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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 끝나고 '백수'신분이 느껴질 때.

오늘은 백수 206일 째.

by 제니

[투루언니의 육아살림체험기] 아이와 긍정적인 애착을 형성하고, 잊고 있던 소중한 일상을 발견하고, 쉼을 통해 다음 스텝을 그려보기 위한 투루언니의 재충전.


<투루언니의 코칭 퀘스천>

Q) 불안을 느낄 때 자주하는 행동은 무엇인가요?

Q) 불안을 다스리는 '방법'을 만들어 본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사진설명: 이태리 로마 트라스테베레의 야경.
"거친 시간의 파도 속에서도 끈질기게 현재를 붙잡고 있는 사람만이 영원한 평화를 얻을 수 있다."

_by book <침착 中>



불안함을 동반한 돈 없는 백수


백수임이 실감 나는 때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연휴'끝나고 아무 할 일도, 갈 곳도 없을 때 더욱 느껴진다.

일종의 자유로움은 좋으나, 사람은 약간의 소속감, 통제, 규칙이 있을 때 스트레스를 동반한 안정감을 느끼기에 '불안을 동반한 자유'라고 하자.


아들은 연휴 끝나자마자 소풍이라고 해서 아침부터 주먹밥으로 도시락을 쌌다.

끼니 챙기는 게 아직까지도 '귀찮은'일 중 하나인 나로선 알람까지 맞춰서 준비했다.

(나처럼 요구사항 많은 아들의 컴플레인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ㅎㅎ)


아마 남편이 서운해 할 수도 있겠다. 본인이 요구할 때는 듣는 마는 하면서 아들 도시락은 빼먹지 않고 싸준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뭐, 어쩔껴 남의 아들(남편)은 이미 성인이지만 내 아들(아들)은 아직 어린애기에 보살핌이 필요하다. 아직 초보주부이기에 남편까지 챙길 여유는 아직은 없다. 언젠가 이 모든 것들이 수월해진다면 챙길 수 있을까 모르겠다. (그러나 햇수로는 이미 7년. 우리 엄마는 너 같은 주부가 없다고 하는데 아직도 나는 나 스스로를 '주부'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함정 ㅎㅎ아들 하나 챙기기도 벅찬 게 현실.)


▷사진설명: 나는 비록 씨리얼로 식사를 할 지라도, 아들 도시락은 예쁘게 만들어서 보냈다.




교육의 최고봉은 '솔선수범'이지 암.


추석 연휴, 시댁 식구들과 점심 식사 후 시댁에 갔다. 다과를 먹고 있는데 아들이 자꾸 할머니 냉장고를 뒤지는 거다. 매번 당황스러워서

"아들, 우리 집 아닌 곳 냉장고 열 때는 열어도 되는지 물어보고 열어야 하는 거야."


라고 열심히 잔소리를 하지만 아들은 늘 아무 말 없이 냉장고를 연다. 저번에도 그랬는데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다. 집에 갈 때쯤 되니 아들은 갑자기 냉동실도 열더니 이렇게 말하는 거였다.


"나 뭐 챙겨줄 거 없어?"


순간 소오름 확~ 어디서 많이 들은 말투와 내용이었다.

그것은 흡사 친정에 가서 행동하는 '내 모습'과 유사했다. 나는 친정에 가면 가자마자 냉장고에 뭐 있나 없나 열어보고, 서랍장 등 열어보고 필요 물품을 셀렉 한다. 가기 전에도 어김없이 엄마한테 "엄마, 나 뭐 챙겨줄 거 없어?"라고 물으며 마지막까지 승부근성을 발휘한다.


아 웃겨. 얼마나 웃프던지.... 잔소리할 게 아니라 나 스스로가 모범을 보여야 할 문제란 걸 깨달았다.



아이러니한 인생


아마도, 화폐 가치는 떨어지겠고 인플레이션이 오니 어쩌니, 집 값이 어쩌니 등의 불안한 뉴스로 도배된 세상에 살고 있어서겠다. 예전에 1~2억이 있다고 생각하면 '안심'됐는데 요즘 하도 물가도, 집값도 모든 게 다 오르니 같은 돈이 있어도 '터무니없이 부족하게'느껴지기만 한다.


물론, 기존 부자는 인정하겠다. 그런데 평범한 소시민들도 많은데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이나 뉴스를 보면, 다들 벼락부자, 때부자, 그냥 부자들만 있는 것 같이 다룬다. 1~3억 이하 있는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 거처럼.... 불과 2~3년 전 재테크 책을 사면 대부분의 내용이 서울 집 33평을 사는데 4~5억이면 되고, 대출 몇 억을 받아서 사면된다고 쓰여있는데 말이다. 상대적 박탈감이 나에게도 전해지는 걸 보니 참으로 헛헛하다.


그래서일 거다. 그런 불안감에 나는 또 '사람인'을 들어가 봤다.

갭이어도 슬슬 끝나고, 이제 진짜 잔고도 없다. 아니, 오늘 오래간만에 계좌를 확인해보니 기존보다 총잔고가 줄어든 거다. 헉.... 좋은 회사에 다니는 남편의 월급이 찍힌 통장을 보니 또 헉..... 아무리 좋은 회사지만 일반 회사원의 외벌이 월급이기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큰 벌이는 아니더라도 내가 일을 하면 몇 백은 더 수입이 추가되니 말이다.


그간의 지출내역을 계산해보고 해도 이건 영락없는 마이너스 구조인 거다. 6살부터는 자리 없다고 해서 유치원 보냈는데 유치원비, 전세 대출비 등, 쓴 것도 없는데 카드값은 왜 몇 백씩인 건지....


가만히 있으면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은 그런 위기감, 불안감이 엄습해 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의 '갭이어'는 쓸데없는 허황된 프로젝트가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게 한다.


이 시간 동안, 물질적으로는 플러스가 없는 시기지만 좋아진 것들도 분명히 많은데 말이다.

오전 내내 한숨과 욕설을 내뱉으며 컴퓨터와 씨름했다. 그리고 아들 하원을 하러 나가느라 모드를 전환했다.




'불안'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조금 전, 갭이어 프로젝트 글을 예약 발행했다. '나'를 찾는다는 컨셉으로 글을 쓰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은 내재돼있다. 어쩌면 퇴직금 630 만원 이란 돈으로 내 불안을 퉁칠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욕심이겠다. 너무 날로 먹으려고 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죽을 때까지 인간은 '불안'하겠지. 불안이 엄습해 올 때 그 불안을 '어떻게 다스리는지',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삶의 질을 달라지게 하겠지.


그래, 인정하자.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불안과 걱정은 동반할 수밖에 없는 공기와 같은 녀석이라는 걸.

굳이 그것을 느끼는 '나'를 '부정'하며 '부자연'스럽게 대처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자.


갭이어를 해도 얻는 것이 있고, 잃는 것이 있다. 무엇을 '감당'하는가에 달렸다.

당장 급하게 큰돈을 벌지 않아도 된다는 내면의 안정이 필요한 때다. 내 안에 아이디어가 무척이나 많은데 불안으로 인해 나는 또 어딘가로 취업할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좀 더 두둑한 배짱, 욕심을 덜어버려서 한 3년 아들 키우며 돈은 못 벌어도 해보고 싶은 것을 다 해본다는 마음의 확신이 더 있다면 좋겠다.(투루언니 시리즈 등)


그렇게 된다면, 어쩌면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내 삶이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마흔'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지만, 현실에 타협해야 할지, 용기를 내야 할지 망설여지는 백수 206일 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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