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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일곱, 대성통곡의 밤

백수327일, 거의 1년이 다가온다.

by 제니

[투루언니의 육아살림체험기] 아이와 긍정적인 애착을 형성하고, 잊고 있던 소중한 일상을 발견하고, 쉼을 통해 다음 스텝을 그려보기 위한 투루언니의 재충전.


<투루언니의 코칭 퀘스천>

Q) 당신은 어떤 것들에 감사하고 있나요?



오징어 튀김이 뭐길래....


확실히 예전보다 글을 쓸 시간이 많지가 않다.

전에는 브런치 매거진 연재라는 목표와 데드라인이 있었기에, 어떻게 해서 건 글을 썼는데 그런 것들이 없어지고 보니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된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방대한 지식, 아이디어, 성찰이 있는데 저만치 사라져 버린다.


지난 일주일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아마, 지난 수요일 저녁으로 기억한다.


그날따라 날씨도 유난히 춥고 미세먼지도 많았다. 현재 사는 아파트 단지에는 매주 수요일마다 포장마차 분식집이 열린다. 오징어를 유난히 좋아하는 아들은 오징어튀김을 사달라고 얘기하고 유치원에 등원했다.

원래 오징어 튀김을 사줄 생각이었으나, 그날따라 미세먼지가 너무 많아서 계획이 변경됐다. 요즘 동갑내기 친구가 같이 태권도를 해서 그 친구를 무척 좋아하는 아들은, 태권도 끝나고 같이 나와서 오징어 튀김을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그 친구 엄마는 미세먼지도 많으니 먹지 말자고 하니 그 아들은 흔쾌히 yes라고 말했다.


나 또한, 오늘은 미세먼지가 너무 많으니 저걸 먹으면 뱃속에 미세먼지가 쌓이게 되니 다음 주에 사준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날 따라 짜증 지수가 최고조 레벨이었다. 울며불며 막무가내로 안된다고, 꼭 오징어 튀김을 먹어야 한다고 하더니 급기야 "엄마는, 한 번도 오징어 튀김 이런 거 안 해줬잖아."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아들 친구와, 그 친구 엄마와 함께 있었기에 슬슬 나는 분노지수가 올라가기 시작했고, 그만하자고 달래며 집으로 향했다. 물론, 아들은 순수하게 오징어가 먹고 싶었겠지. 하지만, 나는 아들이 나를 비판한 걸로 막판에는 느껴져서 기분이 상할 대로 상했다. 그래, 아닐 거야...


다른 친구 엄마 앞에서 나 또한 <좋은 엄마>로 보이고 싶은 욕구가 있는데, 졸지에 한 번도 오징어 튀김 같은 걸 안 해주는 몹쓸 엄마가 된 기분이었다.

아들과 집에 와서도 기싸움을 좀 하고, 이래저래 설득해 냉동실에 있던 핫도그로 간식을 주고 저녁을 먹이고 목욕을 씻겼다. 다른 날보다는 조금 힘겨운 오후를 보냈기에, 칼퇴근을 한 남편과 저녁을 먹으려 낮에 있었던 이야기를 했다.


전후 상황을 말하고, 아들이 오징어 튀김 안 사준다고 울며불며 난리 치는데 너무 힘들었다고 하소연을 하는데 남편의 한 마디가 나의 가시를 또 건드렸다.


"아들(00)도 참 힘들 거야."

물론, 다른 의미로 이야기를 했겠지만 문맥의 흐름상 그 말은 마치,

아들(00)은 이렇게 빡센 엄마를 둬서 참 쉽지 않겠다고 나에게 인식되었다.

그냥 아무 말 안 하거나, 많이 힘들었겠다, 너 참 속상했겠다 그 정도의 공감과 위로를 바라서 한 말이었는데 말이다.


그때부터 내 표정도 변하기 시작했고, 내 안의 내면에서도 잠들어 있던 부정 에너지가 샘솟듯이 올라왔다.

급기야 입 밖으로 이런저런 불평불만을 이야기했고, 밥상머리에서 큰 싸움이 일어나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의 싸움을 방지하고자 운동이나 하러 간다고 밖으로 나왔고 그 길로 단지 내 헬스클럽 3개월 등록을 하고 러닝머신을 뛰었다.




당장 어떤 운동이라도 시작하라!!


더 큰 싸움을 방지하기 위해 자리를 피하려고 나왔지만, 예전부터 맘속으로 생각만 했던 헬스장 등록을 하고 러닝머신을 뛰니, 마음속 나쁜 것들이 이내 사라지는 상쾌함이 찾아왔다. 걷고 싶어서 기다리다가 미세먼지 등 외부환경으로 인해 운동을 자주 못했는데, 러닝을 잠깐 걷는 그 순간 어찌나 해방감이 들던지..


아련한 인간이라고... 진작에 등록할 걸 이때서야 한 게 아쉽다가도, 늦기 전에 등록할 수 있어서 다행으로 여겼다. 그래, 인생 한 서른여섯 해 살아보니, 모든 사건에는 장점으로 볼 요소가 있다는 점이 실감 나는 순간이다.


