편은 내 표정을 보니 무슨 일 있냐 물어, 하루 일을 간략하게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월요병 일지 모르는 터프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남편의 표정은 나의 마음을 위로, 공감 하기에 충분치 않았다.


운동을 간다고 집을 나와서 답답한 마음을 다스리고 걷고 있는데 영상통화가 왔다.

자다 깬 아들이 한참을 울고 있다는 것이다..... 녀석... 미친다 정말....

나는 발길을 돌려 집으로 간다고 말하고 집에 왔다.


아들은 눈물을 그치고, 밥을 먹고 평화를 찾았다.

남편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남편 또한 오늘 굉장히 터프한 날이었다고 한다.) 소설 데미안 이야기를 했다. 갭이어 마무리 이후 진로에 대해 계속 고민 중인데, 지난주 2개의 원서 넣은 한 곳은 서류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하긴, 내 나이와 조건, 환경 등이 일반 회사 취업에 유리하지 않기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유명한 데미안의 알 이야기처럼, 나 또한 내 알을 깨고 나와야 할 때인가 보다. 아까 설거지하면서 엉엉 울면서 어찌나 '엄마'가 보고 싶은지..... 집 계약 만료가 내후년 9월인데, 다시 예전처럼 만기 전 친정 근처로 이사를 가야 하나 한참 고민했었다. 허나, 나는 익숙한 안정감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 언제까지, 얼마나 더 많은 눈물을 흘릴지는 모르지만, 그 모든 것들은 알에서 나오려는 불굴의 투쟁이겠다.



"고로, 취업이 안 된다면 창업이라도 해야하나."

머릿속으로만 맴돌던 여러 아이디어들을 실행시켜야 할 시기인가 보다. 육아에서도 자유롭지 않고 취업도 안 된다면 말이다. 내 인생, 세계를 적극적으로 개척하겠다. 비록 수많은 눈물이 따를지라도..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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