1시간 정도 러닝머신을 걷고 스트레칭을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저녁 11시가 좀 안 되는 시간이라 우리 집 두 남자(남편과 아들)는 모두 꿈나라로 가 있었다. 씻고 잘 준비를 하고 아들 옆에 누워있는데, 갑자기 닭똥 같은 눈물이 흐르는 거다. 그냥 흑흑흑, 하는 소리 없는 눈물이 아니라, 꺼이꺼이, 엄마, 엄마하고 대성통곡하는 그런 눈물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자고 있는 사람들이 혹시라도 깰까 봐 애써 참아보며 눈물을 훔치다, 쉽게 그칠 눈물이 아니라 혼자 거실로 나왔다.


소파 쿠션에 얼굴을 묻고 대성통곡을 했다. 이 나이에, 한 아이의 엄마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엄마..... 엄마..... 엄마....'를 외치며 미친 듯이 울었다. 어찌나 크게 울었던지... 둘 중 하나라도 깨면 어떡할까 걱정했으나 아무도 깨지 않았다;;;;


감정을 억제하는 것도 좋지 않기에 나는 이 눈물의 끝을 볼 때까지 그렇게 꺼이꺼이, 대성통곡을 하고 울었다. 아마도 1시간이었던가....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운 적은 처음인데 눈물이 떠날 때까지 그렇게 울었다.


그리곤 잠이 들었다.




엄마, 엄마 하며 우는 순간 엄마의 삶이 스치듯 지나가다


아마, 남편이 아들 편을 든 것 같은 서운함이 발단이 돼 눈물이 시작된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중반부를 넘어서 '엄마'하고 울던 나는, 나의 '엄마'가 생각이 나 멈추지 않고 계속 울었다. 엄마가 내 나이 때 나는 11살 정도의 초등학생이었고 엄마는 새롭게 일을 시작할 나이였다. 그렇게 초, 중, 고를 보내며 나는 이사와 전학을 다녔고 그동안 나의 불편과 애로사항만 머릿속에 새겨졌는데, 나의 엄마 또한 무수히 힘든 나날을 모두가 잠든 시간 홀로 '엄마의 엄마'를 목놓아 부르짖었을 것을 생각하니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엄마의 엄마인 외할머니는, 엄마가 중학생 일 때 돌아가셨다고 한다. 친정엄마 있는 친구들이 너무 부러웠다고 말하는 엄마의 심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에게 지금 있는, 친정엄마가 있는 것이 어떤 의미인 줄도 몰랐었다.


그런데, 그 1시간 동안 눈물은, 엄마를 '여자대 여자'로 마음속으로 이해하는 계기가 되며, 엄마가 벌써 예순셋 즈음이 되었으니, 남은 시간 효도하며 즐겁게 여행하고 잘 지내야 한다는 생각이 스치듯 지나갔다.


그간, 엄마가 나를 이모양으로 키워서 그렇다고 말도 안 되는 투사로, 원망을 화살을 만만하고 다 받아줄 것 같은 엄마에게 향했는데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갑자기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나를 잘 키워주신 엄마, 그리고 부모님께는 오로지 '감사'밖에 할 게 없겠구나... 감사하지 못했구나.....


아이를 키우고, 그 아이에게 최선을 다해도, 그 아이에겐 최선일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존재하는 걸 보면서,

<무조건 감사>가 떠올랐다.


뭔가, 이제야 진짜 독립, 자립해야 함을 절실이 느끼는 그런 아이러니의 순간, 미친듯한 눈물이 감정을 정화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그런 순간이었다.




아들 나이 6살, 내 나이 6살


오늘은 대학생 시절, 뉴질랜드에서 6개월간 동고동락하던 동생의 결혼 소식에 오랜만에 못 보던 반가운 얼굴들을 만났다. 저녁식사와 티타임을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사는 게 빡빡하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남과 비교하고, 경쟁이 심하고, 오지랖도 넓고...


마음속으로 그 이유를 생각해봤는데, 아마도 사회구조적인 이유로 일을 할 수 있는 여성, 일 할 능력이 있는 여성, 일을 해야만 하는 여성 모두가 임신& 출산 & 육아라는 과업을 만나며 집으로 들어가게 되기에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기질적으로 에너지가 많고, 성취욕이 높은 여성들도 있을 텐데 집으로 들어온 순간부터 그 모든 것들은 '아이'에게 올인되기 때문이다. 나의 가설은 그러하다.(물론, 아닐 수도 있고 다른 변수도 많다.)

내 후대 세대에서는 모두가 잘 일하고 아이를 키우고 살 수 있는 좋은 사회가 되길 바라며, 그렇게 된다면 지금 우리가 헬조선 등 여러 가지 힘들어하는 요소들이 부분적으로라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곧 있으면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어 <학부형>이 될 나 또한, 아이를 사랑하나 내 모든 욕구와 욕심과 에너지를 아이한테만 쓰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할 것이며, 아이의 성장과 더불어 나의 성장에도 계속해서 신경 쓰며 함께 자라나는 인간이 되고 싶다.



갈길이 멀지만, 오늘도 이렇게 마무리하고 열심히 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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